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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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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04-12 08:18 조회 46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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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어원은 우리말 “보다(견)”에서,, 영어 spring은 “솟아오르다” 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에는 죽었었는데 봄에는 생명이 부활하여 보기도 하고 솟아오르기에 만지기도 합니다.

 

1) 논쟁의 주제

이러한 부활,,신비한 생명의 활동이지만 언제나 논쟁이 되곤 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로 구성된 사두개파가 부활이 없다 했고,

제사장들과 성전봉사자들로 구성된 바리새파는 있다 했었습니다.

이 차이는 큰 차이입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올까요? 지식중심이냐 계시중심이냐의 차이입니다.

지식의 기원은 언제나 인문학이고 철학인데 긍극으론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설교에도 언급되었습니다만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녔던 예수님제자들도 예수님의 고난의 참의미를 몰랐었습

니다.

마음이 가리워졌기에,, 그 모름으로,, 다혈질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한답시고 검을 들고 설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신 우리구원의 진행을 본의 아니게 방해했기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

라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며 역정 내셨던 것입니다.

 

나중에는 어떤가요? 예수님이 처형당하신 후 허탄한 마음으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동행하시는 부활의 예수님

을,, 역시 몰라보았습니다.

눈이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눅24:16) 그들이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마음이 가려졌다, 눈이 가려졌다는 같은 의미입니다.

 

지식이,,사람의 사고를 결정짓는 일은 당연지사지만 편견도 만듭니다.

이것 때문에 마음과 눈이 가리게 되고 또 죄는 더한 가림막으로 작용됩니다.

빛을 가리는 암막 커텐처럼 참 빛되시는 예수님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계시의정신이 있으면 믿음이 오고 예수님과 천국이 구체화,, 생활화 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괜한 예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세상은 언제나 다수나,, 큰 목소리나 아님 힘 있는 자가 이기게 마련으로,

오늘도 인문학적 교육을 받거나 철학적 사고의 영향을 받은 세상과 하나님을 떠난, 혹은 불신의 사람들이 더 많은 만큼 부

활도,, 하나님도 없다고 논쟁의 주제가 되곤 합니다.

실제는 어떤가요? 옛날은 물론 여전히 지금도 부활은 있습니다.

생명의 부활은 일상 속에서도 있습니다.

애벌레가 탈피하는 것도 부활입니다.

전혀 다른 모양과 성향과 기질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믿는 자들의 시금석으로 논쟁의 주제가 아닌 믿음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2) 믿음의 내용

우리가 믿는 내용이 무엇인가요?

전능하신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등,,하나님 신앙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과 아버지가 되시고, 구원의 하나님이 되셔서 내 죄를 사하시고 나를 살리셨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나대신 속죄를 위한 희생죽음을 당하셨고, 다시 모든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게 하

심으로 부활의 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구약은 이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은 것도 이 증표이며,

동정녀를 통해서 성령의 권능이 임하므로 예수탄생이 이루어진 것도 이 증표입니다.

 

사람의 어리석음이 무엇인가요? 자기들의 잣대로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못하니 하나님도 못할 거라 여기고 내가 없으니 하나님도 없다고 우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에서 유가 있게 하셨고, 물이 변하여 순간에 포도주가 되게 하셨고,

그 맛은 더 좋게 하셨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 나사로와 회당장야이로 딸의 부활로 증명하셨습니다.

아닌 구약에서는 수넴여인의 아들로,, 사도바울은 3층에서 떨어져 즉사했던 유두고가 살아나기도 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종들을 통해서 이루신 일들입니다.

눅20: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한 번은 죽어야 합니다.

이 육신으로는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들어갈 수도 없고, 살 수 없습니다.

죄된 몸은 죽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야만 천국가능 몸을 입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려면 어떨까요? 우주에선 어떨까요?

몸을 바꿀 수 없으니 보호복으로 갖추어야 합니다.

천국은 몸만이 아니라 성향과 기질이 변형되어야만 합니다.

그 변화된 몸이 부활이기에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도 없이 천사와 동등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이 모습을 변화산에서 보여주셨고 이때 오래 전의 죽었다던 옛 모세와 옛 엘리야가 나타나함께 말씀을 나

누기도 하셨으니 부활 후의 생활모습이기도 합니다.

다만 예수님은 스스로 변형되었으나 사람은 하나님이 변형시켜주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 믿음의 분명한 내용이고 최후이며 최고가 됩니다.


3) 천사와 동등

이 부활의 모습,,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천사와 동등하다”..무엇보다 부활의 모습은 천사와 같아도 천사와 격은 다르다하셨습니다.

이 생활이 궁금한가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람들과 잡수셨고, 말씀을 나누셨고, 걸으셨고, 시공을 초월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눅20: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는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이 부활은 하나님자녀로서의 특혜입니다.

부자아버지,, 권세아버지를 부러워했다면 천국에서는 전혀 다른 특혜를 주신 하나님아버지를 찬양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이 부활은 우리 기독신앙의 최고이기에 맨 마지막에 주어집니다.

 

부활의 신앙은 담대함을 발휘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이 두려워서 살고자 죄악에 매입니다.

독립운동도 심지어 나쁜 짓도 잡혀서 감옥 가는 일이 두려우면 못합니다.

죽은 일이 두려우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두려움을 줍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반대로 평안을 주십니다.

유대교의 박해로 예수님이 잡히시고 처형당하자 제자들은 두려워 숨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평안하뇨” 물으셨습니다.

승천하실 때도 “ 평안할지어다”하셨습니다.

부활믿음을 주신 것인데 부활믿음은 언제나 담대함과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부활믿음은 거룩한 신앙의 꽃을 피웁니다.

거룩함은 담대한 열매를 맺으며 세상과 죄에서 승리를 이루고 마침내 영광을 드리는 신앙의 최고봉이 될 수 있습니다,

 

숨어서까지 두려워 떨었던 제자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180도 바뀌었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신 성령까지 오셔서 능력까지 받았으니 어땠을까요?

그 기록이 사도행전입니다.

 

신앙에는 회당도, 조직도, 자본도,, 잘난 사람도 필요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수생명이 절대적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

느냐”

오뚜기의 무게중심은 밑에 있기에 백 번 천 번 일어납니다.

성도의 신앙생명은 예수생명입니다.

 

확증해 보십시오.

그 생명 있는지,, 죽음은 예수님께도 반갑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더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 하나 예수님생명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죽는 것은 마침내 천국에서 눈뜨는 것입니다.

 

결론) 이 생명, 이 믿음 있을 때,, 죽음이 되레 유익하며 도망가지 않습니다.

옛 야곱이 죽을 때에 자기 지팡이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하였고,

믿음의 말로서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하게 될 줄 믿습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흙으로 지은 후 생기를 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던 바로 그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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