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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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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09-27 14:06 조회 41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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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공학적으로 잘 만든 유명 명품 나이키를 신은 선수와 모조품 나이스 운동화를 신은 선수가 경주했다면 누가 이길까

요? 모조품을 신은 선수가 이겼답니다.

진짜를 신은 선수는 자랑한다며 천천히 뛴 반면 가짜를 신은 선수는 창피한 나머지 빨리 뛰었기 때문입니다.

 

1) 신앙

신앙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습니다.

종교에 기반한 신앙은 가짜이고 거짓이 맞습니다.

이름이 무엇이든 종교적 신앙은 사람에 의한 시작과 기록과 전통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신이라 칭한 숭모의 대상은 헛것이고 그 섬김도 헛것이 됩니다.

문제는 열심은 있어도 종교적 신념은 양심에 화인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이런 가짜 신앙들은 외적인 것을 붙잡습니다.

의복이나 신상이나 신전이 웅장하고,,금칠을 하고 의전에 치우칩니다.

그리고 내용이 복잡하거나 확실치 않으며 기복주의 함께 희생은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에베소에 큰 신상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위용에 감탄했었습니다.

“크도다 아데미여” 다산과 풍요의 신이었는데 사람들은 거기에 빌고 빌었던 것입니다.

 

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도 자칫 종교화될 수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를 잃고, 성경을 외면하면 종교가 되고

기독교의 가짜가 됩니다.

이 역시,, 문제가 많은데 믿음 보다 신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이단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사람을 신격화 시키고, 체험을 성경화 시키고, 기복을 하나님나라화 시킨 탓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복음은 계시에 근거하며, 그 계시는 성령에 의한 계시이기에 믿고 순종해야 할 진리이며 하나님의 법이고

뜻입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

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

이니라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도한 그

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얼마나 분명한지요? 진짜 신앙과 진짜 복음은 단순하며 기복적이지만 않습니다.

되레 나의 부인과 부정을 요구하기에 따르는 자가 적습니다.

 

2) 여로보암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아들이며 후임 왕이었습니다.

마침 국가가 혼란스러웠을 때 그는 종교책을 앞세웠습니다.

왕상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 갈 것이 없

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그러나 살고자 했던 일이 죄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당을 짓고 보통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자기 마음대로 절기를 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섬김이 아니라 하나님조롱이 되었고 국가가 우상 숭배하도록 방기했습니다.

왕상13:5)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징조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구약은 신약의 기초만이 아닌 현대에도 귀감이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신이시기에 역사교훈을 받고 성경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섬김은 특별한 특권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고, 예배와 기도는 그 분을 뵙고 교제하며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무조건적질 않습니다.

구약에서는 장소와 제사법과 정해진 족속의 제사장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여야 합니다.

“안에서”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성령이 주신 믿음 안에서입니다.

죄에서 자유, 율법에서의 자유, 죽음에서의 자유는 만끽하는 반면,, 하나님께 대해서는 더 엄격하고 분명하여 주의 율례와

계명을 스스로 세우게 됩니다.

이게 진짜 신앙이고 복음적인 신앙입니다.

이는 종교적으로 절대 될 수 없고 거듭나야만 합니다.

 

개가 좋아하는 것과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다릅니다.

사람도 얘와 어른이 다릅니다.

왜 그런가요? 세계관이 달라서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물론적이라면 사람의 인권은 없습니다.

누구나 거듭나지 않으면 종교성은 있으나 하나님과 하나님나라를 거부합니다.

 

여로보암 같은 목사가 있다면 어떨까요? 부모가 있다면? 지도자가 있다면?

종교성을 갖고,, 열심을 내고,, 개혁한다며 전통적인 것을 다 허문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침묵하시지 않으시고 고치실 것이며 세상과 사람은 그때의 댓가를 고난과 고통으로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3) 개혁자

우리 신앙의 개혁은 예배당에서가 아닌 내 사고의 개혁이고, 타인을 변화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바르고 옳은 신지식이고

성령충만함입니다.

유명 목사를 찾아가서 기도 받는 일보다는 내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일이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처럼 하는 일입니다.

주일이면 신자가 아니라 주님에 대한 갈망을 갖고, 은밀한 중에 판단하시고 갚으시는 주님을 인지하며 흩어지든지 모이든

지 어디서나 복음적인 삶을 사는 일입니다.

종교적인 의전에 집착해서 절기만 기념하기 보다는 절기의 의미를 삶에서 이루워 생활실천에 밑줄 긋는 일이어야 합니다.

 

- 나태주 -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생략)

 

나만이 아닌 내가 속한 공동체의 선,, 그리고 나아가 더 큰 공공의 선을 이룰 수 있어야 하나님 나라입니다.

 

큰소리로 기도하는 만두가게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교인들은 그를 천둥집사로 불렀습니다,

집의 아이들도 그런 아빠를 거부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손님들도 뜸해졌습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목사님께 상담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사랑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집사님,, 기도소리는 좀 작게 줄이고 만두를 좀 크게 만드시지요”

 

이 모습에서 우리네 신앙의 주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종교적이기 보다는 실천적이어야 합니다.

신앙이 교회당 안에서만 머물지 말고 세상에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개혁은 세상과 나와 사람들에게 맞추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습니다.

왕상14:16)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

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하나님께 무지가 자기중심이 되었기 때문 아닌가요?

 

결론) 우리는 자꾸 신학이나 과학을 따라 가려합니다.

좋은 신학이나 과학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옛날에는 신앙에서 신학과 철학과 과학이 나왔다면 요즘은 인본주의적 철학에서 신학이나 과학이 나와 신앙을 지배하려

합니다.

누구보다 보혜사 성령님이 자신의 보혜사가 되심을 경험하십시오.

성령님을 ‘금일 휴업’ 하시지 않도록,, 그 분을 갈망하며 그 분이 쓰신 성경에 마음과 정신을 맞출 때 손과 발은 함께 움직

일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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