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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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좋아야 좋은 것이 아니고 나빠도 좋을 수가 있습니다.
바람이 없다면 어떨까요? 새들이 나는 일도,, 꽃씨가 번식하는 일도 힘들 것입니다.
숲 개발이 사람에게는 좋다지만 야생동물에게는 어떨까요?
1) 성도의 고난
성도의 고난이 그렇습니다.
이 고난이 은혜인 것은,, 믿음을 견고케 하여 주 안에서 굳게 서는 힘을 얻곤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당시의 교회들이 그랬듯이 박해를 받았었습니다.
부랴부랴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파송해 저들을 굳게하고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교회가 디모데를 되돌려 보내면서 사도바울과 그 식솔들을 위해서 답례를 했습니다.
살전3:7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
았노라
사도바울이 “우리가 살 것 같습니다.” 했으니 단순한 인사가 아닌 중심어린 인사였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어려운 중에서도 어려울 사도바울에게 선교생활비를 제공한 듯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힘들 때 사도바울이 함께했고, 이제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살만해지면서
사도바울을 생각한 것인데,, 고난의 유익이 되었습니다.
신기하게 믿음은 이렇게 작용합니다.
남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부터 챙기게 되고 결국 그가 또 나를 챙기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기심이 절대 나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타심 보다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자기혼자가 자기만 챙기는 것이 좋고 빠를 순 있어도,, 겪어보면 여럿이 혼자나 여럿을 챙기는 것이 한결 좋고 빠름을 발견
합니다.
아기 코끼리가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사자 떼와 독수리 떼가 몰려왔고 어미 코끼리는 전전긍긍했습니다.
이때 어디선가 코끼리 떼가 달려와 방어진을 쳐주고 사자를 몰아내곤 했습니다.
그사이 어미는 새끼를 구출했습니다.
이것을 품앗이라고 합니다.
옛 어른들이 살았던 공동의 모습이고 하나님나라의 모습입니다.
흔히 하나님나라하면 기도하고 성경만보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적인 삶의 나눔이고 섬김입니다.
이런 하나님과 사랑을 모르고는 나눔과 섬김을 이룰 수 없습니다.
받아보지 않고 어떻게 줄 수 있나요?
은혜에 대한 감사감격이 없고 긍휼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함께할 수 있나요?
그러므로 좌파적사고와 체제에서는 이런 이상은 있어도 실천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현대가 이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개인이 잃었기에 각종 보험으로 대체하고,,
교회도 잃어가기에 사랑이 희구한 시대가 됩니다.
2) 믿음,
이타심, 나눔과 섬김, 언뜻 보면 사랑만 있으면 될 성싶지만 아닙니다.
믿음이 앞서야 합니다.
살전3:9)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떤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이상하지 않나요? 데살로니가 교회에 감사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감사한다니..
사랑만도 나눔과 섬김을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몰라주면 서운하기도 하고 또 상대사람 따라 나눔과 섬김도 하게 됩니다.
감정에 치우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따라가면 진실하고 그 사랑은 확실해집니다.
왜요? 감정적인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 향한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댁을 갔더니 큰 상자가 하나 놓여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정을 위해 목사님이 놓고 가신 싱싱 야채였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과 통화하니 목사님이나 교회가 아닌 구세군교회가 지역교회들을 통해 나누고 섬긴 예수님의 선물이었습
니다.
사실, 그 때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교회가 이런 선한 사업을 하면서 구세군교회에게 함께하자할 수 있었을까 하며 자문했었습니다.
군교회의 간식비를 청구했더니 목사님은 공문을 요청했고,, 그 후 공문을 보냈다며 전화를 했더니 “자기네는 자기네 교단
군목만 섬긴다” 했습니다.
이런 모습과 얼마나 대조적인지요?
이 믿음을 우습게 여기지 마십시오.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는 권세만이 아닌 신비한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구의 온도를 지키는 오존층처럼,,
사실 이 오존층을 잘 몰랐지만 알고 보니 중요한 보호막이 아니었던가요?
또 무슨 알이든,, 알에는 알을 보호하는 화학제가 묻어 나오듯이 하나님이 주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그렇습니다.
벧전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
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의 전신갑주와는 다릅니다.
성령의 전신갑주는 영적인 전쟁을 위해 내가 챙겨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렇지 않는 “하나님 능력으로 보호하심”입니다.
이 보장과 약속을 믿음으로 내가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돈독하게 하기위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과정이 고난입니다.
3) 고난의 백신
사실 고난은 두렵고 싫습니다.
박해, 가난, 각가지의 시련 등, 그러나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 없는 세상과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호를 받고 또 “잠깐”이라고 할만 큼,
즐기는 일이 되는 필요과정이 되고,, 장차 기뻐하는 일이 되는 데는 믿음이 백신입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특전단부사관들이 16주간의 훈련과정을 마치고 임관하는 신문사진을 보았습니다.
16주간동안 군사기초훈련, 온갖 침투훈련, 고문극복훈련 등의 지옥훈련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무엇이었을까요? 왜 그들이 자원했을까요?
수료와 임관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이 믿음 따라 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나요?
벧전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 보다 더 귀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
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의도를 믿어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고난 속에서 담대하고 원망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알기 때문입니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려 하심입니다.
“하늘의 유업을” 잇게 하려 하심입니다.
“영혼의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 앞에서 허망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나요?
변하는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 어디 있나요?
벌레 같은 나를, 부초 같은 누가 나를 기억하며 끝까지 사랑하고 챙겨줄까요?
늙어 종말을 향해 가시는 어른들을 보니 외롭고, 기억력이 없고, 기운 없는 삶을 사시는데 효자도 대신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이 이 땅의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저 세상천국까지 인도하십니다.
그 인도하심이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신비한 티켓이지요? 모바일보다 더 편리하고 안전한 천국용, 또 천국행 티켓입니다.
천국으로 인도 받는 과정에 고난이라는 옵션이 있고,, 그 옵션 안에는 두렵고 떨리는 청룡열차편이 있고, 병원입원편이 있
고, 거지나사로체험편이 있고, 광야홀로 산책편이 있고, 늙어 양로원지킴이 편도 있지만 믿음티켓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
하심을 받습니다.
결론) 믿음티켓 값과 사용처가 궁금하신가요? 안내판인 성경을 보시고요.
그래도 궁금하시면 기도로 문의하시고요.
그래도 궁금하시면 앞서가셨던 주님과 선지자들과 옛 사도들과 초대교회성도들을 보시면 됩니다.
히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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