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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11-29 09:55 조회 36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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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사를 보니 이름개명이 부쩍 늘었답니다.

대체로 자기이름이 창피한 경우 개명을 하곤 하는데 이 개명의 시조가 아브라함과 야곱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 형의 발뒷꿈치를 붙잡은 자,, 야곱자신도 그 이름이 싫었을 것입니다.

창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1) 옛 야곱

야곱은 선천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망가였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고자 눈 어둔 아버지와 쌍둥이 형을 속였던 사건은 유명사건입니다.

그후 야곱은 부모와 고향을 떠나서 어머니친정으로 도망갔습니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체,,광야에서 돌 베게를 베고 잠을 청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나타나셔서 참된 소망을 주셨습

니다.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

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고아아닌 생고아가 되어버린 타향에서 이 소망은 어땠을까요?

하나님은 이 말씀대로 야곱과 함께하셔 부자가 되게 하셨고 마침내 고향으로 되돌아오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창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

라

 

야곱은 의기양양했을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금의환향이기에 기분도 좋았을 것입니다.

빈손으로 도망가서 20년 만에 큰 식솔과 동물들도 많았으니,, 성공한 것이 맞습니다.

 

시골출신들이 추석이나 명절에 고향을 찾을 때 보면 차부터 광내고,

첫 휴가 나가는 용사들은 며칠 전부터 때 빼는 것이 야곱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한쪽에는 답답함이 있었다면,, 형과의 불화였습니다.

형과 어떻게 화해할까? 여러분 같으면 어떤 묘수를 낼까요?

야곱은 뇌물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창32:5) 내게 소와 양과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

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은 두려운 소식이었습니다.

창32: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이 사백 명을 야곱은 죽이기 위한 군대로 받아드렸습니다.

실제 그럴 수 있었습니다.

 

2) 답답한 야곱

두렵고 답답한 야곱은 살길을 찾아야 했기에 먼저는 하나님을 찾았고,

창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를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다음으로 야곱다운 방법을 세웠습니다.

창32:22~23)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과연 후안무치의 꾀였습니다.

가족은 죽어도 자신은 살 궁리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이 살려고 왕께 자기 아내 사라를 진상한 것과 같지 않나요?

이런 데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도 임하질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순장군이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에 찼던 것과는 다른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한 사람이 찾아왔고 그와 씨름이 붙었습니다.

창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 하다가

말이 씨름이지 격렬한 몸싸움이었는데 그 사람은 구약의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를 몰랐던 야곱은 그의 교훈이나 책망에 발끈했을 것이고,,

그 사람은 그를 계속 나무랐다가 싸움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옛컨대 “무슨 남편이 그러느냐? 무슨 아버지가 그러느냐?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어떻게 너만 살고자 할

수 있느냐? ”

 

야곱은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나부터 살고 봐야지 무슨 소리냐?”

결국 극렬함은 야곱이 생존에 치열했었기에 이기고 있었습니다.

창32: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여기서 야곱은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창32:27~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

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3) 이겨서 진 야곱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야곱이 이겼나요? 하나님이 이겼나요?

야곱이 이겼다면 이름이 이스라엘로 될 일이 없었을 것이고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설령 야곱이 이겼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져주신 것일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질 때 은혜가 임합니다.

중요한 것은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이 사건으로 관절이 어긋나 자아가 깨졌다는 것입니다.

흔히 기독교는 세례와 성찬을 중요시여깁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고난도 중요시 여겼습니다.

세례가 주와 연합되고 성찬은 그 거룩함에 참예하는 일이라면,,

고난은 고통스럽지만 실제적으로 주의 생명을 발아시키는 새새명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고난 없이는 주를 뵐 수도 없고 그 음성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고난의 유익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도 자식교육에 고난이나 결핍을 동반시키지 않나요?

사랑하는 내 자식이기 때문인데 실제 하나님이 그처럼 하시고 야곱을 그처럼 다스리신 것입니다.

그동안 야곱은 종교적이었기에 위기와 위험 앞에서 들었던 하나님게 약간의 기도만 있었고,,

실제는 자기 꾀가 충만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깨트리시고 낮추신 것입니다.

야곱이 깨지므로 하나님이 사셨고 낮아질 때 그 하나님이 주님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창32:30~31)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되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살면서 우리는 숱한 위기와 맞닥트리곤 합니다.

여기에서 대체로 야곱처럼 대응하곤 하는데 전적으로 내가 죽어야 됩니다.

위기와 고난은 성도에게 하나님을 대면하는 은혜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비록 절었으나 그곳을 통과할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

해가 돋았다,,놀라운 임재의 상징 아닌가요?

정정하게 걸어도 캄캄한 어둔 밤을 지나는 것 보다,,

절어도 해가 돋는 광명한 길을 가는 그 길이 주와 동행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사납던 형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셔서 절뚝거리는 야곱에 대한 온정이 싹트게 하셨습니다.

창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뿐만 아니라 에서가 준비한 그 사백 명은 야곱의 호위대가 되었습니다.

 

무슨 문제든 내가 변화면 상대도 변화합니다.

갈등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회정치환경 모두가 그렇습니다.

내가 죽는 그 사건이 브니엘인 줄 믿고 변화된 내가 이스라엘인 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야곱으로는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결론) 힘든 시절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에서처럼 두려운 존재가 되어 너나할 것 없이 치료제와 백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죽으면 죽으리라”는,,육은 죽고 영이 사는 브니엘의 이스라엘이 될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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