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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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과 사업가가 함께 여행을 했습니다.
미끈한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사냥꾼은 “저 다람쥐 좀 봐,,” “저기 사슴이 있네”하며
사업가가 못 본 10종류의 동물들을 보았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고 더불어 산다는 일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동행이 됩니다.
1) 위대한 동행
나오미는 슬픈 여인이었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타향으로 이민을 왔었지만 그만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슬프고 가난한 과부가 되어 이제는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젊은 두 며느리가 걸렸습니다.
그 며느리들을 헤아려 각기의 길을 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룻이라는 며느리는 시머머니를 따라 같이 살겠답니다.
아름다운 동행이 위대한 동행으로 되는 일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배려가 만들어 낸 결국입니다.
모르긴 해도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평소에 시집살이 시켰다면,,어땠을까요?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떠나는 마당에,, 해방을 맞이했다며 앞 다투어 떠날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갑질한 시머머니가 아니었음이,, 그 며느리들을 헤아림에서 알 수 있습니다.
룻1: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동행에는 사자가 어린 양을, 어른이 젊은이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신앙인이 불신앙인을,, 먼저 헤아림이 있어야 합니다.
“사노라면” 이라는 TV극을 보니 농사짓는 며느리가 98세의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녀의 말끝마다 “시아버님이 나를 예뻐해 주셨어요,, 주실 것이 없다지만 오셔서 많이 도와 주셨어요” 하곤 했습니다.
동물도 은혜를 갚는 일이 있다면,, 사람은 더 한 존재입니다.
만약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군박했더라면,, 며느리에게 복수를 당했을 것입니다.
요즘 꼰대라는 말이 돕니다.
먼저 헤아림이 없이 대우만 원하는 이들의 지칭인 것입니다.
동행은 첫걸음부터가 아니라 상대의 존중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긍휼이고 배려이고 마침내 희생이 있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과부가 된 후 과부심정을 알고,, 과부며느리들을 긍휼히 여긴 것이고,,
자신이 이방에서 살아보니,, 며느리들이 이방에서 살아야 할 고생을 알 수 있었기에 만류했던 것입니다.
며느리인 룻 역시 그런 헤아림으로 고향으로 되돌아가 살 시어머니가 가여워 동행을 결심하고 자기희생을 감수하고자 했
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안 보시는 듯해도 감찰하시고 간섭 안 하시는 듯해도 간섭하셔서 복을 주셔서 다윗가문의
조상이 됩니다.
나오미 보다 룻이 성경의 이름이 된 것은 하나님이 이 여인을 통해서 예수님의 조상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보는 대로 판단해서 이런 경우 자타가 망했다고 합니다.
룻1:20~21)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
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경외, 하나님의 기쁨 됨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나오미에게 계속되는 입술의 고백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으로 그녀의 중심사상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주권을 인정하고 높이는 참 신앙인 것입니다.
자기 뜻이 이루면 “할렐루야” 했다가 아니면 불평불만 하는 얕은 냄비신앙에 비하면 나오미는 식지 않은 뚝배기 신앙입니
다.
반면 며느리 룻에게 이 신앙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어미를 공경하는 효가 있었습니다.
그의 말속에는 오직 “어머니”가 충만했습니다.
룻1:16~17)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
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지라
나오미는 부자 시어머니가 아니고 룻은 혼자살 수 없는 며느리도 아닙니다.
꼭 이래야하는 책임도 없습니다.
자녀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위대한 동행을 아름답게 마치려는,,
나오미는 하나님, 룻은 어머니였던 것인데 그 어머니는 하나님으로 언행이 일치된 어른인 것이 공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3) 거룩한 동행
세상은 자꾸 바뀝니다.
유행도 바뀌고 법도 바뀌고,, 영원한 게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쓰신 십계명인데 그 중심메시지가 무엇인가요?
첫째는 하나님 경외, 둘째는 사람공경입니다.
이 일을 이루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또 하나님을 기뻐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감사하게도 소원의 내용은 초월적입니다.
김형석 교수가 겪은 일입니다.
6,25전쟁 중에 부산에서 연세대 철학과 입학고사를 치루었답니다.
입시시험 종료 후 남루한 차림의 응시자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보았는데,
채점 후 그 사람의 성적이 최하위였답니다.
그래서 교수는 충고하기를 “학생, 이제 그만 기도하고 내년에 도전해 보게” 했는데,,
그 사람은 그래도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더랍니다.
그래서 교수는 속으로 “학생이 공부는 않고 기도만 하면 되나” 생각했답니다.
그리고 합격자명단을 학장에게 보고했더니,, 학장이 “몇 명이나 왔나요?” 묻기에
“입학정원 보다 조금 더 왔습니다.”했더니,, 학장은 “ 난리 통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기특하지 않아요? 모두 합격 시킵시
다“ 했답니다.
김형석 교수는 기도하는 인생, 하나님 경외하는 인생을 도우시는 은혜를 보게 되었답니다.
뿐만 아닙니다.
6,25때 포로가 된 박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인민군들과 같은 포로들을 섬겼습니다.
어느 날 인민군간부가 와서 “오늘 나가서 내일 해 질 때까지 들어오지 말고 해 진 후에 들어오라” 했습니다.
영문은 몰랐지만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해진 후에 들어오니 인민군들이 퇴각하면서 포로들을 다 죽였습니다.
장로님의 공경심을 적들도 높이 평가했던 것입니다.
현대 들어서 하나님경외부터 실종되고 사람공경도 없어짐은 유감입니다.
그래서 불신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기독신앙은 이런 시대에서 돌이킴으로 시작됩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중심, 그리고 사람중심이 되는 가치존중입니다.
주님은 이 일에 완전한 본을 보이셨습니다.
섬김을 받지 않고 섬기려오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위에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을 믿는 이들은 그처럼 살 수 있습니다.
직장서도 아랫사람도 공경할 수 있고 집밖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뿐만이 아니라 작은 자에게도 사람대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룻은 보아스라는 부자와 결혼을 합니다.
보아스 역시 나오미를 불쌍히 여기고 룻을 기특하게 여겨 추수 때에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던 룻에게 이삭을 줍도록 선처
를 하고 시어머니를 공경하라며 곡식자루까지 이어주기까지 한 장본인입니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이익이나 손해를 위해서 산다면 아름다운동행이나 위대한 동행은 이룰 수 없습니다.
참고 사는 일도 능사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 중에 인내하며, 이웃 사랑을 이루어야 합
니다.
결론) 여러 동행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동행은 필수입니다.
영화 기생충은 어떤 동행인가요? 빈부의 차별입니다.
사냥본성을 가진 풍산개가 멧돼지새끼를 젓 먹이는 동행은 어떤가요? 신기한 동행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동행은 어떤가요? 거룩한 동행입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
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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