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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12-09 15:09 조회 51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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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목수가 집을 그리는데 주춧돌을 먼저 그리고 기둥을 그린 후 마지막으로 지붕을 그렸습니다.

평생 집 지었던 대로 그린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릴까요? 지붕부터 그려옵니다.

현장에서 배운 것과 가정이나 학교에서 배운 것과의 괴리입니다.

 

이런 일은 많습니다.

정치도 그렇고 결혼생활도 그렇습니다.

신앙은 어떨까요?

 

1) 믿음

하나님의 말씀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제공자의 입장입니다.

믿음은 조건 없는 초대장입니다.

주님은 아무나 돈 없이 와서 마시라 하셨습니다.

그 결국은 구원인데, 하나님과 화목이고, 죄 사함이고, 영생이고, 하나님 자녀된 신분을 얻는

큰 일 입니다.

 

그렇다면 수혜자된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옛 유대민족은 믿음이 아닌 율법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믿음과 구원을 은혜의 선물을 여기지 않고 자신들의 행위를 의지하다 결국 버림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성도들은 어떨까요? 믿음이 은혜라며 그 은혜를 값싸게 치부하여 돼지 목에 진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이 경고의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1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도 찍히는 자가 되리라

 

좀 더 구체적으로 본문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참 감람나무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원가지라도 그들이 율법을 의지하므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고, 우리 같은 이방인들

은 돌 감람나무지만 은혜로 접붙임을 당했으나 붙임당한 은혜를 헛되이 여기면 우리도 원가지를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

에 의해 버림을 당한다는 의미입니다.

롬11:20~21)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

려워 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지만 준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인자와 준엄

인자는 사랑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준엄은 엄격한, 분명한, 거룩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동전의 양면 같은 하나님의 두 속성을 우리는 이해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적용하기를 잘 적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에게는 사랑의 하나님을 자기식대로 적용하고 타인의 문제나 죄에 대해서는 준엄을 적용하여 정죄나

비판을 하니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오늘 성경은 “롬11:20) ~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특히 “믿음을 가지라” 가 아닌 “두려워하라” 하셨는데 바로 이런 주의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조심하는 행동을 지닙니다.

내 믿음은 안전한지, 나 받은 구원은 확실한지, 성찰하고 점검하고 늘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상적으로나 탁상공론으로 집을 그리는 것이 아닌 늙은 목수처럼 실제적으로 집을 그리듯이 기초부터 기본위에다 짓는

일입니다.

이 모습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모습입니다.

 

금번 백석동에서 열병합 송수관사고가 났습니다.

땅속상태지만 실제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점검해어야 했고 보수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믿으므로 섰기 때문입니다.

만약 접붙임 받은 돌 감람나무가지였다면 원가지들도 버림을 당한 준엄한 하나님 앞에 이들도 버림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인데서 머물지 않고 믿음은 믿는 만큼의 윤리가 꼭 나와야 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다른,, 도리어 율법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율법적이지 않아도 죄는 아닙니다.

 

접붙임 당한 가지로써 은혜 안에 있다면 더 든든히 붙어야 되는 이치가 됩니다.

여기 든든히 서는 비결이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롬10:8~9) 그러면 무엇을 말씀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

면 구원을 받으리라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즉 예수님이 세계의 주인이시며 나의 주인이시다는 윤리여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이삭의 부인을 찾으러가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나옵니다.

그는 주인을 닮은 경건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주인 아브라함의 종인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하며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고백했고,

주인 되는 아브라함이 내린 일을 하기 전에는 먹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순간순간 하나님께 인도하심을 구했고 목례로 감사기도를 하곤 했었습니다.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믿는다 하면서 교회는 다녀도 무엇을 믿는지 내용을 모르고,

자기 정체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순종 없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 데만 예수님을 의지하곤 합니다.

은혜의 하나님의 준엄을 잃은 모습입니다.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은 솥 두껑만 보고도 놀란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서 건짐을 받고 은혜의 인자하심에서 머무는 성도는 어떨까요?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없겠네

내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속담만 같은 현상이 아니라 신앙도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자기 안에 증거가 됩니다.

 

속 앓이 많이 한 사람들은 한이나 화가 많이 있어 명치끝이 아프고,

아픈 사람은 안색도 다릅니다.

주 은혜 안에 믿음으로 머무는 사람일수록 경건하고 감사가 있고 섬김이 있습니다.

이를 보고 본인이나 남들이 신앙의 경중과 건강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큼 내 영혼도 살펴야 합니다.

성도는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가 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공로나 돈이 아닌 오직 은혜로 부르심을 받고 접붙임을 받아 믿음으로 되어진 사람들입니다.

이 일은 완전한 일이지만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면 준엄하신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지 못합니다.

느낌을 믿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홀연히 세상을 떠납니다.

구두수선공이 금번 열수송관 사고로 떠났습니다.

풍동의 구두수선공인데 나도 잘 알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것을 알았으면 둘째딸 결혼을 앞두고 예비신랑과 식사를 했겠나요?

사령관출신 장군이 투신했습니다.

두 죽음은 유서가 있고 없고의 차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죽음인 것은 동일합니다.

 

결론) 성경에 보면 주의 재림의 상황은 누차 계시되었지만 그 날과 그 때는 비밀에 붙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준비하라 하심입니다.

여기에 대한 명령이 “너희는 깨어 있으라”입니다.

성도의 종말의 날 역시 분명히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예측 못합니다.

은혜와 믿음을 오늘 두렵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와 준엄을 보는 안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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