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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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천국에 입성하면 만나고 싶은 인물들이 많은데 그 중 사도행전에 등장한 에디오피아의 대신 간다게도 있습니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오직 경배하러 그 먼 거리를 왔으니 그의 사모함이 대단했습니다.
1) 스바의 여왕
솔로몬을 찾아왔던 스바의 여왕도 보통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스바국은 지금의 아프리카 예멘인데 예루살렘까지 약 4000키로가 됩니다.
왕의 하루와 노동자의 하루가 의미적으로 얼마나 다를까요?
그럼에도 그런 여왕이 먼 거리에서 많은 날을 들여 솔로몬을 찾아온 것은 그만큼 절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실은 좋은 기회와 무기가 됩니다.
절실하면 할수록 시간과 거리와 행동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어떻게 초월했느냐에 따라 절실의 목표와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수만이가 사회초임 때 왕복 5시간을 통근했었습니다.
판교까지 왕복 100키로 거리였지만 경기북부에서 남부는 도심을 통과하거나 우회하기에 러시아워에 이만큼 걸린 것입니
다.
한 청년으로서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위한 절실했던 몸짓이었는데 그런 청년들이 지금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나님도 절실하셔서 하늘보좌대신 천한 이 땅위에 사람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죄인처럼 죽으셨습니다.
그 절심함은 우리를 사랑하심이고 우리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 역시 유대 땅에 태어나신 아기예수께 경배하러 자기의 나라 밖까지 왔었고,
스바의 여왕도 솔로몬과 그의 지혜를 찾아서 먼 길을 수고롭게 온 것입니다.
이런 일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라 칭찬 받고 존중받아야 할 일입니다.
썩어질 것을 구한 헛된 수고와 낭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 강원도 태백시에는 버려진 승용차들로 처치곤란이라는데,, 도박하러 왔다가 돈 필요하니 차를 저당한 것이고,, 결국
찾지 못했으니 지역 문제가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마음 쓰고 힘쓰는 대로 결국 심고 거둘 뿐입니다.
사람은 사람다운 일에 힘써야 합니다.
생명구함과 평화정착과 행복안정과 의의 확장을 구하고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생명과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간절히 찾으면 만나주신다고 약속하셨기에 사람은 먼저 하나님부터 갈망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삶의
길이 옳게 됩니다.
신4:29)~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다윗은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그런 갈급함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현대가 돈은 그처럼 갈망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 없습니다.
그 현대인이 모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교는 있는데 절실과 갈망은 확실히 없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하나님 없는데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스바의 여왕예물
스바의 여왕예물은 지혜의 왕 솔로몬을 갈망하여 준비하고 준비했을 것입니다.
왕상10:2)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생각해 보세요, 왕이 왕께 예물을 드린다면 대충적이질 않았을 것입니다.
나름의 위원회가 발족하고, 수차례의 회의로 결정되고, 여러 리스트가 있어 떠날 때도 확인되었을 것입니다.
대단한 과정과 번거러움이 있었을지라도 실제는 왕과 왕이 만나는 외교적 예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합니다.
코로나시대인 요즘은 식당만 가도 출입절차가 있습니다,
이러저런 법을 배우고 절차를 익히는 게 교육입니다.
왕족은 왕족답게,,서민은 서민답게, 인사법, 길 건너는 법, 어른공경 법, 이웃화목 법, 쓰레기 배출 법 등,, 유치원과 가정에
서부터 배우고 익히며 과정이 높을수록 전문을 배웁니다.
흔히 운전매너를 말하지만 운전매너 역시 예절이고 교육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져 민폐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은 예복과 함께 대표적 예의 상징입니다.
얼마 전에 줌으로 예배하더라도 복장과 예물을 준비하세요 했었는데
곧 마음의 자세였기 때문입니다,
상견례 때 어떤가요? 면접 때 어떤가요? 우리가 대통령을 보러 청와대를 간다면 어떨까요?
하물며 하나님께 향한 예배에,, 절을 하고 음성을 듣는 일이라면 알만합니다.
주님이 평소에 그러셨기에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 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주님이 하나님을 향해 다하신 모습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의 복종이셨고,,
하나님은 그런 주님을 지극히 높이심으로 보답하셨는데 부활이고 승천이며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심이며 재림의 주 되게
하신 영광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로마서에서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과연 그렇습니다.
다 찾아주셨기에 에디오피아 내시도,, 동방의 박사들도 하나님 인도를 받았습니다.
어느 시대든 “돈이면 다 해결 된다”는 배금주의 사고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산다.” 는 믿음의 사고로 바꾸어야 합니다.
3) 솔로몬 왕의 예물
예루살렘에 온 스바의 여왕은 수고하고 투자한 대로 솔로몬 왕과 그 지혜를 만나서 확인했고 지혜도 얻었습니다.
왕상10:7)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
와 복이 네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이제 되돌아가는 스바의 여왕에게 솔로몬 왕이 답례물을 주었는데 후하게 주고,, 구한 것도 주었습니다.
왕상10:13) 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의 여왕에게 물건을 준 것 외에 또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그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더라
이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스바의 여왕으로서 지혜를 구해 솔로몬 왕에게 찾아온 것도 우리여야 하고,
철저히 준비하여 예물도 준비한 모습이 우리여야 하고,
그 예물을 예의상 먼저 드렸던 모습도 우리여야 하고,, 나중에 풍성히 받는 모습도 우리여야 하며, 구한 것을 다 받는 모습
도 우리여야 합니다.
홍성에서 소 키우는 어느 농부는 소에게 지극 정성이었습니다.
그는 소가 예뻐서가 아니라 재산이어서 소에게 보상받으려고 정성을 준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렇습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 것이 있습니다.
스바의 여왕은 먹고 즐기는 재미가 아닌 지혜를 찾아 왔다는 사실과 솔로몬 왕 역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서 얻은 왕이라
는 사실입니다.
지혜는 아이큐나 지큐와 다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믿음인데 여기서 부요와 장수가 나옵니다.
이 지혜로 나라도 구하고 집안도 일으킵니다.
주 믿는 신앙이나 세상사는 일이 복잡한 것 같아도 실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오래하고,, 돈이 많아야 되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모든 범사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삼가 진중하고, 특히 사람은 외모도 대하지 말고, 대접받으려면 먼저 대
접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잘 이루는 능력이 지혜인데 성령님이 스승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목사만 설교준비에서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발명자나 창의적 예술가나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필요하고 모두가 구할 수 있는데 요즘은 정치인들이 더 많이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도에게는 성령이 보혜사이시기에 전도하는 입에 지혜의 말도 넣어주실 줄 믿습니다.
결론) 인류역사를 보면 부흥의 시대에는 문화도 발전했습니다.
은과 금은 지혜가 있으면 얻지만 지혜가 없으면 되레 잃어버립니다.
명심하십시오,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답니다.
그 감취인 보화를 캘 수 있는 연장이 믿음입니다.
점검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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