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찬송(성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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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찬송(성찬식) 창44:14~34 2026,11,8
세상은 온통 유기적인 관계로 형성되었습니다.
독립적인 듯해도 절대 아닙니다.
1) 관계
이 관계성을 아는 사람은 지혜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물질은,,점, 선, 면으로 구성되어 세상이 되고,
인격은 신뢰, 사랑으로 사회를 이루고 있으니,,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만이 산다고 하는 열심은,,
결국 자신도 죽게 되는데 금번 미국 중간 선거가 입증했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불행했습니다.
야곱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어 보이는 유익을 따라 산 탓입니다.
애석하게도, 부모슬하에서 참 신앙을 익혔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렇지 못해 엄마 꾀를 따라 아버지를 속이면서 형의 축복을 가로 챈 일이 비극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외삼촌께 도망 와서 배운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삼촌역시도 야곱을 속이는 사람이었으니 무엇을 배웠겠나요?
우리 신앙의 근간이 무엇인 줄 아시나요?
형통이나 번성이 아니라 하나님 두려워함입니다.
이 모양이 거룩이고,,참이고, 진실인 만큼, 성도는 신실한 사람으로 언제
어디서나 믿음으로 신뢰 받고 성실로 신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속이는 자 야곱’ 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런 야곱이 하나님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라반삼촌의 집에서 나오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당장에 없었습니다.
라헬부인중심으로,,그리고 라헬에게서 난 요셉 아들중심으로 집을 운영했으니,,
가족관계는 사분오열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아들들이 배다른 막내 동생 요셉을 시기하고,
자신들을 찾아온 요셉을 죽이려 하다가 차마 그렇지 못해 애굽으로 팔아치운 일은,,
현대에서도 흔한 일입니다.
2) 하나님의 반전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반전을 이룩하셨습니다.
모래 같은 집을 하나 되게 하시며,, 겉치레 신앙이 참 신앙으로 변화하게 하셨습니다.
팔렸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형제들이 흉년에 곡식을 사러 애굽에 가서 총리인
요셉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첫 번 째 만남은 요셉만이 형들을 알아보며 아버지와 동생의 안부를 묻는 일로 마쳤고,
계속된 흉년으로 다시 곡식을 사러 간 형제들은 요셉과 두 번 째 만남을 통해
요셉이 형들을 시험하는 작전이 들어 있었습니다.
요셉의 친동생 베냐민을 곤란하게 하여 형들의 속내를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간단합니다.
요셉의 잔을 베냐민에게 감추어 베냐민을 도둑을 만들어서 형제들을 살핀 것입니다.
여기서 유독 유다의 역할이 나오는데 그리스도께서 유다지파로 오신 길닦이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대로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가 됩니다.
베냐민의 곡식자루에서 은잔이 발견된 후 유다의 말인데 유심히 들어야 할 말입니다.
말,,16절)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유다는 베냐민의 곡식자루에서 총리의 잔이 나오고,
따라서 베냐민이 총리의 노예가 되는 상황을 맞다뜨렸을 때
오래 전 형제들과 모함해서 요셉을 판 죄악을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하나님을 인식하면 할수록 괴로운 민낯입니다.
죄악이 있는 곳에는 자유와 기쁨이 없습니다,
되레 변명과 감추려는 죄된 본성이, 마귀에게 붙잡혀서 죄악을 토해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죄악을 이제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하면서 고백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죄악을 찾아내셨으니..‘발굴하셨으니’ 입니다.
즉 감추인 것을 ‘폭로시키셨다’ 는 의미로써 성령의 감동으로만 이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신앙에는 우리 죄를 자백하기 보다는 이 ‘발굴하셨으니’ 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순서 상으로 발굴이 먼저이고, 자백은 나중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죄 사함의 우선순위라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자백이, 회개가 있었나요?
많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몰랐던,,떠났던,,싫어했던,,
단 한 가지 죄악이 있어서 우리가 죄인으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기도 했던 것이며, 입술로 주여주여 했던 것입니다.
또한 유다의 모습을 보십시오.
모습,,23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이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형의 모습인가요? 그리스도의 모습인가요?
동생을 향한 사랑이 지극하여,, 또 그를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도 지극하여,,
자신이 모든 죄 값을 짊어지는 희생을 감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유다는 앞서 요셉을 살리고자 형제들을 설득했던 중보자였습니다.
창37: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유다의 이 모습이 훗날 내 죗값으로 자신을 희생제물 드린 주님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훗날 야곱의 축복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창49:8~10)
결론) 우리의 성찬식은 이 고백이고 우리 삶의 기념입니다.
사53:50)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그리고 다시 사는 날 동안 작은 그리스도로 살아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으니 잊지 마십시오.
- 다음글하나님의 뜻 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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