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내려온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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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의 행동은 생각에서 비롯된답니다.
그 생각은 감정의 지배를 받고 감정은 욕구를 따른답니다.
한마디로 욕구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는 말인데,,
이 욕구를 해소하거나 절제하기위해 교육과 훈련과 종교가 등장합니다.
그래도 잘되질 않습니다.
타락에서의 새로움은 이처럼 멀고도 어렵습니다.
1) 육체
육체는 끊임없는 편안을 추구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경과 제자들과 예수님은 ‘편안’을 추구하거나 축복한 적이 없습니다.
이 편안을 밖에서 찾는다면 한없이 피곤한 것입니다.
더 갖고, 더 재미있고, 더 누리고 등,, TV에서 나오는 모든 광고를 보십시오.
좋은 차를 타면 성공이고, 좋은 침대에서 자면 잠이 좋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면 행복하다며 부추킵니다.
지금 부동산투기로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더더더 한 탓인데 이 탓에 투신하고, 이 탓에 망신당하고,
이 탓에 불안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기본 욕구 외에 더더더한 탐심과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노욕도 있습니다.
그 시작은 어디고 끝은 어떤가요?
약3:15~16)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
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분명한 계시입니다.
성경이 놀라운 것은 변함이 없고 모호한 것이 없습니다.
오래 전에 주신 말씀인데 지금껏 달라짐이 없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답지 않나요?
언제어디서나 어른들의 언행은 아이들이 보고 닮습니다.
그래서 선생, 선배, 선임, 선각자 등,, 앞 ‘선’자가 있으면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앞선 삶이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를 보였을까요? 그럼에도 후
대의 삶이 그처럼 따라가는 것은 이상합니다.
죽는 길을 따라가는 건데,, 그 이유가 간단합니다.
약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환경이 척박하거나, 무식하거나, 정치가 잘못되어서가 아닌 생각을 지배한 지혜가 잘못되어서입니다.
육체는 약하고 늙어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흔적이 남습니다.
정형외과의사말인 즉 정형외과는 먹고살만한 동네에서는 몸 쓰는 일이 없어서 안 된답니다.
시장 통이 있는 동네가 몸 쓰는 사람들이 있어 좋답니다.
그러나 육체는 편하기 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좋고 보석이나 좋은 의복이나 장신구로 단장하기 보다는 새 지혜로 단장하고
무장해야 좋습니다,.
2) 새 지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힘은 새 지혜입니다.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
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영혼이 성결하니 평화하고 평안하여 최상입니다.
생각과 마음이 감사로 충만되고 욕구도 달라져 삶의 스타일이 달라집니다.
거듭남의 모습이고 성령을 따르는 모습입니다.
사람은 자기 몸을 위한다지만 실제는 해를 가할 뿐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영혼을 위하셨지만 영육전체를 위하셨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입니다.
기독신앙은 이 가치를 믿고 변화를 입은 신앙입니다.
자연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기 보단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에 관심이 있습
니다.
세상 사는데 왜 근심이 없겠나요? 그러나 그 근심은 순례자로서 오는 잠깐작인 것이고 하늘의 소망으로 오히려 기쁨이 충
만합니다.
벧전1:1~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
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이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
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하나님과의 화목, 죽음에서의 해방, 성령의 감화 등입니다.
숨 쉬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라서 은혜 아닌 것이 없지만,, 이 평안은 주님의 보혈로 값 치르고 이룬 선물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사도들도 평안을 축복하며 초기기독교성도들이 불같은 시험을 이겼던 힘이 평안이었습니다.
육체의 시대일수록 대체적인 평안을 찾아 마약 오락 향락에 빠지는 것입니다.
한국도 마약에 취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그만큼의 시대불행을 반증합니다.
3) 지혜의 온유함
성도는 하늘의 지혜를 지닌 평안의 사람인만큼 세상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보일 것이 있는데 지혜의 온유함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같아도 부모가 훌륭하고, 선생과 제자역시 선생이어야 하며, 목회자와 교우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전에 성경을 읽다가 감동 받고 명심한 구절이 있습니다.
딤후 2;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특별히 “다투지 아니하며”인데,, 목회자가 교인들과 싸워서야 될까요? 이겼어도 진 것이지요.
교회들이 코로나로 밉상이 되었습니다.
면접 보는 청년이 면접관에게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를 밝힐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살펴보면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이단의 악의 적인 댓글이나 공격도 있지만 실제 교회들의 미흡함이 더 많았습니다.
열정은 있었는데 지혜가 부족했고 특히 교리와 윤리가 엇박자 되었습니다.
약3: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며칠 전 K믿음이란 컬럼을 썼습니다.
K 팝, K 방역이 있는 만큼 우리네 믿음은 K 믿음이 됨직해서입니다.
세계에서 이처럼 뜨겁고 선교적이며 코로나시대에 맞는 전환적인 믿음이 없습니다.
그것도 짧은 기독교역사 속에서 자란 교회가,,
그러나 부족함이 있었는데 무성함과 뜨거움에 비해서 빛의 열매가 부실했으나 회복하는 믿음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움직이는 훌륭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과 나눔이 늘 함께해야 합니다.
앞집할머니가 봉사를 다니는데 개 보호소, 집 고쳐주는데, 농작물 짓거나 수확하는 곳을 다닌 답니다.
또 어느 할머니는 43년 동안 반찬을 만들어 불우이웃에게 주고 있었습니다.
766억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회장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 어머니로부터 본 받았고 행복자라는 것입니다,
기독신앙이 무엇인가요?
나에게 더하고 더 하며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큰병 들지 말아야 합니다.
비둘기가 닭둘기가 되니 하늘을 나는 특권을 잃었습니다.
나중에 말씀하겠습니다만 먹고사는 일에는 하나님이 주신 비밀이 있습니다.
마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결론) 성도의 열매는 의의 열매입니다.
교황주의자는 천국에 갈 공로를 쌓기 위해서, 바리새인은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기 위해서, 일꾼은 돈 벌기 위해서, 형
식주의 자는 꾸짖는 양심의 가책을 달래기 위해서, 명목상의 신자는 고백만 많이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워 일합
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사랑에 감읍하여 일하는데 예수님 십자가 희생이 내 골수에 사무쳐 잠잠할 수 없는 것이 유일
한 동기인 것입니다.
우리는 잘 심고 있나요? 이 고민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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