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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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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2-21 09:08 조회 33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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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교회 목사님에 대한 간증이 역동적입니다.

시골출신이고,, 성수동 공장에 다니면서 사고를 쳤고 그 와중에 믿는 사장님의 배려로 해고대신 교회를 나가게 되고 그리

고 성령 받고 새롭게 되는,,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가는 실제를 볼 수 있었습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 열매의 차이

열매가 다른 것은 나무는 종자가 달라야만 되고 사람은 성향이 달라야 됩니다.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

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변화되기 전까지의,,자연인들이 상태모습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떠나서 똑같습니다.

요즘 학폭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어려서 철없어서 한 행동이라고 후회하고 사과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산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하고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남자들은 알 것입니다.

군폭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시집살이에서 시폭,, 직장생활에서의 직폭 등,,몰라서가 아니라 내 안의 죄가 그렇게 활동한

결과입니다.

왜 모텔이 많으며 점집이 많으며 술집이 재판이 많은가요? 하나님을 몰라 방탕한 결과입니다.

곧 음행이 첫 번째로 등장하는데 하나님을 떠난 상태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이처럼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 성경의 선언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빛과 열이 없는,, 마치 태양을 등지면 어둠이듯이,,

하나님을 등진 삶은 모든 것을 등진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복음이 왔고 빛과 생명이 왔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믿는 자는 성령을 받으리라"

 

쉽고도 간단한 일입니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돈을 내는 조건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고 그 구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주님” 하며 주님께 마음을 열고 고백하면 됩니다.

그때 성령이 오셔서 새 생각을 부어주시고 능력으로 새 삶을 이루게 하십니다.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나는 나인데 전혀 다른 내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머리모양이 달라도,, 눈 화장만 달라도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성향이 바뀌어 삶의 스타일이 달라졌고 열매가 달라졌으니,,어떨까요?

 

2) 변화

변화에는 자원함이 있고 억지가 있습니다.

태양초고춧가루는 햇볕에 말려서 색과 맛이 좋답니다,.

그러나 열에 말리는 고춧가루도 있습니다.

 

동물이나 사람의 습관도 그렇습니다.

훈련이나 포상을 반복하므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재발하곤 합니다.

 

그러나 새롭게 태어나면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성도는 새롭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종교는 내가 태어난다고 하는 몸부림이지만 복음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예수님의 성품을 갖게 하신 일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성령의 태어남이 꼭 이렇습니다,.

어떤 사건과 장소만이 아닌,, 죄가 싫어지고 주님이 좋아지는,,변화가 있습니다.

성도는 이런 변화가 이미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찬송가가 나의 고백이 되고 성경의 인물들이 1인칭화 되고 그 많은 말씀들이 사랑의 연서로 읽혀집니다.

 

이런 일은 개인별, 민족별, 집안 별로 일어나곤 합니다.

예수 믿던 사람들을 핍박했던 사울이란 청년이 대표적입니다.

지금 이 성경도 그가 쓴 글이고 기독교의 초석을 놓았으며 최초유럽의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경험적으로 말합니다.

갈1: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하거나 서로 투기

하지 말지니라

 

그렇습니다.

성도의 변화는 이론적이질 않습니다.

실제적이고 경험적이며 역동적입니다.

그래서 간증이 있고 찬송이 있는 것입니다.

민족과 지역적인 변화가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거리에서 외쳤는데 희한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배우지 않는 외국어를 하여 그곳의 사람이 설교를 듣고 전도 받았습니다.

각종 병이 낫고 희한한 기적들이 나타나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 기록이 사도행전인데 결국 로마에 기독교가 정착되었고 온 유럽에 퍼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습니다.

한 장로가 새벽기도회에서 자기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 한 일이 기폭제가 되어 산불처럼 전국으로 번져 세상이 발칵 뒤집혔

던 것입니다.

아니 이보다 앞서 미국에서와 유럽에서 회개와 부흥이 일어났었습니다.

 

3) 성령을 따라서

연은 바람을 만들지 못합니다.

바람을 타야 날수 있듯이 사람은 성령의 바람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죄를 자복하고 기다리면 성령이 오시기에 성령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아니 내 죄 자복이 이미 성령으로 행한 일입니다.

 

오해 마십시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주권자이시고 통치자이시고 인격적이고 바람과 불같은 분이십니다.

사모하고 기다리는 일이 나의 일 일뿐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오십니다.

회개의 마음도 그분의 활동이기에 기필코 보혜사로 오십니다.

은밀하게 혹은 공개적으로 오십니다.

 

그럼에도 현대에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는 이유는 왜 그럴까요?

성령님에 대한 무지가 앞섰습니다.

돈 주고 사거나 팔려고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이 선물로 오시는 분입니다.

 

죄를 자백하면서 기다려야하는데 죄에 대한 자백이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고 모든 불의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인데,, 이 지식이 없으니 마른 행주 짜는 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내가 세상의 표준과 기준이 되었습니다.

내가 정의이고 공의이고 나만 괜찮으면 괜찮고 내가 부족하면 부족한 것이고,,

아쉬우면 아쉬운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렇게 교육 받았고 그렇게 사는 게 당연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이 있었고 그렇지만 그 뜻에 이탈되고 거역했던 것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성령을 따라 사는 일은 아주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세상의 어떤 각성제도 그럴 수 없고 어떤 보디가드도 그처럼 나를 위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달력이나 시계 혹은 다수를 따라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살아야 가장 인간다운 행복을 누리고 안전지대에 머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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