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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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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10-06 13:59 조회 42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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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왕에게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왕위를 물려준 후에 아들이며 왕된 솔로몬에게 유언으로 몇가지를 명령했습니다.

왕상2: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 신앙적 명령

죽는 일은 마지막 때인 만큼 자타에게서 아주 진중한 때입니다.

본인으로서는 삶을 마감하는 때요, 곁에서는 그 마감을 마주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임종 때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어땠나요? 가장 경황이 없고,, 가장 슬펐고,, 가장 중요한 때였습니다.

 

사실,, 짐작은 했었어도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는,,

참으로 연약하고 한계적인 존재임을 실감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이런 마지막 때가 오기 전부터 늘 바랐던 기도가 있었습니다.

시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러한 때는 기도해서 오고 기도하지 하지 않아서 안 오는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는 이런 날이 오기 전에, 이런 날을 위한 준비적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이 지혜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정녕 다릅니다.

있을 때는 하나님중심이 되어도, 없을 때는 자기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가 마침내 지옥과 천국의 차이가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다윗의 마지막 말을,,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경험을 먼저 명령하고 있습니다.

먼저 했다는 것은 우선치 이고 강조이고 중요성입니다.

왕상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대로 지

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윗의 진술은 그동안의 신조였고 삶이였던 것인 만큼,

목동출신으로 왕이 되었던 성공비결이고 신앙목적이었을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을 때도 다른 말씀보다는 다윗의 이런 모양을 말씀하시며 주문하셨습니

다.

 

솔로몬이 왕으로써 첫 번째로 지혜를 구한 후의 말씀입니다.

왕상3: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네 날을 길게

하리라

 

훗날 성전을 짓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로 임했습니다.

왕상9: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하게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

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그러므로 다윗이 말한 하나님경외는 다윗이 평생 어떻게 살았나하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준비된 신실한 성도에게는 전도하기가 가장 좋은 때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가 가장 좋은 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입술이 아닌 삶이 있었을 경우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어떤 명령을, 무슨 고백이나 경험을 남길 수 있을까요?

 

2) 인간적인 명령

다윗은 이제 인간적인 명령을 합니다.

그가 평생 간직하였던 마음의 다짐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왕상2:5~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미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왕상2:7)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

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네게 나왔느니라

 

왕상2: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숱한 환난을 겼었던 다윗 왕은 여러 상황에서 주변인들로부터 해도 받고 도움도 받았던 것입니다.

그동안 다윗은 신앙적으로나 혹은 정치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이 모든 것들을 묻어두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끄집어내놓고

아들에게 복수와 보은을 명령한 것입니다.

물론 지혜자인 솔로몬왕은 즉각 이루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내가 어떤 상태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건강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도 연약하면 비수가 되어 나를 죽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기 관리가 어렵고 말과 행동은 내 기분에만 맞추면 안 됩니다.

특별히 상대가 곤경에 처했다면 어떨까요? 비록 원수라도 무례히 대하면 안 됩니다.

다윗은 아주 힘들 때에 겪었던 두 가지 일에 대해서 복수와 보은을 말했는데,,

자연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일의 처리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인데,, 오랜 세월동안 묻어놓았다가 마지막 때에 실행한다는 것과 자신이 아닌 아들

에게 위임해서 처리하도록 한 것이,, 온당하지가 않아 보입니다.

온당하지 않다는 것은 즉 정의롭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간다간다 하면서 아이 셋 낳고 간다” 속담처럼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생각에 머물거나 지나친 생각은 도리어 실행에

장애가 되는 것처럼,

다윗은 이 일로 완전치 못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만약 복수는 용서하고 보은은 일찍이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니 자신이 해를 끼쳤던 사람에 대해서 용서를 빌었다면 어땠을까요?

전쟁을 많이 했던 그가 적군에게 용서를 빌 필요는 없었다 해도,

솔로몬의 모친인 바세바를 취하기 위해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전장에 앞세워 나가 죽게 한 것에 대해서는 침묵했기 때문입

니다.

물론 당시의 일을 하나님께 용서 받았다 해도 사람에게 용서 받지는 못했을 텐데,

남겨진 우리아의 친족들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사건은 없었고,,지금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가요? 크면 클수록 남의 죄 보다는 나의 죄가 들어나기 마련 아닌가요?

그렇다면 남의 죄는 용서하고 내 죄에 대해서 용서를 구했어야 될 텐데,,

다윗은 마지막 때까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런 보건대 사람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이기에 갈등의 주최가 되고 화목의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이 의인일지라도 비교적 의인일 뿐 완전의인은 아닌 것입니다.

 

3) 우리의 마지막 때

우리의 마지막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숨이 그치는 그때까지 내 삶인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나라를 구원하거나 만백성을 구원하지 못할 듯합니다.

어찌 보면 사는 일에 헉헉대다가 경황없게 이 때를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총은 찬양하고,

주변 이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도록 내 삶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 장인은 전형적인 유가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구주를 믿었고 제사를 폐하도록 하셨습니다.

작은 일 같아도 큰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이 내일을 만듭니다.

그리고 오늘의 습관이 내 날들을 세웁니다.

지금 내 안에 무엇이 있나요? 오늘의 나는 어떤가요?

 

선을 뿌려야 합니다.

의는 물론이거니와 긍휼과 사랑을 키워 복수보다는 용서를 베풀고 용서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용서를 하셨습니다.

 

지난 해 9월 미국 텍사스에서 한 흑인 청년이 집에서 TV를 보다가 백인여성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백인여성 경찰관은 남자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자기아파트 층수를 잘못 생각해 자기 집에 강도가 들어온 줄 알았답니다.

조사해 보니 그녀의 휴대전화기 속에는 흑인혐오 발언 문자들이 많아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검찰이 징역 28년을 구형한데다 전날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유죄평결을 내리면서 최대 99년형이 가능해진 상황이

었지만 10년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러자 법정에 모였던 시민들이 분노하며 야유를 보낼 때 증인석에 앉았던 죽은 흑인의 동생이 눈물을 머금으며 “저는 당

신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랑합니다, 당신이 감옥에 가는 일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만 빌어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형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남은 생애를 그리스도께 헌신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백인

여성경찰관을 포옹까지 해주어 여성경찰관과 판사와 방청객들은 오열했답니다.

 

결론) 신앙의 최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무엇인가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성경이 말씀하는 바는 긍휼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너무 종교적인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용서의 감동과 치유의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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