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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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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11-25 16:26 조회 52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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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도 시린 시절을 준비하며 잎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1)지혜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사고력을 주셨습니다.

지혜인데 이 지혜를 잘 발휘하면 생명은 물론 다른 것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전7:12)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는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즉 때를 알고 방법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와 어부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지식이 없어도 지혜가 있어 자연과 싸우려하지 않습니다.

순응하며 씨를 뿌리거나 그물을 내리우고 거둬지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들은 족할 줄 알며 나중을 기약하곤 합니다.

 

우리 인생살이도 그렇습니다.

형통할 때가 있고 곤고한 때가 있습니다.

내가 그때를 어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 일을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다윗이 그랬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모반하여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반대파사람이 침 뱉고 저주하자 그는 그 수욕을 고스란히 감내하면서 뭐라 했나요?

삼하16:10) ~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뇨

하나님 잘 믿고 곤고한 때를 처신하는 다윗의 모습 아닌가요?

성도의 곤고는 형벌이나 저주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고 느껴도 그럴 수 없습니다.

겨울나무가 죽은 것 같아도 봄을 기다리는 거와 같습니다.

훗날의 다윗을 보십시오.

 

우리 주님도 그랬습니다.

남들이 볼 때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 같았습니다.

오죽 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었을까요?

주님의 느낌도 아버지 하나님이 떠나신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곤고함을 통해서 지극히 높아지신 줄 믿듯이 곤고한 때 일수록 믿음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 곤고함은 겸손을 배우게 하심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비밀의 추억이 되기 때문입니다.

높은산 정상의 나무는 아주 낮습니다.

그러나 쎈바람과 이른 서리를 누구보다 먼저 맛보는 것입니다.

 

도리어 형통할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감사치 않고 혼자 힘으로 된 냥 우쭐거리다가는 다리 다치기가 일수이기 때문입니다.

산에 오를 때 보다 내려올 때가 사고가 많은 이치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오를 때는 무릎도 허리도 굽히지만 내려올 때는 쉬운 나머지 무릎도 펴고 허리도 펴서입니다.

그래서 내려올 때도 굽히라고 조언하는 것입니다.

 

2) 지혜가 없으면

지혜가 없으면 어떨까요? 반대로 행합니다.

남 근신하는데 혼자서 무얼 한다 하고,

남들 들어오는데 혼자 나가고 남들 나가는데 혼자 들어오고 거꾸로 하니 될 수가 없습니다.

옆에서 아무리 만류해도 듣지도 않습니다.

고집 센 것이 어리석음이고 곧 미련입니다.

잠17:12)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것이니라

 

이들의 특징은 생각할 때와 기뻐할 때를 분별 못하니 본인은 물론 주변이 고생합니다.

그런 어리석음을 깨트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잠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혹시 지혜가 부족한가요?

시절을 모르겠나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돈을 달라면 하나님은 돈이 아닌 건강과 행복을 주시고,

희망을 달라면 인내력을 주실 것이고 용기를 달라면 싸울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달라면 하나님은 성령을 주시지 않겠나요?

그 성령은 지혜의 영이시기에 미련함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믿음과 소망과 인내를 주실 것이고, 또 금 같은 믿음

을 만들고자 죄와 심판과 의에 대하여 책망하실 것입니다.

전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생활이 곤고하다고 해서 도리어 되는 방법을 찾다가는 인생 낭패를 겪기 쉽습니다.

심지어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럴수록 때를 기다리며 정도를 가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여러분의 자화상을 보기 원한다면 출애굽기를 보시시오.

기뻐하다가 곧 원망 불평하는 이스라엘민족이 자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에게 끊임없이 계시하시고 만나와 반석에서 생수를 먹이시고 구름기둥불기둥으로 인도하시되 전쟁을

보면 두려워 돌아가자 할까하여 먼 거리로 돌이켜 인도하시는 하나님도 뵙기를 바랍니다.

 

3) 생각을 바꾸면서

성도된 나는 아무리 곤고해도 죽지 않고 죽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맡기는 것입니다.

뭐가 어떻고 저떻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척 할뿐입니다.

 

힘들다 말하지 마십시오.

힘들지 않은 게 어디 있나요? 인생이 고난을 위해서 났는데,

오히려 감사함으로 순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외로 감당할 시험이 되거나 곤곤한 때가 단축되어지기도 합니다.

 

곤고한 날, 울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뵙기 좋은 날이고 형통한 날이 오는 현상의 날입니다.

그럼 형통한 날은 어떤가요? 지금 기뻐하는 날이기에 감사한 것입니다.

 

전봇대에 참새 열 마리가 있었습니다.

포수가 총알로 다 잡으려했는데 마지막 참새만 죽었습니다.

첫 번째 참새는 “앗, 총알이다” 하고 피했습니다.

아홉 번째 참새는 “앗, 콩알이다”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열 번째 참새가 입 벌리고 콩알 받아먹으려다 죽은 것입니다.

중간에 말을 비틀면 비극이 일어납니다.

‘서울시 체육회’를 비틀면 ‘서울 시체 육회’가 되는 이치입니다.

마귀는 영어로 사탄인데 원어로 디아불로스(Diabolos)입니다.

디아,,‘사이에’ 불로스,,‘던진다’.. 마귀는 처음부터가 아닌 중간에 교묘히 속이고 유혹합니다.

좀 곤고하면 못사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하며 우울증을 줍니다.

그러나 말씀은 확실하고 주님은 동행하고 계십니다.

느낌이 아닌 믿음을 발휘해야 됩니다.

찬송가를 불러보십시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모든 신앙은 곤고함을 통해서 찬란한 빛을 잉태했습니다.

아니 신앙은 물론 모든 예술인들의 삶을 보십시오.

철저한 가난과 죽는 듯한 감옥과 황폐한 유배나 병마에서 하나님을 뵙고 인간이해도 했기에 위대한 작품이 나온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많은 작품도 추사 김정희 세한도도 이쯤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를 열거하려면 셀 수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밧모섬에서 받았고 사도바울은 옥중서신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곤고할수록 하나님과 눈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형통할 때 사람들 앞에서 주님 자랑할 수 있습니다.

삶에 너무 두려워 마십시오.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은 곳이 세상인 만큼 두려워 마십시오.

 

결론) 사람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곤고한 때는 쉬어가고 형통할 때는 빨리 가면 됩니다.

이를 아는 일이 좋은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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