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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봇과 포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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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12-27 10:58 조회 41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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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유독 힘들었던 올해의 송년주일입니다.

나봇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포도원을 지키려다 왕의 모함으로 죽은 농부였습니다.

이런 나봇과,, 생명과 맞바꾼 포도원은 성도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1) 나봇과 아합 왕

사람에게는 사람만의 도리가 있습니다.

신의인데 믿음을 주며 또 믿어줘야 하는,, 가방끈 길이와는 상관없는 교양입니다.

사람에게 지나친 탐심은 신의를 저버리게 됩니다.

아합 왕이 제국의 황제는 아니지만 나봇 보다는 여러모로 탁월한 사람임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가 나봇이 조상적부터 일구었던 포도원을 소유하고 싶어 안달했으니 탐심입니다.

그래서 아합 왕이 직접 회유하다가 왕부부가 공모했고,, 마침내 거짓 증인까지 앞세워 나봇을 죽이고 빼앗았지만 스스로

무덤을 판 일이 되었습니다.

 

실제는 왕이 나봇을 표창했어야 맞습니다.

그동안 조상적부터 내려온 포도원을 잘 지키는 일은 하나님공경에서 나온 성실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표창은커녕 악인으로 몰아 죽였으니,,

공의를 져버리고 결국 자기와 나라도 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신하들이 이런 왕을 존경할리가 없을 텐데,,

이를 몰랐다면 어리석은 것이고 알고 그랬다면 악한 것입니다.

그러니 탐심의 작용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잠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개들은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데 아주 적극적이라서 사납기도 합니다.

개는 생각이 없어서 그렇다면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인 만큼 탐심에서는 죽고 의에서는 살아야 합니다.

특히 성도는 여기서 덧붙여서 하나님 경외하는 믿음으로 충실해야 합니다.

 

주 오심은 무엇인가요? 주 대속하심은 어떤 연유인가요?

주 오심은 이 죄악에서 건지시기 위함이었고,

구체적으로 우리의 모든 정과 육체와 탐심에서 죽고 살리시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2) 우리 포도원

그렇다면 포도원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가치는 무엇일까요?

과연 있기나 한가요?

 

개발 지구를 지나다 보면 섬뜩한 구호들을 볼 수 있습니다.

땅을 지키려는 조합원들이 투쟁에 나서면서 선전 선동한 내용들인데,,

땅을 수용하려는 정부를 자신의 땅을 빼앗는 흉악범으로 내몰기도 합니다.

적극적인 지킴의 모습입니다.

비슷하게는 노동투쟁도 그렇습니다.

자신들의 것은 죽어도 지키려고 합니다.

자신들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어디나,, 누구에게나 이 모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요?

한 사람으로써 건강, 가정의 행복,,미래적 삶에,,

최선의 수고함은 물론 더 나아가 싸워서라도 지켜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이 국가와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전쟁도 불사했던 것을 본 받아야 합니다.

 

성도로서는 나봇이 귀감입니다.

나봇이 죽도록 지켰던 포도원이 예수그리스도고 그를 믿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이기에 그 분을 잃으면 인생자체를 잃습니다.

다윗은 이 고백을 시적으로 진술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의 인생성공과 신앙승리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했었습니다.

첫째,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4)

둘째,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7)

셋째,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3)

넷째,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3:4)

사도바울이 왜 예수님을 왜 힘써 알려고 했을까요? 왜 그 안에서 발견되려 했을까요?

예수님의 진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지킬 것을 지키고 버릴 것을 강조했습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육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

라

지킬 것을 지키고 버릴 것을 버리는 삶이 힘들어도 아주 단순합니다.

주의 십자가를 붙드는 일이며 나를 위한 십자가로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내 육체의 소욕에서 죽으심이고,,

부활하심은 거룩한 성품으로의 나 살리심을 받아드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단 번에 이룩하신 대속이지만 성도는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살아나야 합니다.

죽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아합 왕처럼 회유하고 세상권세와 물질들을 앞세워 영생과 거룩을 지켜내지 못하게 회유하며 훼방하곤 합니다.

왕상21:8~10)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

족들에게 보내니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

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하고 곧 그를 끌고 나

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성도라 해서 직장에서 상사들이 눈총을 준다든지,,주일에 각종 업무에 동원 받는다든지,

주일 매장매출이 높다든지 등,

 

3) 나봇의 승리

결국 나봇은 포도원을 지키다가 죽었습니다.

적당히 타협했더라면 살았을 텐데,, 신념과 신앙 따라 죽었기에 순교적 신앙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의는 무심한 듯해도 무심하지 않으셨고 언제나 동일하신 만큼

엘리야선지자를 통해서 아합 왕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는데 아합 왕 부부는 무덤도 없이 죽어야 했습니다.

왕상21:23~24)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

을지라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들은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실제 이들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세상에는 3 가지 승리가 있습니다.

보이는 승리가 있습니다.

멋진 승리로서 환호와 후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며 곧 잊히고 쓸쓸해집니다.

내가 만든 승리입니다.

 

반면 보이지 않은 승리가 있습니다.

당장은 죽고 망한 것 같으나 두고두고 추모하며 숭모됩니다.

독립기념관이나 국립묘지나 민주화 공원에 가면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역사가 만들어 준 승리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당장의 배고픔이나 자유나 안식이나 권리를 위한 투쟁이 아닙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고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을 갈망하며 집중하는 신앙이고 나중에 결산에서 이기고 “잘했다” 칭찬 받는데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그랬고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요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후대하실 줄 믿어야 합니다.

마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

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이는 영원한 승리인데 천국승리입니다.

 

년말이라서 선교사님들의 소식을 받아 보았습니다.

다 힘든 곳에서 힘들게 사역하고 계셨습니다.

그중 영하 20도가 넘는 곳에서 계시는 분들도 계셨고,

또 캐나다국적의 의사가정들은 연길에 거주하면서 의료사역을 하시는데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결코 돈벌이가 아니었습니다.

북한 사역을 위한 전초기지로 중국에 머물고 있는 만큼 곧 추방될 위기에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국적의 의료인 가정들도 있습니다.

돈 벌고 편한 곳이라면 캐나다나 한국이 한결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를 사양하고 감시가 있는 곳에서 거주하며 의료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상 주심을 바라보아서입니다.

 

결론) 위대한 승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너무 환호라는 곳이나 후대하는 곳에 승리의 가치를 두지 마십시오,

자칫 인생 쓸쓸해지며 후회막급 할 수도 있습니다.

왕상21: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그러나 나봇 같이 죽어도 포도원을 지킬 때 하나님이 그가 죽어도 살게 하십니다.

올해도 포도원을 열심히 지키셨으니 그 수확의 기쁨을 누릴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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