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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우편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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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05-03 15:19 조회 40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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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설교에서는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베나니 앞까지 인도하셨나요?

사랑하는 제자들과 끝까지 함께 하시고자 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승천이라는 큰 비밀을 산교육 시켜 확실한 목격자가 되

고 증인의 사명을 이루도록 하심이었고,

또 예수님은 마지막 행동으로 두 손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고, 제자들은 경배하였는데 이 역시 슬픈 이별이 아닌 재회가

기약된 믿음의 이별이었기에 예수님은 축복 중에 승천하셨고 제자들은 기뻐 찬송하며 성전에서 머무를 수 있었다고 설교

했었습니다.

 

1)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

오늘의 성경은 지난주일 본문의 후기가 됩니다.

막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우편에 앉으시니라

예수님은 부활부터 신분이 영화롭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승천과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땅위의 예수님께는 경배하지 않았으나 승천하시는 예수님께 경배했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낮아지시기만 하신 인성이 부활로 높아지셔서 참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시는 것입니다.

이 영광의 최고는 만왕의 왕으로서의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주님으로의 재림과 하나님나라의 다스림으로까지 이어

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잡히기 전의 기도에서 그 영광의 기원이 있었습니다.

요17:5)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함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고난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에게 주어지

는 상급의 보장이기도 합니다.

흔히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고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면 천국만이 아닌 그 영광에도 동참할 줄 믿습니다.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

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바라며 즐거워하게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죽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을 보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누가 볼 수 있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까요?

그러나 제자들은 믿음과 성령의 감동으로 보았습니다.

훗날의 스테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우편에서 서계심을 보았고,

사도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행22:7)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변사람들은 빛은 보면서도 우레 소리로 들었지만 사도바울만큼은 예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똑똑히 들었기에 회심의 결

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에는 이런 시간과 사건과 비밀과 추억이,, 축적이 있어야 합니다.

곧 말씀의 경험이고, 믿음의 증거이고, 기도의 응답이고, 성령의 체험인 것입니다.

어느 칠순잔치에서 칠순을 맞이한 할머니가 인사말을 했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 자녀들을 키우면서 고생 속에서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돌아가

시기 전 우리부부가 처음으로 여행을 했었는데 남편이 내 손을 꼭 잡고 거니면서 고맙다 사랑한다 이담에 다시 여행 오자

했던 그때의 그 추억이 지금껏 사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시간의 두께라 할 수 있는 오이코스라고 합니다.

그냥 시간은 크로노스인데,, 시간의 길이를 의미합니다.

누구나 크로노스 속에 삽니다만 하나님과 가족 간에는 이런 오이코스가 있어야 합니다.

크로노스가 길면 장수지만 오이코스가 깊으면 깊을수록 잘 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문제가 무엇인줄 아시나요?

장수를 바라며 돈 타령은 하면서도 오이코스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집에서 살고, 멋진 차는 타도 다녀도 정과 추억이 없이 삭막하고,, 신앙의 연조는 있는데 깊이가 없어 감

격 감사 감동이 없습니다.

 

나이가 하나님과의 깊이가 없으니 주의 부활도 못 믿고,

승천도 그렇고 따라서 재림도 마찬가지여서 여차하면 낙심하고 시험에 듭니다.

주는,, 오직 현재의 필요를 채워주는,,1회용 도피성이거나 위로용이 되었고,,

힘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2) 나가 두루 전파할 새

그러나 부활과 승천의 목격자가 된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성령까지 임해 권능을 받았으니 더 해졌습니다.

시물레이션으로 교육 받은 조종사와 군인들과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을 가진 자와는 다릅니다.

성도의 믿음은 이론만이 아닌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론은 머리의 경계를 만들지만 경험은 현장의 삶을 연마합니다.

무엇보다 기독신앙은 궁핍과 고난을 두려워하면 끝장입니다.

삶의 지침과 궁핍과 고난은 마귀가 사용하는 기본사양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간특한 전술사이고 제갈공명 아닌가요?

때와 신앙 따라 유혹하고 시험에 들게 합니다.

여러분이 마귀라 치면 옛 방식만 고수할까요? 신형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취약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약하고 틈난 곳으로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원망 불평이 많다면 감사로 고쳐야 합니다.

게으르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반면 부지런하다면 꾀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인생 목적과 목표가 없다면 설정해야 합니다.

 

수시로 진실 되게 기도해 보십시오,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주 동행을 실감하며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소원인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며 순종하면 더 나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간 비법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신비할까요?

내가 다 알고, 내가 다 해결하고, 내가 다 갖춘 체 나가는 삶과는 전혀 딴 판인 것입니다.

많은 것 때문에 독립적인 신앙보다는,, 적은 것 때문에 주님께 의존적이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 낫지 않겠나요?

세상은 행복으로 직접 나가고자 한다면 성도는 주 동행이라는 거룩을 목표로 할 때 세상과 다른 행복자로 사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전도는 당연입니다.

막16:20) 제자들이 나가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회복해야 할 신앙자태입니다.

 

없으면 죽어야 되는데 물과 떡이 마르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공급이 임합니다.

 

아들아이의 집을 얻는데 계약금이 필요했습니다.

나올 집에서 아직 나오질 않아서입니다.

그 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사이 아내는 누구랑 전화를 통화를 마쳤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눈물을 닦으며 아내로부터 전화통화를 전해 들었습니다.

처제가 온다는 전화였는데 아내는 오지 말라했고, 처제는 왜 오지 말라고 하느냐 했었답니다.

아내는 지초지총을 말하며 정신이 사납다고 설명해 주었답니다.

그런데 처제는 수아 결혼에 돈필요할 듯해서 돈을 빌려주고 싶어온다고 한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해결되었습니다만 일찍부터 처제의 마음을 움직여 준비시키신 하나님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게 무엇인가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의 표적이었습니다.

 

3) 표적

우리 신앙은 표적,, 기적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표적이나 기적이 목표가 되고 목적이 되면 천박합니다.

목표는 거룩이고, 사랑이고, 전도이고, 목적은 하나님 나라이며 하나님영광이어야 합니다.

표적과 기적은 옵션일 뿐입니다.

 

병 나은 것도 좋지만 병 걸리지 않은 것은 얼마나 큰 표적이고 기적인가요?

코로나의 역설이 있습니다.

당연했던 모든 것이 실제는 표적이고 기적이었음의 재발견이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잠깐 강제로 멈춤이었는데 하늘이 파랗고 하수에 물고기가 올라오고 북적대던 광장에 야생동물이 거닐고 전쟁과 내전과

갱단의 범죄가 멈추고 손을 맞잡고 방역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피폐해졌다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효과를 얻고 있습니다.

코나로 사망자가 많다지만 산업폐수, 공기오염, 전쟁, 내전, 갱단들의 범죄로 죽는 숫자 보다 되레 산자가 많다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이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표적이고 기적 아닌가요?

 

결론) 주님의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여기와 저기가 하룻길도 안 되는 길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단절되거나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제자들과 함께하셨으니 우리가 고대할 만합니다.

믿고 사모하십시오,

하나님 우편의 보좌에 주님이 계시며 그 영광을 내게도 공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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