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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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지혜의 사람을 “총명하다” 고 합니다.
총은 눈이 밝음을, 명은 귀가 밝음을 말합니다.
단순히 잘보고 잘 듣는 정도가 아니라 의미를 파악하는 통찰의 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찰은 관심이 절대적입니다.
며칠 전 동네의 한 가게를 찾아가는데 길거리에서 그 가게주인을 만났습니다.
그 가게 주인은 다른 가게에서 우리를 보고는 우리가 자기네 가게를 가는 줄 알고 부리나케 오는 중이랍니다.
우리는 중간에 다른 가게로 갈까 했으나 다른 가게주인이 반말을 하는 게 싫어 늘 가던 가게로 간 것인데,, 만약 딴 가게로
갔었다면 보았을 텐데,, 서운 했을 뻔 했습니다.
1) 안목
사람마다 안목이 다른데 장사하는 사람들은 손님들에게 눈이 갑니다.
그래서 말이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돈 뜯기고는 사는데 손님 뺏기고는 못 산다.”
좋은 시장일수록 호객행위를 금지시키는데,,
이는 손님보호라는 명분이지만 실제는 상인 보호조치입니다.
농부의 안목은 어디에 있나요? 작물에 있고,
양봉업자는 벌에게, 스승은 제자들에게, 부모는 자식에게 있습니다.
아들로 신경 쓰는 집사님이 계십니다.
이 아들이 장남인데 외국으로 관광 나간 체 몇 달째 들어오길 기피하면서 돈 보내달라며 엄마한데만 연락하고,, 들어오라
는 아빠의 전화는 씹고, 부모는 속상했습니다.
나도 늘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곤 하는데 최근 내가 집사님 꿈을 꾸었습니다.
그 아빠 옆에 아들이 함께 있어서 “좋은 일이 있냐며,,” 전화했더니,,
오늘 아들이 들어온다는 날인데 올지 걱정이라면서 아침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 그 사람을 웅변하고,, 어떻게 보느냐,, 역시 그 사람을 웅변합니다.
그러므로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개 눈에는 똥이 보인다.” 는 말은 진실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보이나요? 어떻게 보이나요?
모든 인문학은 사람을 탐구하고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 그 인문학 정도에 따라 사람에 대한 태도가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 지식의 정도가 하나님의 대한 태도를 결정짓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보실까요?
렘5:1~2)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넒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용서하리라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보시고 중심을 감찰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주님은 성전 헌금함 앞에서 무리들의 태도를 살피셨습니다.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의도적인 통찰인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의 감찰이십니다.
드러난 헌금행위를 통해서 속마음과,, 그 신앙의 깊이를 측량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얻은 그 지혜를 제자들과 공유하셨으니 제자들에게는 산지식이고,
지혜의 교훈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
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2) 마음의 깊이
사람은,,상대방의 마음 깊이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알 수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은밀한 중에 행하는 모습이 그를 증거 합니다.
또 귀한 물질의 사용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오해 마십시오, 신앙에서도 헌금이 많은 것만이 좋거나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헌금정신을 그렇게 알고 있었다면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양적 하나님이 아니라 질적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셨음이 그 증거입니다.
막12:44) 그들은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전체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이런 과부의 태도는 곧 구약제사의 태도이고 언제나 예배태도이며 하나님공경의 태도입니다.
신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창세기에 계시된 예배의 원조인 카인과 아벨의 제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카인은 농사짓는 자이였기에 곡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이였기에 양의 첫새끼와 좋은 기름으로 드렸습니다만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창4:4~5)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왜 차별이 생겼을까요? 혹자는 예물의 차이라고 하는데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 후 카인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답이 됩니다.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
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그러므로 카인은 자기중심적인 예물과 제사를 드렸다면 아벨은 반대로 하나님중심의 제사와 예물을 드렸다고도 할 수 있
습니다.
이는 마치 부자는 헌금만,, 쉽게 그리고 많이 드렸으나,
과부는 적으나 그러나 마음부터 진실하고 어렵게 드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카인은 자기사랑이었다면 과부와 아벨은 하나님공경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헌금에 있어서는 많은 것 보다는 정직하고 진실한 삶의 마음부터 드려야 하고,
기도는 오래하기 보다는 가슴을 치는 애통과 감사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찬송가도 그렇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 아닌 하나님께 합당한 찬송을 부르도록 중심축을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옮겨야 합니다.
전10: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 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이 근본적 태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그러나 지성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박한 믿음이 되고 주변에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많이 내는 것이 좋은 믿음이고 주님 사랑함이다” 는 식의,
“예배는 앉아 있으면 된다.” 는 식의,,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요?
그렇게 함으로서 덕을 보는 자들의 꾸민 말인데 신앙의 가짜뉴스인 셈입니다.
3) 영과 진리
하나님을 섬기는데 최고중심적인 태도의 기본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예배자의 합당한 태도입니다.
물질 보다 눈물을 드리고,, 감사를 드리고,, 죄를 다스리는 삶을 드리고,,그리고 물질은 형편 따라 드리면 되고,,그렇지 못
해도 하나님은 후대하십니다.
그럼에도 이 모습이 결여되고 있다면 믿으시겠나요? 정말 돌아서야 합니다.
거듭남도 여기서 출발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했는데 어찌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진노를 모르는데 왜 구세주의 보혈을 붙잡나요?
지난 주일이 성령강림주일이었지만 한국교화 예배회복주일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회복을 선포했는데 유감되게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되었고,
그 중심에 몇몇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셨나요?
나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한국교회 예배를 거부하시나 보나 했습니다.
딸아이가 밥상을 차렸는데 아버지가 식사를 거부하신다면 무엇인가요?
아프거나 심기가 불편하다는 무언의 제스츄어로서 지혜로운 딸은 단박에 알아차리고 여기저기에서 불편의 원인을 찾아 해
결하고 아버지 심기를 편하게 할 것입니다.
에스더가 그랬습니다.
궁궐의 왕비인 자신은 자기 동족이 다 죽게 되리라는 음모를 몰랐습니다.
성문 밖에서 귀동냥하며 살던 삼촌 모르드개는 이 일을 알고 대성통곡했습니다.
삼촌이 운다는 소식에 왕비인 에스더는 옷 몇 벌을 보내 삼촌을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삼촌은 그런 위로를 거절하며 왕비가 왕 앞에서 탄원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왕비라도 왕의 부름 앞에 먼저 나갈 수 없던 규례가 있었지만 왕비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단호한 믿음의 금식기도 후에
왕 앞에 나감으로서 동족이 사는 반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죽으면 죽으리라 할까요?
코로나 때문에 죽겠다는 푸념들이 많은데 교회도 성도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의 힘듦을 말하는데,, 성도는 죄와 자기사랑에서 죽어야 영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교훈 아닌가요?
주님의 안목과 하나님아버지의 안목은 다르지 않습니다.
요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결론) 우리 안의 불경건의 요소들,, 무엇인가요?
하나님지식과 태도는 불가불의 관계입니다.
아는 것만큼 믿고,, 행동하는 것만큼 섬김입니다.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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