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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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감사와 보답 보다는 증오와 복수가 많기에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만약 반대적이라면 어떨까요? 좋은 세상일 것입니다.
1) 좋은 세상
좋은 세상은 이상적인 세상이 아닙니다.
나부터 만들면 가능한 세상입니다.
동네의 실개천을 보면 쓰레기투기가 심각합니다.
나만 좋고, 나만 편하고, 나만 깨끗하겠다는 이기심으로 개천에다 던지는 것인데,,
이런 데서는 결코 좋은 세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큰 기둥 2개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이 두 기둥이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이룹니다.
최근 들어 교회들이 부쩍 비판을 받는 것은 치우침 때문입니다.
우선순위는 하나님경외가 맞지만 하나님경외에는 이웃 사랑이 함께 있습니다.
이 조화가 어긋나면 신앙생활은 한다지만 생활신앙이 못되어,,
신앙은 위선이나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콩은 콩깍지가 필요합니다.
콩깍지에서 잉태되고 자라며 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콩이 마침내 콩깍지를 벗어나 땅에 떨어지고 썪어야 무성한 콩밭이 됩니다.
교회라는 울타리는 신앙이 잉태되고 성장과 성숙하는 콩깍지입니다.
이렇듯 교회에서 자란 신앙은 교회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아닌 콩깍지를 붙들고 그 안에서 머물고 있다면 어떨까요?
도토리, 밤, 콩의 경우 쭉정이라고 합니다.
쭉정이 신앙은 교회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신앙이기에 쓸모가 없어 갈등만 부추 킵니다.
코로나시대를 맞이해서 교회들이 모이지를 못하니 모든 교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 중 이웃을 생각하지 못한 교회들로 모두가 욕을 듣는 일은 유감입니다.
모 대형교회는 코로나가 끝나도 종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가 어려울 듯해서 100교회로 나누기로 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개혁인데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 큰 교회에서 작은 교회로 체질과 체형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교회로 들어가는 적극성인 줄 믿습니다.
2) 큰일
오늘의 갈라디아서는 교회초기의 사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 유대 땅에는 큰 변동이 왔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큰일들이 많아진 상황입니다.
복음의 진리가 무엇이냐? 할례는 어떻게 되냐? 이방사람들이 예수 믿는 일은 어떠냐? 등의,
기존의 유대교 안에서 기독교가 생겨나는데 갈등과 문제가 왜 없겠나요?
유대교는 제사인 만큼 예루살렘, 제사장, 성전 중심이었는데,,
기독교는 제자들 중심이고 예배와 기도이고 선교가 있고,,
그런데 이외로 이런 큰 문제들은 간단하게,,
가난한 자들과 구제에 대한 간단한 문제들은 큰문제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나타나심과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소위 ‘인식의 변화’가 온 것입니다.
교회지도자들의 말을 보십시오,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노니”,,
지도자들의 관심은 정치도, 교리도 행정도 아닌 구제였습니다.
또 열심히 선교하는 사도바울도 “이것은 나도 본래 힘써 행하여 왔노라” 하였으니,,
무엇이 얼마큼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내게 목사초년생이 와서 묻기를,,
“목회에 가장 비중 있게 생각할 것이 무엇인가요?” 했다면,, 아마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정치나 행정, 설교, 신학, 건물이 아닌 “가난한 자를 잊지 말고 잘 챙기세요.” 했는데 목사초년생은 “
이미 난 본래 구제에 힘썼습니다.” 한 경우입니다.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잘 믿을수록,, 성령 충만하면 할수록,,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천사처럼 초월자적이거나 권위자적이질 않고 되레 참 인간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이 보이면 천사나 귀신의 모습이나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약하디 약한 사람이,
허물과 죄가 많은 사람이 크게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허세이고 잘못된 영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보이지 않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만 보인다면 속물이고 허풍일 뿐입니다.
당시는 국가도 국민도 가난했고 갓 태어난 교회나 사도들도 힘이 없고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라”를 부탁했고 “본래 힘써 행하였다” 말하니 놀랍습니다.
신앙과 삶은 분리가 아니고 해서는 안 됨을 증명하며 예수님의 삶과 교훈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는 분리가 되어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3) 기억할 자
정부는 코로나로 4차 재난지원금을 또 풀겠답니다.
국가가 빚에 빚을 내서 주게 생겼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여하한 공짜는 다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같은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합니다.
정치인들은 코로나로 돈 번 기업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부하길 바라지만 어렵습니다.
기업은 생리상 돈 버는 곳이지 돈 쓰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책이나 제도로는 부자 나라라도 가난한 사람을 다 구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의 감사와 이웃사랑이 있는 성도는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며 평소에도 힘쓰고 사는 줄 믿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가난한 자들은 넘치고 있습니다.
내 주변의 나보다 못한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며 본래 힘써야 합니다.
TV에서 감동적인 만남이 나옵니다.
어려울 때 도와 준 그 사람을 잃지 못하는,,한결 같은 내용이지만 늘 감동을 받곤 합니다.
여러분은 찾을 사람이 있나요? 아님 여러분을 찾을 사람이 있을까요?
신앙이 무엇인가요?
주여주여 하는 자보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여야 합니다.
아버지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일은,, 주예수를 믿는 일이요 그리고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생각하는 일임을 명심하고 죽기
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삶이 무엇인가요?
중국에서는 기업가인 두형제가 너무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역사 100년 만에 가장 큰 부패자로 기소된 후 재산은 몰수당하고 형제는 사형 당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패여부가 아니라 돈을 지나치게 사랑했던 것입니다.
쌓아둘 것이 아니라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영등포구에서는 “영원마켓”을 운영합니다.
구민이 어려우면 3만원치는 무료로 지원되는 마켓인데 가장 많이 나가는 품목이 쌀이랍니다.
국가의 복지에서 사각에 놓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동구는 “든든한 한 끼 누리소”를 운영하는데 설을 맞이해서 휴일 없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주민 접근성을 위해 관내
몇 군데에서 식당을 운영합니다.
또 갑작스레 생계 곤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쌀, 라면, 즉석 밥 등을 가져가도록 배려한 주민센터도 있습니다.
결론)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날에는 어른 아이, 남자 여자, 체구는 대중소로 구분했지만 지금은 취향 따라 구별합니다.
맆스틱이나 메뉴큐어 염색약을 보면 얼마나 다양합니까?
곧 삶의 스타일도 그렇습니다.
여기에 내가 기준이 되면 곤란합니다.
이웃 중에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면서 삽시다.
어제 친구 셋이 만나 식당을 가는데 갈팡질팡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좀 좋은데 가자했고 한 친구는 가까운 데를 고집했기 때문인데,, 결국 가까운데서 청국장으로 식사
했습니다.
친구는 소문난 집은 손님이 있어도 이런 곳은 손님이 없을까봐 온 것이라 했었습니다.
잠29:7)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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