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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지 않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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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11-15 07:45 조회 360회 댓글 0건

본문

인류역사상 과부와 고아가 생긴 이유는 전쟁의 탓이 컸었습니다.

남편이 전장에서 죽으니 남겨진 그 식솔들을 살리기 위한 부족민의 궁여지책이 일부다체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과부는 기근 탓으로 보입니다.

 

1) 과부

과부에 대한 형용사는 다릅니다.

“돈 많은 과부” 가 있고 “수절 과부”가 있고 “애 딸린 과부”와 “가난한 과부” 도 있습니다.

대체로 애 딸린 과부가 가난한 과부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왕상17:12) ~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

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수년간의 기근으로 절박한 모습인데 세상에는 그리고 지금과 같은 코로나시대에는 이런 절박한 사람들이 많을 줄 믿습니

다.

 

사르밧 과부처럼 아들 하나와 양식 조금만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식구가 많아도 아픈 사람이 있고 수입이 없으면 더 절박해 집니다.

빚으로 시작한 신혼집들은 어떤가요? 사실은 빚 투성이기에 가난합니다.

이런 가난이 왜 있나요?

국가의 탓도 있고 개인의 탓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섭리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꿀 빠는 일이 좋은가요? 피 빠는 일이 좋은가요? 열이면 열,, 꿀이 좋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꿀 빠는 벌에게는 지겨운 일상이고,, 피 빠는 모기에게는 가당치 못 할 일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생긴 대로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의 섭리와 경륜에는 조화와 질서가 확연합니다.

다 부자만 있으면 그게 부자인가요? 다 가난한 자만 있다면 그게 가난한 자인가요?

잠22: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오직 하나님이 감독이신 큰 세상이라는 연극장에 역할분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자를 멸시하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고,

반대로 부자를 부러워하면 그 역시 본분에 불충하는 일이 됩니다.

잠23:4~5)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부자의 역할이 무엇이고 가난한 자의 역할은 무엇이가요?

약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

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부자는 가난한 자를 챙겨야 하고 가난한 자는 믿음에 부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탐심을 부추 켜 부자는 더 부자가 되려하고,, 가난한 사람을 게으른 사람으로 취급하며, 가난한 사람역시 자기

손으로 일 하기 보다는 부자를 나쁜 사람,,

부정한 탐관처럼 착취하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일은 마귀의 궤계입니다.

세상이 양극화가 심각해지는 것이 다 이 탓인데,, 유감 되게 하나님나라의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 가난한 과부를 통해서 엘리야를 먹이시고,

또 이 엘리야를 통해서 과부를 살리셨습니다.

세상에는 꿀 빠는 벌만,, 피 빠는 모기만 존재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벌이 없으면 세상은 망할 징조랍니다.

그런데 그 벌에도 일벌이 있고, 여왕벌이 있고, 사나운 땅벌도 있으며,, 각 종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면 뛰어봐야 벼룩이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형국이 됩니다.

 

혹 이런 설교를 하면 청년들은 반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부자가 되어야지,.,암요,,할 수 있으면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부터 잘되어야함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창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

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불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2) 거듭남

오늘 이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갑작스런 떼부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에는 죽고자하는 형편이었으나 이제는 살 형편이 되었을 뿐입니다.

왕상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전에는 가난했던 사람이 이제는 살 사람이 되었다?

이 사이에 뭐가 있었나요? 하나님의 개입, 하나님말씀의 선포, 믿음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부자가 되는 백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구든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 갈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 안에 생명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고 풍성해 집니다.

이 과부가 가난하고 싶었을까요? 죽고 싶었을까요? 그런데 결국은 그처럼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밖에 거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찾아 주시고 은혜주심은

당시의 많은 가난한 과부 중에서 그녀만이 가장 극심했을까요?

아님 가장 착했거나 믿음이 좋았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되레 그 반대적일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 아들이 죽었을 때 그녀의 탄식을 보십시오.

왕상17: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

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여기서 주목할 말이 있습니다.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죽은 아들을 넘겨받은 엘리야의 기도를 보십시오.

왕상17:20)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역시 주목할 말이 “재앙을 내리사”

 

무슨 의미인가요? 의인이라서 찾은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서 찾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주시고 은혜를 주실 때만이 죽을 자는 물론 죽은 자도 살아나고,,

궁핍한 자가 부해지고,, 천한 자가 귀해 지는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서 남다른 것이 있다면 엘리야를 주의 이름으로 받아드렸고 순종한 것이 다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부류가 많습니다.

은혜를 멸시하고 세상 지식과 자기 경험을 의존하는 부류입니다.

 

꽃씨가 떨어졌고 봄이 왔는데도 싹이 피지 못하는 땅이 있습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운동장입니다.

찾아오시는 때와 방법은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그 온기와 그 생명에 반응하는 것은 내 탓입니다.

이런 은혜의 믿음으로 당대에 한센병자가 많았지만 나아만 장군만이 치유되었고,,

과부역시 많았지만 사르밧 과부만이 사는 은혜를 입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운명적이라도 주 안의 성도는 운명주의가 아니라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미국 교포에 대한 간증입니다.

20대 중반에 미국 유명 펀드회사부사장으로 년 봉만 수십억을 받던 청년이었습니다.

고급스포츠카 수집가였고 사치와 교만에 극치를 달린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부자 되려고 힘썼던 일이 행복이었지만 행복은 되레 없었습니다.

돈은 귀찮을 만큼 많이 벌렸지만 늘 스트레스와 허무 때문에 코카인에 빠져 살았습니다.

 

어느 날 커피 사러 간 형을 차에서 기다리는데 한 영감이 다가와서 예수 믿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단호히 “노”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다가 다시 와서 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할까요? 하고 물었을 때는,,

어떨 결에 “예스”해서“예수님,,예수님의 보혈로 이 청년을 씻어주시고 새롭게 하옵소서 아멘”

그리고 그가 가면서 낡은 성경공부 안내지를 주었기에 차 안에 넣고 한참 가는데 이상한 일이벌어 졌습니다.

자기 눈물에 데일만큼 뜨거운 눈물이 자꾸 나왔습니다.

또 다음 날은 자기 안의 변화가 왔는데 악한 영들이 빠져나가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 덕에 술 마약 폭력에서 즉각 해방되었습니다.

이 변화가 급진적이라서 형도, 어머니도, 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아 변화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분은 중년의 목사가 되어 한국에서 찬양사역자로 주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거듭 남은 누구에게나 요청됩니다.

내가 주를 찾기 전에 주가 찾아오셨고,, 내가 주를 부르기 전에 주가 나를 불렀습니다.

나는 그냥 화답만 하면 됩니다.

 

사르밧 과부는 주의 부르심에 어떻게 화답했을까요?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므로 생명의 온기가 발아한 것입니다.

왕상17: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결론) 가난한 중에,, 죽을 지경인데 누가 와서 무얼 달라하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어떨까요? 사르밧 과부는 달랐는데 믿음의 씨앗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떡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성도의 일입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한국교회가 달라져야합니다.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부자 되길 바라며,, 인구는 줄어도 교회를 빚으로 크게 짓는 성장주의였다면 이제는 가

난한 이웃을 챙기는 믿음의 결이 아름다운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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