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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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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05-31 16:15 조회 39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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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모 목사님은 “이번 맥추절에는 북한어린이 돕기 헌금을 가지려고 해요” 했습니다.

이 맥추절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7주간 지난 후 보리수확을 이룬 감사절로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하는 유대교적인 절

기입니다.

기독교로는 이 용어자체부터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맥추절을 지키면 유월절도 지켜야 하고 결국 안식일도 지켜야 합니다.

기독교는 이 절기의 의미상 성령강림절입니다.

성탄절은 주님이 강림하셨으니 성령강림절은 말대로 성령이 강림하심입니다.

오셔서 교회를 탄생시키셨으니 곧 모든 교회의 창립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순절교파를 제외한 교파는 다소 축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1) 성령강림

성자이신 예수님은 육체로 오셨기에 제한된 공간과 시간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은 하나님어린양으로서의 대속, 하나님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면,

성령님의 강림은 그 구원받은 백성의 거룩함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아버지가 보내신 약속된 선물인데 믿는 자들의 보혜사로 오셨습니다.

요16:7~8)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

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이 성령님을 “하나님의 숨” 혹은 “예수님의 영” 이라고도 하지만,

하나님의 3위의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육체가 없는 영(신)으로 오셨기에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십니다.

생전의 주님이 성령님을 소개하시면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하심이 이런 의미였습니다.

또한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큰 약속과 보장을 해주셨는데 기억하시는지요?

마28:20)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육체로는 함께하실 수 없으시지만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성령님은 항상 함께 계실 수 있는 보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직접적인 제자들은 아니지만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지체이기에,

이 언약과 보장으로 오신 성령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과 항상 함께 있습니다.

 

이 성령님,, 갑자기 세상에 강림하심이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시기에 천지창조에도 활동하셨습니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은 많습니다.

천군천사도 하나님의 영인데 부리는 영일뿐입니다.

또 그 밖에 다른 영들도 있고 그 중에는 두루 감찰하는 일곱 영도 있습니다.

계5:6) ~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러나 성령님과는 지위가 다른 영입니다.

“운행하시니라” 천지창조의 성령님은 예수님탄생에도 개입하셨습니다.

마1:18) 예수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

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성령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숨” 정도가 아닌,,

하나님아버지와 아들이인 예수님과 모든 지혜와 능력과 권세와 영광이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다만 창조와 통치와 구원과 심판에서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2) 오순절 강림

이 성령님이 예수님과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따라 부활절 지난 50일에 오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첫 밀 수확 일에 첫 곡식인 밀로 감사를 드리는 맥추절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성경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성령님도 성경적으로 오신 것입니다.

다만 땅에서 드림이 아닌 하늘에서의 보내심으로 오셨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고 그 때부터 제자들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교회행전이고 성령행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름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예수님은 승천하셨고 제자들은 환희와 담대함으로 살면서,, 또 한 편으로는 유대교의 박해가 여전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

이 엄습할 때지만, 주님이 “성령을 기다려라”는 말씀대로 기도하며 기다리던 중 처음 겪는 일을 맞다트린 것입니다.

 

이 성령님의 충만함이 사도들과 또 믿는 이들,, 민족과 지역으로는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렀고,

독일에서의 종교개혁과 청교도들과 우리까지 미쳤고, 멈추지 않고 다시 동남아,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남미국가, 아프

리카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흔히 기독교를 종교라고 하는데 종교와는 다릅니다.

종교는 좋은 가르침이라면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전도인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중보자로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여기에 성령님은 전하는 자와 듣는 이들의 입술과 마음을 감화감동 시켜서,,

전하는 이는 능력으로, 듣는 이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님을 구주로 전할 수도,,믿을 수 없고, 성경역시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드릴 수 없

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계속계속 성령을 의지하고 따라야 합니다.

현대성도들의 실패가 있다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만남도 확실하고 구주로 믿는 믿음도 좋은데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적용에서 실패합니다.

비슷하게는 기업이나 업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산과 영업은 성공해도 A/S에서 실패가 많아 낭패를 보는 경우인데 이는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불만이기 때문입니다.

 

3) 성령 충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삶” 여기서 성공해야 거룩한 승리를 이룹니다.

충만은 하나님의 몫인 반면 따라 사는 삶은 내 몫이기 때문입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연길의 목사님이 힘들게 왔다가 힘들게 들어갔습니다.

연길과 농촌교회의 몇몇을 물어 보았습니다.

농촌도시의 큰 교회는 100명도 못 모이고, 또 목사는 당뇨와 관절로 아프고,,

또 누구는 교회당이 폐쇄 당하고,,이유를 불러보니 코로나로 교회당을 폐쇄하라할 때에 병 고친다고 치유성회 하다가 사람

을 상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면 본성적인 정욕과 탐심을 이길 수 없으며,, 다수가 뭉쳐서 사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기에 결국

현저한 육체의 일을 이루게 됩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함은 내 속의 본성을 거스리고 세상풍조를 거스립니다.

갈5: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믿음은 이상이고 삶이 없는, 맛 잃은 소금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이 무엇인가요? 성령 다스림 안에 사는 삶입니다.

갈5:24~25)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그러나 성도는 이미 가능해졌습니다.

갈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건강과 다이어트에 유념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해야 할 바는 열심히, 말아야 할 것은 끔찍이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은 더 쉽습니다.

성령님을 따라 살면 됩니다.

 

종교는 자기의지로만 구습과 악습과 인간 본성을 거스려 살려고 하다가 실패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가능합니다.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이겨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스스로 날려는 연하고 바람을 타고 나는 연하고 다른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성령을 따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결론) 열매는 성숙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성숙하기 전의 이런 성향들이 내 안에서 발동하는데 새 성품에 순종하고 순종해서 습관이 되고 인품이 되고 삶이

되도록 의지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생활경건이고 기도는 여기에 플러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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