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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니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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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04-26 15:09 조회 44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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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차면 기운다.” 는 말처럼 모든 창조물은 기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사셨던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생은 어린아이의 울음으로 시작하셨지만 이 세상을 떠나실 때는 주님다웠습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습니다.

출생도, 삶도,, 모두가 비슷해도 세상 떠나는 마지막은 성도다워야 합니다.

 

1) 산교육

주님은 승천하시던 날 그 마지막 시간에 제자들을 베다니근처로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제자들과 함께하시고 싶은 마음도 계셨을 테지만 그 이상의 뜻이 계셨을 것입니다.

 

승천이 얼마나 신비한 일이였을까요? 그러나 주님께는 비밀스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비밀과 비법이 있으면 사람들은 숨깁니다.

비밀은 흉은 될까봐,, 비법은 돈이 되는 까닭인데,,

비밀은 그렇다 쳐도 불통된다 해도 비법은 공개하지 않으면 발전이 막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되레 자신의 승천을 보이시므로 제자들의 믿음을 산교육 시키셨습니다.

승천의 목격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까지 바라셨던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물려주고픈 비밀한 내용은 무엇인가요? 있어야 합니다.

어른으로서 청년들에게 물려주고픈 비밀한 내용은 무엇인가요? 역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부터라도 만들고 찾아야 합니다.

 

외출외박휴가가 통제된 부대용사들에게 아이스아메리카노커피 130잔을 섬기자고 전역한 예배위원 18명에게 카톡을 보냈

더니 눈물겹게 반응들을 해왔습니다.

이들과 공유했던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쳐주신 청년들인 만큼 부대 밖에 있어도 섬기고 나누는 삶을 교훈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이들의 응답이 참 좋았습니다.

대체로 “목사님, 늦게나마 그리고 조금이나마 입금합니다.

받은 거에 비하면 너무 작지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네요, ㅎㅎ

부대 항상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캡쳐해서,, 대견하고 보람을 갖는다했더니,

친구장로는 “커피10잔을 쏩니다.” 하면서 50잔 값을 보내왔고,

강화도 목사님은 “나도 조금 보탭니다.” 했기에 덩달아 흐뭇했었습니다.

 

성도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교훈할 수 있는 산교육은 평생입니다.

그러나 영적비밀과 비법은 좋은 내용이며 진중한 때야말로 좋은 산교육장이 됩니다.

어떤 모습을 보이고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

삶이든 신앙이든 그때 거기서 비밀을 공개해야 하는데 평소의 삶과 모순되지 말아야 합니다.

 

2) 축복자

이제 주님은 산교육만이 아닌 축복도 하셨습니다.

축복의 가치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하나님께 복을 비는 일입니다.

이삭이 장남 에서인줄 알고 차남 야곱에게 축복했던 일은,, 이스라엘과 세계사의 역사의 반전을 이룬 사건이었습니다.

야곱은 장남의 복과 아버지축복의 가치를 알았기에 그 복을 사모했었습니다.

반면 에서는 불신하고 부정했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뒤늦게 복을 빼긴 것을 알고 울며불며 자신에게도 축복을 해달라며 후회와 간청을 갖고 매달리는 에서에게 축복자였던 아

비 이삭의 진술을 보십시오.

창27: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서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여기에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축복은 결코 말의 성찬이 아닌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돌리는 일인,, 엄

청난 믿음의 작용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또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는 것이 믿음의 축복인 것입니다.

이 원리를 에서는 몰랐기에 슬피 울며 후회했고 동생 야곱에 대한 복수심만 남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앞에서도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때는 겟세마네 동산이었고,

제자들은 저편에서 졸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두 손 들지 않고 기도하시면서 축복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하나 되기 위해서, 서로 사랑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나니 근처에서의 축복은 승천을 앞둔 기념비적인 축복이기에,,

간절함을 갖으시고 두 손 들어 “성령권능 받고 전도자가 되도록 ” 축복하신 줄 믿습니다.

 

세상이 바라는 축복은 물질적이고 한계적입니다.

부자되고, 건강하고, 오래 사는 걸 축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거룩을 축복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었고 그 뜻을 이루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거룩이 무엇일까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외형적인 것이 아니 경건능력입니다.

 

이런 축복은 성도들만의 특권입니다.

가수는 노래할 수 있고, 배우는 연기할 수 있으며, 감독은 연출할 수 있다면 하나님 자녀된 성도는 하나님께 축복할 수 있

는 제사장적인 축복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말을 상황 따라 구사하며 간단한 영어와 일어도 말하는 앵무새를 보았습니다.

성도는 찬양에,, 전도에,,기도에,,그리고 축복에 벙어리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축복도 훈련되고 경험되어야 신앙의 거목들처럼 축복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형의 축복을 가로챘던 야곱도 죽을 때에 기운은 없고, 눈도 어두웠지만 그 많은 자식들을 축복한 것은 놀랍습니다.

축복의 믿음,, 경험자였기에 미래를 예언할 수 있었고 곧 이스라엘의 역사의 지평을 열었던 것입니다.

영안이 밝은 이유인데 믿음은 이렇듯 미래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축복하시면서 하늘로 올려지셨음을 주목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3) 경배

눅24: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위의 모습은 감격적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최초의 경배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대상이지만 경배의 대상이기도 한 것을 웅변합니다.

지금껏 예수님은 어땠나요? 유대인들에게는 천대와 멸시의 대상이셨고,

제자들에게는 믿음의 본이셨고 아님 랍비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경배대상이 되었으니,, 부활과 승천과 하늘보좌우편에 앉으심과 영광의 주로 재림하시는 승귀의 신분으로

바뀌신 것입니다.

낮고 천한 말구유의 탄생과 산골나사렛 출신과 제자의 배반과 빌라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미천한 신분에서

영광의 신분으로 높아지신 것입니다.

죽어야 사는 역설이 작용한 섭리로서 가시면류관 없이는 영광의 면류관이 없음을 반증합니다.

예수님께 경배는 승천하셨기에 멈추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될 신령한 의무입니다.

우리 신앙의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무명하고, 가난하고, 어리석어도 훗날 하늘에서는 유명하고, 부하고, 지혜로울 약속과 보장이 이처럼 주

어졌기에 소망으로 인내하며 사랑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눅24: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원문을 보면 “ 50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다니 근처로 데리고 나가셔서 두손을 들고 축복해 주셨다. 51절) 그

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리우셨다. 52절)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

고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53절)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계속 성전에 머물렀다.

 

이별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도, 남겨진 제자들에게도,

이별의 아쉬움으로 슬퍼하며 울지만 않았습니다.

믿음이 소망을 낳아서 예수님은 축복하셨고 제자들은 경배했고 찬양은 계속 있었습니다.

믿음은 이렇듯 각자의 본분을 준행하게 만들었습니다.

목사인 내가 세상을 떠날 때의 모본이 여기 있고 성도들의 모습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 믿음의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와 믿음의 자녀들이 취할 행동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세”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 믿음을 지닌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제자들처럼,,슬퍼도 울지만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일들을 이루고자 할 뿐입니다.

살후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결론) 성도는 다릅니다.

생명이 다르고 성향이 달라서입니다.

예수님이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되고, 예수님부활의 산교육이 되고, 에수님처럼 믿음의 축복자가 되는,, 죽는 시간도 성도

로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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