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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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무서운 일이 무엇일까요?
개인과 시대마다 다릅니다.
마마나 호환이나 적의 침공이 두렵고 무서운 시대가 있었습니다.
현대에 있어서는 외로움,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 혹은 가난이나 치매 등이,
그리고 대체로 망함이나 죽음이 두렵고 무서운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일을 예고하셨는데 유다족속의 멸망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경고
하나님은 신사적인 분이라서 이런 경고를 늘 예고하셨습니다.
망하길 바라신 것이 아니라 살기를 바라셨기에 유다족속에게도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메시지가 ‘예레미야서’고,
그 멸망의 판국을 내다 본 선지자의 눈물이 ‘예레미야애가서’입니다.
왜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셨을까요?
그들을 사랑하심이었는데 하나님의 자비였고 다윗을 통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왜 선지자는 울어야 했을까요? 두렵고 무서운 일을 짐작해서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현대의 우리가 왜 들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일정한 분이시기에 시대와 대상은 달라도 사람을 향한 통치가 변함없어서 교훈이 되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질서를 위해 여러 한계를 세우셨습니다.
하늘의 한계, 바다의 한계,, 그 밖의 공경 받을 자와 공경할 자 등의 한계도 세우셨습니다.
렘5: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
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
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조금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를 알 수 있고,
더 생각하면 모래와 바다를 만드신 이유와 그 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향한 한계가 하나님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를 모르기에 문제가 됩니다.
렘5: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들을지어다
그 문제가 무엇일까요?
만물이 있는데 그 만물을 보며 감탄하고 시와 그림과 노래를 부르면서 그 모든 것을 질서 속에서 통치하시는 창조의 하나
님을 외면하고 억지로 반역하고 배반하는 일들입니다.
그때의 현상을 보십시오,
렘5: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이게 일반이고,, 나아가 우상을 숭배합니다.
2) 반역
한계를 허물면 질서가 무너집니다.
흔히 도전과 모험을 통해서 인류가 발전했다지만 한계 안에서의 도전과 모험은 바람직합니다.
도전을 통해서 한계를 깨닫고 모험을 통해서 주 초월하심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민간우주선이 쏘아졌습니다.
역대 우주인들 중 광활한 우주세계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정신이상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창세기에는 옛사람들이 하늘에 대를 닿게 하자면서 바벨탑을 쌓았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시면서 그 탑을 허셨습니다.
이는 무모한 도전이고 모험이었기 때문입니다.
탑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우리의 이름을 내자” “우리가 흩어짐을 면하자”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향한 목적과 섭리의 반대였습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또 사도행전을 보면 주님 부활하신 후 예루살렘에만 머물고 있던 사도들에게 큰 박해가 나서 그들이 반의도적으로 흩어져
야 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왜 이런 박해가 일어났을까요?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의 반대적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모험과 도전만이 옳지 않고,
반대로 무조건적인 웅크리고 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한계를 지키고 도를 넘지 말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을 때가 있고 열심을 품고 일어설 때가 있는데,, 이게 어긋나면 반역입니다.
반역의 결과가 궁금하시나요?
렘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즉 수고했지만 추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열심이 좋지만 어떤 열심이냐를 살펴야 합니다.
비행기가 빨라도 목적을 잃으면 자동차만큼 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역은 더 한 반역을 낳습니다.
렘5:26~27)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이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새장에 새
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런데 자칫 희한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렘5;27~28) 그러므로 너희가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
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
특별히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언뜻 보면 흥하는 일 같지만 결국 망하는 일이 됩니다.
렘5:29)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
의 말씀이니라
우리는 일이 안되면 방법부터 찾고 흥하게 된다면 우쭐거립니다.
그러나 한계를 지킨다면,, 안되면 안 되었기에 하나님을 찾고,
잘되면 잘되어서 하나님을 찾는 순리적 신앙이 됩니다.
지금은 목사가 되신 여성복음성가가수가 있습니다.
그는 강남의 마담이었습니다.
30대 초반에 동부이촌동 60평대 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돈다발을 방바닥에 깔고 살았던,
80년대 고도성장시절에 돈벌이가 가장 쉬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시골집안의 피아노학과 출신이었지만,
돈을 번다는 욕심에 화류계에 자기 발로 뛰어들어 날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흥한 것 같았지만 망하는 길로 들어섰던 것이었기에 망했고 그 길에서 돌아 나오는데 한평생이 걸렸습니다.
이혼을 3번 했고, 엄마 무덤에서 죽으려고 혈관 끊을 면도칼과 수면제를 들고 갔다가
길가의 구절초를 보고 하나님 음성 듣고 살아나온 장본이이기도 합니다.
전도자가 됐고, 그러면서 새 은사를 발견해 시인으로, 소설가로, 복음성가수로,,
마침내 목사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내 삶의 모양이 이런 하나님의 법칙에 적용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가 하나님을 깊이 인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렘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
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목사된 나는 이 마지막 말씀에 찔렸습니다.
“선지자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그러나 여러분들도 명심하고 주의를 가져야 할 경계가 있습니다.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시대야합을 아시나요?
임금과 백성이 같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어른이 아이와 같으면 집안이 망하고 교회가 세상과 같으면 교회부터 망합니다.
지금의 시대가 꼭 그렇고,, 교회는 어떤가요?
정치인들은 국민의 뜻이라 하며 구실은 민주주의 발전이랍니다.
목회자나 교인들도 똑같습니다.
다 주의 뜻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예레미야는 잘못된 것이고 하나님은 실수하신 것입니다.
공의와 인자는 어디 있나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 되었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물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여기에 보험이 있나요?
옛말로 치부하지 말고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듣기에는 불편해도 이 말씀에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시고 부르십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는 주의 말씀과 성령의 네비를 잘 듣고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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