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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삶 > 설교말씀

죽어야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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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05-17 15:49 조회 39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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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달라지지 않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마차대신에 자동차, 봉화대신에 스마트 폰, 흙집대신에 고층아파트 등의 차이와 변모는 있을지라도 사람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단 한분의 구세주가 인류를 구원하셨고, 성경은 여전한 진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 사람

“포노사피엔스” 라는 인류를 들어보셨나요? 스마트 폰 없이는 살수 없는 현대인을 말합니다.

농담으로 신인류의 출연을 말했지만 실제 다른 종의 출현은 아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가요?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은 흙으로 빚어진,, 하나님 닮은, 하나님에 의한 생물입니다.

한계적인 존재, 인격적인 존재, 자의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더하여 하나님의 숨을 가졌기에 생령인데,

하나님과 교제하는, 종교심이 있는,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임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동물이면서도 신적 기능을 발휘하고 영혼을 소유한 고상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영혼이 죽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화목이 아닌 불화목 상태인 죄인의 신분이기에 하나님을

피하고, 하나님은 찾아내시고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의 인간대로 회복시키고자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자녀로 살아야 할 윤

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경우 괴물이 되어 피차 물고 죽이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성경은 이런 면에서 백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가?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그래야 하는가?

믿음의 내용이고 기독신앙의 기본입니다.

본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계시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골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위의 것을 생각하는 일은 하늘에 속한,, 천국에 관한 모든 것으로 구원받은 영혼,

하나님과의 화목한 하나님자녀 된, 신령한 것을 위한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예수님이 사셨던 그 본대로입니다.

다른 말로 “믿음으로 산다” “말씀대로 산다” “성령을 따라 산다”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표현이고 고백입니다.

 

또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세상풍조대로 사는 것, 남들처럼 사는 것, 우리의 본성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을,,

하지 말라 입니다.

이 일은 쉽고도 어렵습니다.

본성이 죽고 영혼이 살았다면 새 성향과 새 습관이 될수록 비교적 쉽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본성을 거슬리기에 어렵습니다.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라

침팬지와 오랑우탕은 비슷해도 애당초 생명이 다르기에 행동이 다릅니다.

침팬지가 오랑우탕처럼, 오랑우탕이 침팬지처럼 되려면 훈련이 아니라 태어나야 합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죄로 지배받은 사람은 선과 의를 행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과 의를,,악이 무엇인줄 배웠어도 행할 능력이 없어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못합니다.

생명이 없어서인데 그러나 거듭나면 가능합니다.

어린아이가 작아도 커가면서 모든 행동이 다른 부모와 같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 속에 부모의 생명이 감추어졌기에 점점 성장하면서 성숙되어집니다.

사람에게 예수생명이 심겨졌으면 성도이고, 생령이고, 마침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데 이상 없습니다.

여기에 예수생명을 확인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 하는가? 두려워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공로를 감사하는가?

*마음과 생각 속에 무엇이 지배하는가?

*무엇을 즐거워하는가?

*성령이 계시는가?

종교는 침팬지를 오랑우탕화 시키려고 훈련하는,, 잠깐 동안 따라하는 인위적인 모양이라면,

복음은 예수생명을 영접한,, 그 생명이 이끄는 대로 사는 인품을 만듭니다.

 

2) 본성대로

낡은 집을 버리고 새집으로 이사했어도 옛집대로 사는 습성이 있습니다.

성도가, 생령이 되었어도 옛사람과 옛습관을 따라 사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변화에는 세월이 필요해도 세월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본인이 새롭게 살고자 하는 의지적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줄탁동시라는 말을 아시지요? 어미 닭과 병아리가 동시에 알을 깨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예수생명을 심으셨고 의지를 작동시킨다면 성도는 거룩한 반응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기에 예배참석, 개인적 기도와 성경읽기, 단정한 생활은 기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사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땅을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 땅을 없애거나 세상을 떠나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떠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그러므로 땅에 속한 제체들의 일들, 곧 성적인 부도덕과 불결한 행도으 정욕, 악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우리 신앙은 깨닫는 철학의 신앙이 아니고 믿음의 신앙이고 행동의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죽으심으로 여기고 내 지체 속에서 자리 잡은, 뼛속 깊은 행동의 근원들을 죽었다고 간주해

야 합니다.

