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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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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08-11 14:24 조회 452회 댓글 0건

본문

성경은 철저히 예수그리스도를 증명하는 책입니다.

그 예수님이 생명이시기에 생명의 책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가 부활이어도 나사로가 아닌 그를 살리신 주님이 주인공이 됩니다.

요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나사로에게도 있었습니다.

요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

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함이라

 

즉 태양을 보면 태양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태양에게 절하는 모양입니다.

 

1) 부활

부활과 영생은 언제나 인생의 큰 관심사이고 사건입니다.

이 전제 과정이 죽음이고 부활입니다.

미물인 잠자리는 2번 탈피합니다.

물속에서는 애벌레, 그리고 땅에 올라와서 하늘을 나는 잠자리가 됩니다.

매미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1번이라도 완전 죽어야만 다시 삽니다.

이때 모양만이 아니 성품과 기질도 달라집니다.

주님의 승천을 예표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에 오른 최초의 사람이었고,

나사로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부활의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 있을까요?

구약에선 엘리야가 살려낸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왕상17: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신약에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막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

이라

또 주님은 나인성과부의 아들을,

예수님 돌아가실 때는 무덤에서 잠자던 많은 성도들이,

사도행전에는 유두고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지만 사도바울의 기도로 부활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그 이름의 권세에는 이처럼 살리는 힘과 흥왕케 하는 힘도 있습니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

느냐”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믿나요?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이 믿음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이 믿음으로 성도의 죽음이 주 안에서 복된 것이 되며

이 믿음이 죄를 이기게 합니다.

성도의 신앙목적은 하나님영광이지만 목표는 부활과 영생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은 헛것이 됩니다.

사도요한의 제자인 폴리캅이 화형장에서 회유를 받았습니다.

“이제라도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 주겠다.”

그러나 그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화형을 맞이했습니다.

“내가 늙도록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부인하지 않았는데 이제 내가 그분을 부인하라고?“

이처럼 부활믿음은 위대한 생명력을 발휘합니다.

 

2) 부활은,

죽어서 다시 살아났다면,,그러나 지금처럼 나사로처럼 냄새가 났던 자가 수의를 둘린 체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면,, 어떨까

요? “세상에 이런 일”에는 물론,, 해외 토픽에도 나오고,, 간증자로 초청되고,, 그러 인해서 믿는 자는 구름처럼 많을 것입

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내용을,, 어느 누구에 관해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나사로가 부활이후의 삶이 있었을 텐데,, 기록이 없습니다.

회당장 딸도, 나인성과부의 아들도,, 유두고도 없습니다.

구약에서도 없고,, 신기하지 않나요? 분명 고의적인입니다.

성경의 원 기록자인 성령께서 막으신 줄 믿어야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활은 멋진 기적 아닌가요? 최고의 이벤트 아닌가요?

산 전도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질 않으셨습니다.

 

첫째, 성경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명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

이니라

그러므로 부활후의 삶은 성경의 콘테츠와 다릅니다.

부활은 맞지만 부활한 이후의,, 잠깐 삶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전도는 부활한 자의 절대적인 일이 아닙니다.

믿음이 어디서 오는가요? 들음입니다.

그 들음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누가 전하나요?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전도자들의 수고로 말미암습니다.

 

부활한 자의 증언은 확실히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때론 부활한 자가 없을 수도 있고 부활한 자를 보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 어떻게 되나요? 믿지 못하게 되나요? 그럴

수 없기에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또 성도들을 통해서 전도하시게 하신 줄 믿습니다.

 

셋째, 부활한 성도는 이미 영생에 이른 자입니다.

설령 다시 죽는다 해도 하늘에 속한 성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후 잠시 땅에 머물었어도 그 삶이 땅에 기록될 이유가 없습니다.

방금 전역한 자라도 군대가 명령하거나 처벌할 수 없잖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분고 죽고 부활했으니 양생으로서 소속은 하늘인 것입니다.

주님이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순서를 보면 부활이 먼저 나오고 그 후에 생명, 곧 영생이 등장한 이유입니다.

 

3) 생명유지

나사로를 비롯한 부활했던 성도들의 두 번째 죽음은 어떠했을까요?

어떠해야 될까요? 죽음의 권세가 첫 번째 죽음보다 더 미치지 않은 줄 확신합니다.

 

우리 신앙은 상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모양이 아닌 능력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일이고 실제 하나님자녀로 인정되는 삶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두려움이 무엇인가요? 죽음입니다.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권세와 권능이 어떤 것인가요?

마귀의 권세와 권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두려움을 멸하셨고 이 권능과 권세 붙잡은 자를 이기셨습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죽음보다 더욱 확실한 승리 안에서의 죽음으로 천국에 입성할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2차 대전 때 많은 유대인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들이 차마 죽일 수 없었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학살한다는 일에 부담을 느끼자 나찌는 유대인들을 동물화 시켰습니다.

독일군들이 사람이 아닌 동물을 죽인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3만명 수용소에 한 개의 변소를 사용하게 했습니다.

어땠을까요? 인간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은 하루에 물 한 컵만 주었습니다.

씻지 못하니 인간다움은 더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한 컵 물을 아껴서 양치와 세수하고 유리파편으로 면도까지 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인간의 존엄함을 지켰던 사람들인데,, 결국 그들이 학살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존엄함을 지킬 때에

끔찍한 수용소에서 조차 인간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관문입니다.

연약하기에 죽음을 잠깐 기피할 수는 있어도 두려워하면 성도의 생명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슬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여야지 그 슬픔에 잡히면 안 됩니다.

살전4: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4: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 하라

이 부활생명의 믿음으로 우리는 성도의 존엄과 거룩을 이루어야 합니다.

 

결론)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느낀 바입니다.

성도들이 먹고사는 일에 집착해서,,위대한 능력과 권세인 부활생명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아

아주 허약하게 삽니다.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곧 거룩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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