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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전염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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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08-04 13:53 조회 47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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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자존심에 예민한 시대입니다.

“상처를 주지 말라”, “공감해 주라”, “칭찬해 주라” 등,, 맞는 말인데,

이쯤 되니 상대방에게 무슨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틀렸다며 지적도 못하고 책망은 더 어렵습니다.

 

사도바울이 들었던 말과 비견해 보십시오.

행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

의 우두머리라

여러분에게 이런 비방과 비난이 쏟아졌다면 어떨까요?

이런 댓글이 달렸다면,

 

1) 자존감과 자존심

자존감과 자존심은 은혜와 은총처럼 같으면서도 묘하게 다릅니다.

둘 다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지만,

자존감은 자기 안에,,자존심은 자기 밖에 주소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은 약하다 강하다,, 자존심은 낮다 높다합니다.

자존감이 강할수록 밖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껏 행동합니다.

반면 자존심이 허약할수록 밖의 평가에 연연하여서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갑니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명언을 남긴 ‘요기 베라’는 양키스 팀 선수였습니다.

그는 추남이었기에 놀림을 많이 당했지만 그때마다 명언을 남겼습니다.

“나도 못생긴 걸압니다. 어쩌라고요? 나는 지금까지 얼굴로 안타를 치는 선수를 본적이 없습니다.”

무슨 얘기인가요? 내면이 강하면 환경이나 주변의 말에 희희비비하지 않습니다.

부자는 거지같다는 말에 발끈하지 않고,,허허 웃곤 하는 이치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가치는 선비정신이 지배했었습니다.

安貧樂道,, 구차하고 궁핍해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도에서 평안을 즐기는 삶이었습니다.

내면의 정신을 높였던 것입니다.

뜻이 달라도 치열하게 토론하고,, 국가나 주군이나 부모에게 충성을 이루는,,

주관 있는 내면세계였습니다.

 

그런데 현대는 이런 가치가 바뀌었습니다.

정신을 놓치고 실용을 붙잡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가치가 되었습니다.

직장인들이 5년 다닐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직장 보다 자신의 유익을 더 고수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온실속의 꽃나무처럼 곱게 자랐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으니,,

마음이 여린 나머지 자존심만 발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차하면 상처 받고,, 작은 공감과 값싼 칭찬에 울고 웃는 문화가 된 것입니다.

 

2) 과정

우리나라가 산업화에서 정보화시대로 넘어가면서 정신적문화적 충격의 과정이 있었듯이,

성장과 성숙의 과정은 개인에게도 필요한 만큼,,이때에 댓가를 꼭 치르게 됩니다.

옛컨대 실직,, 실패,, 평가 등이 허다한데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경우 절대적인 안정의 힘이 자존감이지,, 자존심이 아닙니다.

그 자존감 중에 근본은 믿음입니다.

지난 주일의 설교처럼 “큰 은총을 입은 자”라는 믿음이 있다면 힘과 지혜를 얻습니다.

 

다윗은 막내였고 목동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찍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였습니다.

실제 왕이 된 후 크게 군급하였을 때 “여호와를 의지하여 용기를 얻었더라” 하였습니다.

애굽에 팔려가고 감옥에 갇힌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자존감이 없었다면 골백번 죽어야 했을 것입니다.

노예생활에서도 충성하고 감옥에서 조차 정직하고 당당했던 모습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의 관원들이 고관대작들인데 그들이 감옥에 들어와서 어떻게 이방인인 노예 요셉을 신뢰했을까요?

 

장군의 아들 김두한 씨는 서울역염천교 밑에서 거지생활을 하면서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긴 바가 있었습니다.

아시나요? 자신의 가문이었습니다.

“나 안동 김씨야” 이 정신으로 비겁하거나 비굴하지 않았답니다.

 

여러분에게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이 있나요?

군인들에게는 계급과 더 나아가 지휘관이라는 초록색 견장입니다.

장군들의 자존감은 장군이라는 명예와 죽어 현충원에 묻힌 다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학위도 되고 졸업장이 되고, 출중한 용모도 되고, 봉급이 되고, 사원증이 되기도 하고,

그러나 더 나은 조건 앞에서 위축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존감이 아닙니다.

자존감이라 여겼지만 자존심일 뿐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이런 자존심은 개도 안 물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을,, 당당할 수 있도록 자기 내면화를 건강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3) 자존감 키우기

영국의 명문 고등하교 이튼 컬리지를 들어 보셨지요?

최근에는 한국학생들이 입학이 많기에 그 교장이 방한하기도 했었습니다.

600년 전에 세워진 학교지만 총19명의 총리가 배출되었고,

세계1,2차 대전 때에는 무려 2000명의 출신들이 전사했었습니다.

이 학교의 가치가 뭔지 아시나요? 부자되거나 공부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100% 대학진학을 하고,

옥스퍼드나 켐브릿지에 30%이상 입학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 효과가 뭐냐,, 공부보다 체력을 강조해서 하루에 한 번은 축구를 하고

공휴일에는 두 번하고 겨울이면 진흙탕레슬링도 합니다.

여기서 못하면 벌금이나 몰빵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 학교의 교훈은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마라, 약자를 깔보지 말라,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라,

잘난 체 마라, 공적인 일에는 용기 있게 나서라.” 인만큼,

이들의 마음에는 “약자를 위해”, “시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이들에게는 “위한다.” 는 긍지가 자존감이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여행과 독서를 권장하곤 합니다.

넓은 지혜와 깊은 지식이 있어 내면적적이길 바라서입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일반적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연합입니다.

주님은 나사렛출신입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했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후에 보니 꿰매지 않은 한 벌 옷이 전 재산이었습니다.

자존심으로 산다면 하루도 못사실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 뺨을 대라”하셨고,

예루살렘을 입성하실 때는 초라한 나귀새끼를 타셨습니다.

 

그 주님의 자존감은 무엇이었나요?

하나님아버지와의 연합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시면서 “언제나 내 말을 들으시는 줄 아나이다” 하셨고,

요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

음이로소이다“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존감은 물론 자존심도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가문과 학문이 있었고 제국의 시민권을 가졌었습니다.

3개국어 이상을 유창하게 했었습니다.

신약성경 30%가 그가 남긴 기록입니다.

그에게는 건강이 문제가 있었고 미혼인 것도, 과거에 예수님을 몰라 핍박한 것도 지격지심의 요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주님과 믿음으로 연합하므로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선언했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

이 되었도다”

 

지금의 전염병이라는 비난에도 튼튼한 것은 단순히 정신이 강해서가 아니라 주님과의 연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사람들

의 평가에 울고 웃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론) 주님을 믿고 연합하는 순간에 자존감부터 새로워집니다.

죄책과 사망의 두려움도 사라지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 신분을 얻고,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당당하고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 까지 주님이 함께하시고,

세상 떠나는 날 천사에게 받들려 천국에 입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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