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페이지 정보
본문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동생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장자의 가치를 몰랐던 탓입니다.
1) 기증자
일본의 수집가 후지스까 지카시는 추사 김정희의 숭모자였는데 추사의 세한도를 조건 없이
서예가 손재형씨에게 기증했습니다.
앞서 일본대학에서 기증을 요청받았지만 “일본에 있으면 먼지만 쌓일 뿐 연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하여 기증한 것입
니다.
그의 아들도 추사의 모든 수집품 약2700점을 과천박물관에 조건 없이 기증했습니다.
또 462점의 백자들을 국립박물관에 무조건으로 기증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기증한 백자들은 40년간 수집한 자신의 삶이었는데,,
그는 성모병원초대원장을 지낸 수정 박병태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전 재산과 애정을 드렸던 수집품들을 더불어 나누기위해서 무상 기증한 것입니다.
“이게 얼마짜리인데” 하는 속물정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자태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할까요? 그 자태는 어떨까요?
2) 천국
하나님의 관심사를 아시나요? 우리였습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값으로 지불하셔서 우리를 사셨고 백성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답게 살도록 참 자유를 주셨습니다.
죄의 노예에서 풀어 은혜 안에서 왕 노릇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성도의 가치는 복음의 중심이신 예수그리스도이고 천국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기에 문제가 됩니다.
자기중심으로 땅의 가치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서 주님은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
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한 폭의 수묵화인 세한도와 단순한 백자들이 모든 사람에게 보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가를 아는 사람에게는 설레이고 갖고 싶은 보물이 됩니다.
이런 보물이 개 눈에는 어떨까요? 지식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요?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의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으나 천국을 소유하거나 맛본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보물입니다.
그런데 천국을 소유했거나 안다면서도 소홀히 한다면 그는 소유한 척,
아는 척 한 것일 뿐 실제는 아닙니다.
진짜로 소유하거나 맛본 사람들은 그 천국을 더 얻기 위해서
또 누리기위해서 전체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공유하기위해서 돈 드려서라도 전파하는데 곧 선교입니다.
빌3:9)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마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신문방송에 소개되는 마약사범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마약은 말 그대로 마약 아닌가요?
그런데 중독된 이들은 마약이 생명과 진배없어 그 약 구입에 온갖 돈을 붓습니다.
하물며 천국과 예수님에 대한 성도는 어떤가요? 어때야 될까요?
그 좋다는 천국과 예수님에 대해서,
3) 이중적 태도
한국교회 위상이 많이 실추되었습니다.
목회자의 불량한 도덕성이 한몫했고 인구감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는 많은 성도들이 믿는다면서 진짜 믿음의 행동을 보여주지 않은데 있습니다.
위선적이고 이중적이었던 것입니다.
좋은 약이라면서,, 나팔은 부는데 진작 자신은 먹질 않습니다.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사야 그 밭에 보화가 숨겨진 것인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야 그 진주가 좋은 진주인데 그렇질 않았습니다.
자주 말씀합니다만 정말 좋은 상품에는 마케팅이 소용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성도들은 기획부동산처럼 자신부터 사지 않고 남들보고 사라 했습니다.
그런데 두려운 일이 있답니다.
천국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완전한 천국을 위해서 장차 선별작업을 하신 답니다.
마13:47~38)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
구체적으로는 “세상 끝에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
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눈여겨 볼 단어가 있습니다.
“그물에 가득하매”,, 교인들이 많다고 해서 다 좋은 성도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의인 중에”,, 믿는 이들 중에,, 즉 우리 중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입술로 주여주여 해서 의인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어도
마음에 믿지 않고 입으로만 주여주여 했다면 문제입니다.
자칭 의인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해 버림을 받고
풀무불에서 울며 이를 갊이 있다면 어떨까요? 무서운 일 아닌가요?
우리는 날마다 신앙점검을 해야 합니다.
천국을 발견했는가? 소유하고자 하는가? 기뻐하는가? 공유하고자 하는가?
진단표를 만들어 보십시오.
어디에 마음이 가는가? 물질이 어디에 사용되는가? 시간이 어디에 사용되는가?
여기에 관해 얼마큼인가? 자주, 보통, 조금, 모르겠다.
우리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귀를 시원하게 해주는 곳을 찾는 신앙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하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말세는 뭐든 혼잡합니다.
느낌이 아니라 성경을 잘 믿어야 믿음도 가치도 분별됩니다.
위조달러 감식가가 있습니다.
그분의 얘기를 들으니 자기는 가짜달러에 대해서는 공부하지 않는 답니다.
오직 진짜만 공부하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가짜는 자연 감별된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이단에 대해서 공부하기 보다는 복음에 확실성을 다지면 됩니다.
다짐이 무엇인가요? 성경공부인가요? 느낌인가요? 서원인가요? 큐티인가요?
이 모든 것 외에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주님은 진짜를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천국과 참 신앙을 아시겠나요?
사도바울은 이 천국의 가치를 알았기에 지난 날 사랑했던 세상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면서 예수그리스도를 푯대로 삼
았고 가장 고상한 지식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그 예수를 더 붙잡기 위해 달려간다 했습니다.
대충적이고 타성적인 신앙은 종교입니다.
생각만 하는 신앙은 불량해서 위험합니다.
버리는 것이 있고 취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이고, 믿음이고, 사랑이고, 거룩이고, 복음을 얻기 위한 진력이고
천국의 침노입니다.
결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사랑을 입증하셨습니다.
아들 예수님도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사랑과 믿음을 입증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증명할까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