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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성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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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07-05 14:08 조회 392회 댓글 0건

본문

제복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를,, 또 어떤지를 웅변합니다.

이처럼 제복 입은 사람들을 잘 존중해 주는 곳이 미국입니다.

미담을 보았는데 한 주임원사가 비행기 일반석에 탔더니 1등석승객이 자기 자리와 바꾸어 주었답니다.

이런 존경과 존중은 제복 입은 사람들이 그 값을 먼저 해줄 때부터 가능합니다.

 

옛 제사장들도 제복을 입었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디자인하셨습니다.

기능적이고,, 특히 예수님과 그 사역을 상징하는 요소로 가득 찼었습니다.

이들이 관을 썼는데 그곳에는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아닌 “여호와께 성결”의 패를 전면에 붙이도록 했었습니다.

 

1) 여호와께 성결

잘 보십시오,

“여호와는 성결” 이 아닌 “여호와께 성결”입니다.

드림의 내용을 의미하며 제사장은 물론 모든 제사와 제물은 성결해야함을 강조합니다.

더 강조한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성결해야 합니다.

늘 살피는 것이 있는데 예배당은 청결하고, 예배자는 단정하고 등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가 다릅니다.

누구는 능력을, 누구는 스펙을, 누구는 용모를, 누구는 관계를,, 재산을, 전통을,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셨고 그 사람에 대해 성결을 가장 중요시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성결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귐은 서로 비슷해야 가능합니다.

나이도, 취미도, 재산도,, 비슷해야 오래 지속됩니다.

하늘의 거룩하신 하나님과 땅의 벌레 같은 사람은 간격이 너무 커서 비슷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불러주신 은혜와 주의 보혈로 깨끗하게 해주신 대속으로서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귐이 지속되게 하려면 성도는 어쩌다가가 아닌 계속계속 성결해야만 합니다.

레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

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성결은 죄악에서의 단절된 거룩이고 경건입니다.

“cut” 가 여기서 파생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거룩을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 온유, 사랑, 소망, 모세, 야곱, 사라, 에스겔, 에녹 등의 이름은 많아도 거룩이

라는 이름은 사용하질 않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셨는데

더 깊은 의미로서 마음부터 청결해야 범사에 성결이 가능합니다.

 

성도의 덕목이 많습니다.

흔히 믿음, 소망, 사랑을 대표적 덕목으로 꼽습니다.

그러나 성결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입니다.

현대 신앙은 여기에 위기가 왔습니다.

말세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종이호랑이와 플라스틱 꽃처럼,, 모양은 있는데 위엄과 향기가 없습니다.

 

성결한데 믿음의 능력이 없을까요? 소망의 인내가 없을까요? 사랑의 열매가 없을까요?

곰팡이가 올라오는 벽, 뒤틀린 바닥,, 설계가 불량이던지 시공 불량입니다.

이 치료 길은,, 회칠하고 시멘트 바르기는 임시적이고 다시 처음부터 잘해야 합니다.

 

왜? 죄악이 만연한가요? 왜 정직과 진실이 외면당할까요?

“여호와께 성결”을 무시하거나 무심하게 지내서입니다.

철저히 회개한 신앙인가요?

일반적인 죄악이라도 나를 찔러 잠잠할 수 없어 토해내야 하는 신앙인가요?

기독신앙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의존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앞에서부터 죄가 먼저 폭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언제나 예수님이 주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성결” 은 계급이나 모양이 아니라

삶의 거울이고 찌르는 가시로서 신령한 부담으로 작용해 결국 사는 이치가 됩니다.

출28:38) ~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2) 충성

만물을 보십시오.

모두가 생긴 대로 자기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합니다.

지렁이와 고슴도치의 역할이 다르고 청설모와 다람쥐의 역할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누구와 비교하면 어리석은 사람이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판단하는 일이 됩니다.

잠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

를 공경하는 자니라

 

청설모는 상수리나무 끝가지를 자꾸 끊어 내고 다람쥐는 열매를 자꾸 숨겨놓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손길로써 숲을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개입해서 자꾸 멸종을 만들어 내기에 자연이 화를 내곤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왜 있을까요? 주를 공경하는 사람을 만드는 역할입니다.

이러한 자리와 역할에서 이탈되고 변질된 것을 성경은 타락이라 합니다.

이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

마귀와 그를 따른 타락한 천사들이 그랬습니다.

유6~7)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

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있고, 어른 아이의, 부모자식도 있고, 숱한 직업군과 직종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누구든 창조주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고 성도는 주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행20:22~2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에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

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위는 사도바울이 이방선교사로서의 충성이 아닌가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식 키우는 부모들을 보면 아름답듯이,,

성도역시 자기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지금은 달라진 옥수동이지만 전에는 가난한 산동네였습니다.

그곳의 한교회가 어려운 중에도 노인들에게 우유를 나누어주며 생사를 확인했었습니다.

한 성도가 건넨 2500만원으로 목사님이 시작했고, 목사님처남이 3년간 200만원씩 후원했으며 그러다가 교회가 맡게 되었

습니다.

그때 오랫동안 출석한,,목사님께 주례도 받은 청년이 그 후원금을 낸다고 했었습니다.

형편을 안 목사님은 만류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실천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매달 300만원 그리고 1년 후에는 500만원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청년의 사업을 골드만 삭스사에서 관심을 갖고 투자를 조사했습니다.

그때 어려운사업체가 후원하는 교회도 찾아와 살펴보고 갔습니다.

결국 사업체의 투자로 이루어졌고 교회에도 그 골드만삭사에서 우유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대표로 있는 사업체가 “배달의 민족” 이었습니다.

 

3) 너희는

성도에게 본연의 일이 무엇인가요?

가정, 직장, 주 섬기는 일,,다 중요한데,, 주 섬기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데서 신앙비겁이 오고

가정, 직장의 문제가 발생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이기에 첫 관계가 어긋나면 나머지 관계가 어긋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어긋나면 외식이 나오고 능력대신 모양만 나와 충성도,, 성결도,, 열매가 없게 됩니다.

왜 첫 관계가 어긋나면 다른 관계도 어긋날까요?

주님은 포도나무가지 비유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그러므로 한 사람 보다 한 성도로서 본연의 모습에 충성해야 합니다.

벧후2:9~10)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내가 결정되어서 된 신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새롭게 지음을 받은 존재인데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고 지명을 받은 것입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왜 제사장의 “여호와께 성결”을 우리가 받아야 하나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삶의 보장은 내가 아닌 철저히 그분께 있습니다.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여호와께 성결” 은 외적 충성이 아니라 질적 충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께 성결”을 정금에 각인시켜서 청색 끈으로 매달게 했습니다.

변하지 않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치이고 제사장된 성도의 빛날 의무입니다.

 

결론) 예수님도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이 성결한 삶을 충성스럽게 사셨습니다.

청색 끈인 청결한 마음으로 우리를 품으셨고 우리를 하나님께 마침내 안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인 나는 누구와 비교하지 말고 “여호와께 성결”이 나의 업적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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