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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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말씀의 종이었습니다.
욘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
니라
그러나 요나는 불순종하였습니다.
이유는 민족의 적인 니느웨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이 싫어서입니다.
“망해야 할 적이 산다” 는 것은 불편한 일인데,, 거기에 자신이 쓰임 받는다?
그래서 사명으로부터 도망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확실성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고치시는데,,
큰물고기부터 ‘박 넝쿨’ ‘벌레’ ‘동풍’ 등을 용도따라 사용하셨습니다.
먼저 사용하신 방편은 큰물고기였습니다.
욘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서
있느니라
이게 무슨 물고기냐? 관심은 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물고기일 뿐인데 하나님은 물고기도 통치하십니다.
욘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서 토하니라
요나는 이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머물면서 기도했습니다.
물론 이때의 기도를 보면 기도의 태도나 내용이 아주 진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욘2:1)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그러나 이 기도는 살려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살려 주세요”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자신이 이 물고기뱃속에 있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욘2: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여 이런 큰물고기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물고기인 만큼 쉽게 보내시질 않습니다.
먼저는 내가 하나님 뜻에 반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싫음이 아닌 그 뜻에 대한 순종이 불편해서 애써 거부하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 내 삶의 주변에서부터 폭풍이 일어나곤 합니다.
욘1: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서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그리고 이런 삶이 더 요동칩니다.
욘1:11) 바다가 점점 더 흉용한지라
그럼에도 뉘우치거나 돌이킴이 없을 때 하나님은 결국 큰물고기를 사용하시는데,,
이 큰물고기는 절박한 고난 중에,,자기 죄가 생각나는 모든 상황인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내게 향하신 뜻이 확실해서 계속적으로 초청하시는 은혜의 손길인줄 믿어야 합니다.
2) 물고기 뱃속에서
믿음과 감사로 사는 성도는 큰물고기든,, 작은 물고기든,,
고난의 뱃속에 들어갈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들어가거든 금식하며 하나님께 떼쓰기보다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한 일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린다고 생각하는데 착각입니다.
하나님을 설득하기 보다는 내가 설득당하는 것이 사는 길이 됩니다.
사58:6~7)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
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만약 요나가 성숙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이기심으로 자기감정을 앞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들도 고생 안 했고, 바다는 풍랑이 없었고, 큰물고기도 고생 없이,,
요나 자신도 평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큰물고기 뱃속에서의 경험은 들었던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위대한 신지식이 됩니다.
보십시오, 요나는 달라졌습니다.
욘3: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
읍이니라
물고기 뱃속에서 나왔기에 쉴 수도 있고 니느웨를 위한 준비도 필요할텐데,,
어떤 변명과 이유 없이 즉시 순종했기에 니느웨 사람들이 메시지의 진실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알만하지요?
그러나 모습이 순종적이라서 마음까지 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욘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어쩌면 당시의 요나는 전두엽이 쪼그라드는 5060대의 영감일수도 있습니다.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 보다 더하신 분으로써 이런 요나를 또 교훈하셨습니다.
욘4:6) 하나님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욘4: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욘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아니하시고 실수도 없으시지만 사랑하는 그 자녀와는 논쟁도 하십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한사람이 천하보다 귀한 존재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요나의 부족함은,, 하나님은 잘 알았지만 한 생명의 존엄함을 알지 못해 치우친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요나처럼 달래시고 기다리시고 대우해 주십니다.
예비하신 것도 많아 조금만 살펴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 교과서이고,,
하나님 뜻을 아는 백서이기도 합니다.
3) 예비된 존재
우리는 요나처럼 감정적이거나 이기적이어서 “안 돼요” “못해요” 하면 곤란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내가 하나님의 보내심과 예비하심이 되어야 합니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
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는 세상에서 선한 일을 위해 예비된 요나이고 보냄을 받는 요나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소금이고 빛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일성수와 예배만하는 신앙이 된 탓에,,
어느 덧 정직하지 못하고 이웃에 사랑주지 못하는 신앙으로 전락되었습니다.
예배하지 못한 것 보다 정직하지 못한 것이 더 큰 죄이고,,
기도하지 못한 죄 보다 이웃사랑하지 않은 죄가 더 큼을 알아야 합니다.
코로나가 여러 분야에 고난을 주었지만 새로움도 주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큰물고기뱃속이 되었기에 교회도 내가 생각하는 교회가 아닌,,
하나님이 의도하신 교회로 마음을 돌이킬 수 있으며,, 더불어 미래시대의 교회는 어때야할지,. 신앙은 어때야 할지를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편협적이며 자기만의 진리를 갖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믿음관,, 교회관,,정의관,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리보다는 진리를,, 나보다는 예수님을 앞서 인정하고 믿고 따라야 합니다.
욘4:10~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
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진짜 참 신앙이 무엇인가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일이요, 그 삶을 사는 일입니다.
그 존재가 성도입니다.
대단하고 놀랍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요나에게 무조건적으로 명령하시거나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물고기에게도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방편을 예비하심으로써 마음과 생각을 고치시는 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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