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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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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11-24 06:55 조회 37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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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해서 출가시키며 그 후도 계속 축복하곤 합니다.

이때 부모는 축복한 자녀들로 인하여 행복자가 됩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빨릴 때 행복홀몬이 최대치가 나온답니다.

비슷하게는 엄동설한에 야생동물에게 모이만 주어도 행복한 축복의 통로가 되는데,,

하물며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작은 것이라도 나눈다면 어떨까요?

그는 축복의 통로로서 당연 행복할 것입니다.

 

1)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사랑 받고 인정받은 후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는 믿음이 죄인 시기와 질투를 이겨 온유한 사람이 된 신앙증거입니다.

종종 사회적 명사들의 갑질을 듣게 됩니다.

실력과 운이 겹친 성공자들이었지만 자신을 다스리지 못해 덕을 세우지 못한 명사들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복이 그들에게 화가 되었는데 아브라함은 그 반대적 인물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였고, 그 믿음의 생활이 누구를 시기하기 보다는 도리어 섬기므로 두려운 존재가 되었

습니다.

 

조카 롯과 함께 살 수 없어서 갈라설 때에 그는 땅을 택하는 선택권을 조카에게 먼저 주었고 자신은 나머지를 차지했었습

니다.

그런데도 좋아 보이는 땅을 먼저 선택한 조카는 소돔고모라성과 함께 망했고 아브라함은 살았습니다.

육신의 안목과 믿음의 안목의 결정적 차이였던 것입니다.

흔히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잘못은 없고 남이 잘못했다며 주변 탓만 합니다.

이런 이들은 감사가 없고 나누거나 섬기지도 못합니다.

결국 축복의 통로는커녕 자신 스스로도 지탱하기도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보이는 것을 따라 마음의 변화를 받지 못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대한 믿음은 자신으로부터의 마음의 변화입니다.

내가 좋으면 남도 좋아 보이고, 내가 사랑하면 상대방도 사랑스럽고,, 결국 주변에서 인정받고

또 내가 만들지 않는 성공 길도 가게 됩니다.

그런 지혜를 계시한 책이 성경이고 특히 전도서이며,, 성령님이며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전9:11) 내가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해서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해서 전쟁에 승

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해서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은총을 얻는 것이 아

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하느니라

 

2) 마음의 변화

이 마음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나요?

첫째는 외적변화요인이 있습니다.

환경에서 올 수 있습니다.

기획과 연출을 잘하여 현 정권에서도 발탁된 인물이 있습니다.

그의 아파트윗층에서 얘가 뛰므로 아주 힘들었답니다.

물론 항의도 했는데 여전했답니다.

어느 날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얘를 만났는데,,

짧은 시간에 눈 맞춤을 하고 다시 뛰지 말 것을 주의도 주면서 아이스크림을 나누었답니다.

그런데도 또 뛰더랍니다.

그러나 신기하게 이제는 그게 밉지 않더랍니다.

이는 소통이라는 외부변화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에 사랑이 스민 이유랍니다.

부부갈등, 친구 갈등, 고부갈등 등,, 모든 갈등에는 결국 사랑부족이고 소통부족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내가 먼저 다가가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의지가 맞습니다.

 

둘째는 주의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대전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개척을 하는데 잘 안되더랍니다.

주변의 대형교회목사들에 대한 시기심이 생겨서 밉고,,

그 시기심을 없애고자 기도하는데 도무지 없어지질 않았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는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이 찾아오셨답니다.

“네가 시기하는 옆 교회목사가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느냐”

 

그들이 나보다 목회도 설교도 주님사랑도 더 잘하며 하나님은 그들을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고 그들에 대한 미움과 시

기심대신 명단외울 때까지 축복기도를 했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재미있고 성령으로 기도하니 즐거움으로 충만했답니다.

그 후 몇 달 후 자기 마음에 공간이 생겨 큰 교회들이 들어앉았답니다.

비로서 그들과 함께하는 비젼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가 이처럼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주의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이 보여도,

외부적변화로는 하나님을 모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지혜의 근본이 됩니다.

 

3) 축복의 통로로 살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 수 있었던 지식은 하나님이 먼저 찾아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찾아주셔야 비로서 알게 됩니다.

여기에 믿음이 최고의 응답이고 예우입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 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당시 아브라함은 75세였으니 연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륜이 아닌 믿음으로 순종했었습니다.

당시 하나님말씀은 듣는 이에게는 지금의 인쇄되고 역사와 전통이 있는 성경보다 불안했을 것입니다.

 

며칠 전 새벽녘 잠결에 “아빠” 하는 아들아이의 음성이 들렸기에,,

얘가 무슨 일로 왔나 하면서 “왔냐” 하며 잠깨었습니다.

헛소리를 들었던 것인데,, 하나님 음성도, 혹은 마귀의 음성도 이럴 수 있다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축복의 통로로 살기,,

첫째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그 신분은 주어졌습니다.

둘째는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 사랑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서 대표적으로는 “서로 사랑하라” 이고,

최고로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 입니다.

“서로 사랑” 은 피차적인 반면 “원수사랑”은 짝사랑이고 최고사랑이기에 어려워서 의지를 작동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마침내” 하나님이 이끄신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여러 사연을 지난 후에,, 많은 우연곡절 속에,, 노력과 은혜가 점철된,,

어쩌면 현재 우리와 같은 삶의 여정일 것입니다.

현대인은 방랑자는 아닌지만 숱한 사연을 안고지고 살게 됩니다.

난방 없는 길고양이도,, 파카 없이 참새도,, 혹독한 겨울나기가 얼마나 어려울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먹이시고 키우듯이 우리 인생들도 하나님이 돌보시며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곧 “성도의 견인”입니다.

구원해 주었으니,, “이제는 알아서 찾아오라”가 아닌 끝까지 동행해주십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축복자가 되는 데는 비결이 없습니다.

성도는 이미 축복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축복의 통로로 살기에는 실천이라는 “마침내”가 따릅니다.

 

세상에는 많은 성공자가 있습니다.

성도는 그런 성공과는 다릅니다.

축복의 통로가 성공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 인도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누구는 교회의 거룩을 지키는 축복의 통로가, 누구는 고아를, 누구는 교회를 발전하는데,

은사와 형편 따라 다릅니다.

부름에 믿음으로 순종하고 쓰임에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결론) 아브함이 아브라함이 되었고 부인 사래도 사라가 되었습니다.

열국의 아비와 어미라 인정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첫머리에 이를 소개한 것은 역사를 기록하기 위함만 아니라 후대에 본을 보이기 위함이니 축복자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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