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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성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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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10-20 14:02 조회 32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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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황이 아주 나빠졌습니다.

가끔 만나는 사업하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봄에 만났을 때는 매출이 30% 줄었다며 걱정했는데 며칠 전에는 50% 줄었다며 은퇴하고 싶어도 은퇴를 못한다며 푸념을

했습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경제체감입니다.

 

1) 상황인식

이런 상황인식은 같아도 해법은 다릅니다.

문제를 향해서 야당 정치가들은 정책이 잘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경제가는 뭐라 할까요?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 믿는 신앙은 긍정인데 오늘의 본문입니다.

 

실제 이 고백은 사도바울의 경험적 고백입니다.

당시의 경제적 상황은 어떤지 모르지만 사도바울의 형편은 작금의 우리네 보다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번다고 해도 부족한데 사도바울은 벌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살 수 있었습니다.

물론 미혼이었으나 외국에서 생활한 선교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그 모든 것이 채워졌던 것입니다.

빌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모든 것이 있고 풍족한지라” 이 형편에 관해서는 주관적이기는 합니다.

33평 아파트가 넓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좁다고 하는 사람도 있듯이,

자족하는 비결을 배운 사도바울에게는 조금만 있어도 모든 것이 있고 풍족하다고 고백하는 반면 수십억 재산가도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고 무엇을 의지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 이 첫 소절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신앙이 있다면 결핍을 모르고 지낼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극동방송사장님으로부터 아주 뜨끈한 간증을 들었습니다.

화재 난 영동극동방송사 얘기인데 보험보상으로 땅값이상을 받았답니다.

건축비는 그냥 헌금으로 들어왔답니다.

지반이 약해 생각지도 못한 파일을 박는 일이 발생했고 합의 본 공사비 6900만원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부산의 한 부부가 와서는 헌금을 했는데 봉투에 7000만원이 들어있더랍니다.

또 장학금을 만드는 골프대회를 하는데 후원 1000만원 요청했더니 2000만원을 내주고,

어디는 그냥 목사님께 쓰시라며 5000만원 주더랍니다.

곁에서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보는 사장님은 감탄과 감동을 했습니다.

 

사람은 한계적 존재지만 하나님은 초월적 분이십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신뢰 받으면 하나님은 그를 높이시는 것입니다.

 

2) 풍성의 비결

하나님이 채우시는 풍성한 비결은 다른데 있질 않습니다.

물 좋은 호수에 파이프를 놓는 일처럼,

* 정직입니다.

잠10:29)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시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보오리로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죄가 죽을 꾀를 내는 사람을 만든 것입니다.

속이는 체제, 속이는 국가는 물론 기업도 잘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은 망하는데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직은 진실이기에 담대하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든 사업이든 개인이든 어때야 하나요? 어려울수록 정직해야 됩니다.

자본주의 문제는 정직을 무시하고 돈 많은 것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것은 인본주의이지 신본주의는 아닙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잠20:23) 한결같지 않는 저울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는 것이요

 

* 심어야 됩니다.

뭐든 심지 않고 거둘 수는 없습니다.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라”

“그리스도 영광 가운데서”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지만 영으로부터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둡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영광을 위해서” 심는다면 그 영광 가운데서 거둘 것입니다.

 

사람에게 심은 사람은 그 곁에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술 사주었다면 술친구들이 있고 학비나 치료비를 대주었다면,,역시 그럴 것입니다.

제 딸에게 용돈을 주신 목사님이 계시는데 딸아이는 일찍이 그 목사님께 주례를 받고 싶어 합니다.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선교에 심었던 것입니다.

어떤 작물은 수개월, 나무는 수년,,사람은 수십 년이 걸리지만 하나님께 심는 것은 저축성예금과도 같아 나 필요할 때 하나

님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했지만 김장환목사님은 당신의 퇴직금으로 만든 장학재단에서 당신의 손주들은 10명이지만 단 한명도 장학금

을 못주었어도 대학과 대학원생 2700명에게 주었답니다.

또 미국에 어린이 순회공연을 하면 그곳의 유학생들을 불러 100불 200불씩 쥐어준답니다.

유학을 시켜준 목사들도 많습니다.

실제 그 목사님은 가난했던 미군하우스보이 아닌가요?

그가 이렇게 부유함이 있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심었던 것입니다.

전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우리나라가 몽골의 사막에 나무를 심었더니 푸른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 감사

감사는 믿음과 순종의 합쳐진 모습니다.

원망불평은 그 반대가 됩니다.

부모는 어떤 자식이 좋을까요? 감사하는 자식일까요? 원망하는 자식일까요?

어디서나 누구나 마찬가지 것입니다.

원망불평하는 직원도 자기 부하직원이 자기에게 원망불평한다면 싫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내 상전입니다.

시100:3~4)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키우는 애완동물도 물거나 으르렁거린다면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수 있는 믿음과 순종의 동작인 것입니다.

 

3) 하나님 계시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이처럼 계시해 주셨으니 놀랍고 감동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부르짖으면 만날 수 있고 예수 안에서 믿고 섬기면 풍성한대로 채우심도 얻기 때문입니다.

감탄과 감동은 다릅니다.

감탄에는 놀라움은 있어도 존경은 없습니다.

그러나 감동에는 존경도 있습니다.

멋지거나 예쁜 연예인을 보면 감탄을 해도 존경을 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땀 흘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체육인이나 가난 속에서도 이웃 섬기는 할머니나 불속에 들어가 인명을 구한 소방대원

을 보면 감동이 되며 존경이 갑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의 경외가 됩니다.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신 것 하며, 이처럼 계시하신 것이 새삼스럽기 때문입니다.

 

결론) 죠지물러 목사는 고아의 아버지인데 50000번이상의 기도응답자입니다.

아시나요? 사람에게 구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여 2000명의 고아들을 세계 1차 대전이란 궁핍기에 먹이고 살려

냈습니다.

그 하나님은 곧 우리,,나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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