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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시는 사랑 > 설교말씀

기다리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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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1-03 08:17 조회 42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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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시와 노래 등 작품이 참 많습니다.

기다림은 시대와 개인 따라 각기 달라서,,

누구에게는 희망이 되기도 하고 그리움 혹은 인내 그리고 고문이 되기도 합니다.

누가 무엇을 기다리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1) 기다시림의 하나님

하나님은 기다리심의 명수이십니다.

그 이유도 확실합니다.

사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하심이요

이런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기다리심은 사랑이요, 오래 참으심이며 고통도 됩니다.

 

그럼에도 그 백성은 어리석어 위기 때에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30: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옛 이스라엘은 지금의 우리처럼 사연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애굽으로 피신하고자 했었습니다.

사30: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자신들의 경험에 의지한 판단이었는데 그 결과 비용은 많이 치루었으나 효과는 없었습니다.

사30:7)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라합은 여호수아시대 때 가나안정탐꾼을 숨겨주었던 하나님 경외했던 기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라합이 “가만히 앉았다니”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는 비유입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국가지도자가 국가의 위기 앞에 동맹을 의지하거나 아니면 적성국과 화친을 맺는 일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론 위기 속에서 방백들을 찾거나 우상을 섬기는 일이 해당됩니다.

이런 일은 언제나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성도스스로 하나님을 떠나는 일입니다.

링컨대통령은 남북전쟁 때 남군에 포위되자 북군지역의 교회들에게 기도를 요청했었습니다.

그리고 남군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마침내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해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응답이었고,

하나님의 기적인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와 고난이 그 사람을 증명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습니다만 아니면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할 뿐입니다.

 

이런 백성의 불신은 하나님을 업신여김에서 비롯됩니다.

사30:12)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

어 그것을 의지하니

은혜를 베풀려하시는 하나님과 얼마나 반대적인가요?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 말씀부터 업신여김은 당연합니다.

개들도 주인을 믿지 못하면 주인 말을 업신여기는 이치입니다.

하물며 사람이,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이 그렇다는 것은 아주 몹쓸 일이고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경험해야 합니다.

그 경험치가 순종이 되고 그 순종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성도들은 하나님말씀을 부드럽거나 듣기 좋은 말씀만 찾아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여야 합니다.

내게 두렵고, 어렵고, 힘든 말씀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이기에 다 경험되어야 하며 어려운 말씀일수록 내게 화가 아닌

복이 됩니다.

사30:18) ~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기다리는 신앙

성도에게 하나님을 기다림은 바라보는 믿음의 한 과정이고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오래 기다림으로 마침내 이삭을 얻었습니다.

또 엘리야는 오래도록 기도하여 하늘 문을 열고 닫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출생시에 한나할머니와 시므온할아버지는 오랫동안 기다림으로 구원의 주를 보았습니다.

믿음은 구하고 침노하지만 반대로 기다림의 미덕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의 신앙의 문제는 구하고 침노하는 일도 부족하지만 기다림의 미덕도 없습니다.

너무 조급해진 탓입니다.

한 철 농사는 씨 뿌리고 한철은 기다려야 수확을 봅니다.

씨 뿌린 땅을 자주 헤치면 어떨까요?

밥도 끓는 시간이 있고 뜸 들이는 시간이 있습니다.

기도에 응답도,, 순종의 결실도,, 다 하나님의 때가 있는데 우리는 우리 때에 맞추려고 하다가 그만 사달을 내곤 합니다.

사30: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

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중요한,,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예수 안에 머무는 믿음의 성도요, 성령님을 따라 사는 성도들입니다.

그럼에도 통곡이 있었고 부르짖는 소리가 앞서 있었습니다.

그것도 간절히, 하나님에 대한 인정이고 고백이며 신뢰입니다.

여기에 은혜를 베푸심과 응답하심이 있게 됩니다.

 

3) 나은 세상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다리심 중에 은혜를 베푸시고 성도역시 하나님을 기다림으로써 복을 얻습니다.

하나님과 성도가 일치를 이룬 은혜와 믿음의 합치입니다.

그 결과는 단순히 점심 한 끼가 아니고 기념사진 한 장이 압니다.

좀 더 나은 형편은 물론 아주 좋은 세상을 선사하십니다.

 

* 나은 형편을 봅시다.

사30:23)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며

조건은 땅에 뿌린 종자가 있어야 합니다.

 

* 나은 세상을 봅시다.

사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

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는 반복적이기에 교훈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옛 이스라엘은 포로되었어도 귀환했고 이 말씀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중요한 역사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때리기도 하시고 싸매시는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때리실 때 경고하시고 싸매실 때는 신속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체질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못 고칩니다.

그럼에도 남을 고친다며 허둥지둥 대며 나은 세상은 더 어쩌지도 못합니다.

아니 꿈도 제대로 못 꿉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고 인생과 다르십니다.

우리 안에서 나를 고치시고 다른 이는 물론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하시고 바꾸십니다.

지금껏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더 기다리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달려가 품에 안겨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을 기다림의 최상의 모습입니다.

젊은 사자는 굶주림으로 죽을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맞이하시며 높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2021년도는 어떨까요?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이런 그림을 생활화하시길 축복합니다.

막연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갖고 침노하면서 잠잠히 기다려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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