 

첫째 음란을 크게 여겨야 합니다.

음란은 음행을 일으키는 모든 생각인데 “이 정도는 괜찮아” 가 아닌 무조건 피해야 삽니다.

요셉이 이 유혹을 벗어난 비결은 현장에서 피했기에 승리했습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된 그 저변에는 이때의 발휘된 믿음으로서 하나님이 귀히 평가하신 것입니다.

반대로 다윗 왕은 용납했다가 고의적인 살인을 저질렀고 결국 하나님께 돌아서는데 많은 눈물로 지새워야 했습니다.

(시편51편은 반성문임)

 

그리고 이 음란한 죄는 다른 죄와 달리 자기 몸 안에서 나타납니다.

말세일수록 현대는 음란의 시대가 되어 더 큰 쾌락을 추구하고 온갖 변칙을 동원하며 합리화시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동성애도시인 소돔과고모라가 왜 멸망했는지,,

이스라엘 12지파가 왜 큰 전쟁을 치러야했는지,, 바로 이 음행 때문이었습니다.

현대는 사이버 상에서도 이 음란이 은밀하게 유혹되고 거래되고 더 할 것입니다.

청년들은,, 아니 홀로된 사람들도 참을 수 없거든 결혼하라는 교훈이 있을 만큼, 또 부부들도 기도하기위해서 잠깐 분방할

수 있으나 곧 다시 합방하라는 이유가 음란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다 같은 고리인데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50억을 주면 5년 동안 징역을 살겠다.” 직장인들에게서 회자되는 말이랍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큰돈이고 요즘 징역살이는 괜찮다고 하니,, 만약 거래라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계획한다면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입니다.

문제는 이런 생각과 이런 가치관이 많은데 있습니다.

자본주의 폐단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대학가야지요? 이왕이면 좋은 대학가야지요? 그 결과 좋은 직장에서 쉽게 돈 벌고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야

지요? 또 잘 먹고 잘사는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종종

“다 먹고 살기위해서,,” 라는 말로 당위성을 내세우는데,, 문제가 시작됩니다.

돈 보다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교육도 돈, 학교교육도 돈, 직장생활도 돈이라면 어떻게 되겠나요?

사람은 돈 버는 괴물이 됩니다.

몇 년 전 모 교단에서 강남의 교회들의 교회학교의 주일 참여도가 떨어졌어졌기에 조사하니,

부모들이 교회보다는 학원으로 보낸 이유였습니다.

결국 믿는 부모들이 본의 아니게 우상숭배를 가리킨 것이 되므로 여기서 죽어야 합니다.

좋은 학교와 부자가 되고, 행복자가 되어도 그 이상의 하나님영광을 품도록 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없다” “심판도 없다”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셨겠느냐”

하면서 자기 멋대로 하나님을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도 자연재해, 우연의 일치, 아니면 재수가 없어서 등으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통치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이시고 현대와 미래에서의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질투, 하나님의 보복,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를 보십시오,

고대 남 유다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졌다가 하나님진노를 받는 참혹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경고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마침내 노를 발하시는데 바닷물이 마르고 땅이 진동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공경하면 하나님의 진노대신 복이 임하는데 곧 하나님의 공의

입니다.

시91: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에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로다

 

결론) 지난주간 86세의 변호사가 부인상을 당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좋은 차에 기사를 두고 건강하게 활동합니다.

그 변호사가 예배 후 울면서 간증을 했습니다.

판사초임 시절 너무 젊어서 판사가 되었기에 관사에서 빗질을 하는데 “너의 아버지판사 어디계시냐” 하며 묻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아내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오면 방바닥에 펼쳐놓고 좋은 돈을 골라 십일조를 드리면서 “하나님, 부자되어 잘 섬기게

해주세요.” 했었답니다.

대법원기획실장을 마치고 변호사로 개업했는데 어느 소송에서 이김으로 정평이 나서 지금껏 큰 소송을 맡곤 한답니다.

믿음의 소망이 단순히 부자가 아닌 꿈 너머 꿈이 있었는데 기도대로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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