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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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은 것들로 말미암습니다.
보이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또는 각종 법칙이나 역학에 의해서 운행됩니다.
보이는 우리 몸은 물론 생활도 그렇습니다.
몸은 보이지 않는 마음과 생각 따라 움직입니다.
연길에 가면 옛 학사하던 아파트가 아직 비어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면 늘 그때의 일이 회상되어 한 번 더 바라보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운전하던 목사님이 “저기서 많이 배웠는데요”
그 말에 내가 “배움도 머리가 아닌 마음부터 배우는 거지요” 했습니다.
가르킴과 배움도 마음이 있었으니 학사가 없어도 아파트에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예배는 어떤가요?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의 마음이 있으면 장소와 시간은 구애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뭐든 마음이 없으면 핑계는 만들어서 대곤 합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은 것으로 말미암는데,
성경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계시하고 과학은 그 현상을 설명합니다.
1)생명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는 근원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단백질의 신비한 조합으로 이루어진다지만 그렇다고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생기와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아버지시고 예수님은 생명자체이며 근원이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생명에 관한 하찮은 식물도 키우기만 해도 사랑스럽거든 하물며 낳았다면 어떨까요?
지극해서,,부모사랑이 웅변해 줍니다.
그래서 사랑은 내리 사랑이지 치오르는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있다면 의무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심오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함축적입니다.
생명의 하나님, 다양성의 하나님, 지혜와 권능이 완전하신 하나님,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 등,
그러나 사람에게는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생명 외에 영혼의 생명도 있는데,,
그 생명은 신의 성품이고, 영생이고, 세상과 분리된 거룩이고,
세상을 통치할 위엄과 존귀인 것입니다.
사람만이 하나님을 닮아서입니다.
문제는 이 생명존재 자체를 모르고 죽었음을 모름이 문제가 됩니다.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아 없다고 인식하고 있어서입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으면 없는 건가요?
그러나 성경은 분명이 그 존재를 말하고, 죽었음을 말하고,
다시 살아야함을 계속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주관적인 현상으로도 증명됩니다.
사람만이 종교성이 있습니다.
사람만이 양심이 있어 죄의식의 가책을 받곤 합니다.
다시 살아난 현상이 무엇인가요? 평안이 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죄에 대해 예민해지고, 하나님께 경외가 생기
고, 하나님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게 됩니다.
오늘 사도요한이 그런 장본인입니다.
다른 제자들과 같은 그는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논문을 읽고 각종 실험을 통해 안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가 된 후 생명에 대해 증인이 되었습니다.
주를 믿음으로 이 생명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요1서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언제나 이런 증인들이 있는데 세상은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성도라고도 합니다.
2) 예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그 생명이시고 생명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하셨고,
또 그 생명을 비추는 큰 빛 혹은 세상의 빛이라 하셨고,
그 생명의 수혜자이신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이라 하셨습니다.
이 생명은 아담이 잃어버린 것을 예수님이 다시 회복시킨 것입니다.
떡을 위해 살던 사람이 이제는 창조의 본래목적인 떡이 아닌 떡을 주시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인간성 회복이 일어난 것입
니다.
과학이나 철학이 이런 일을 알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습니다.
생명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생명이 떡이 되신 것이고 목자가 되신 것입니다.
세상은 기독교를 종교로 칭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자신은 종교가 아닌 생명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 생명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떻게 티끌 같은 사람이 하늘의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나요?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찬송에 머무시나요?
이 생명으로 사귐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소는 은밀한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제사장 가운데서 순차가 온 대제사장이 하나님이 계시하신 성의와 역시 계시하신 제물의 피를 가지고서만 나갈 수 있었습
니다.
이 모습이 최선이었습니다.
물론 성소도 하나님이 계시하신 식양대로 지은 성소에서만 가능했었습니다.
문제는 그 복잡하고 거창해도 1회용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죽으심으로 이 모든 속죄를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던 그 날 그 시각에 성전휘장이 위로부터 찢겨진 것이 그 증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감을 얻는 것입니다.
요1서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구주성탄
성탄절은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님을 맞이하는 기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
특정인을 위한 성탄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큰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아직도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산타는 선물보따리를 들고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체가 선물이십니다.
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져 있느니라
금번에도 가면서 준비할 것이 많았습니다.
좀 못한 곳이고 보니,, 개인적이고 사역적인 것 외에도 애들, 사모님들, 동역자들,,
심지어 공항면세점에도 또 사야했었습니다.
이때 문득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러셨겠구나,, 죄악으로 어둔 이 세상에 오시면서 많이 준비하셨겠구나
듣도 보지도 못한 영생, 부활, 성령 보혜사 등,
그리고 아낌없이 다 주셨습니다.
입고 계시던 의복도, 속죄의 보혈과 물까지 다 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도록,,
결론) 12월은 구주성탄절입니다.
세상은 놀 생각을 한다면 성도는 구주를 다시 내 안에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인격과 삶으로 향기가 되고 세상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좀 착하거나 좀 다르거나 정도가 아닌 “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 손
으로 만지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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