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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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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12-09 18:18 조회 37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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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신학대학교 총장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신혼부부 집에 심방을 갔는데 편지를 한 장 내밀더랍니다.

하나님께 쓴 편지였는데 내용이 감동이었답니다.

“하나님, 요즘 서울의 전세 값이 너무 올라 집 얻기가 어렵습니다.

제 기도제목은 부모님 도움 없이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 신혼집을 마련해 결혼 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드리면서 쥐꼬

리만 한 월급에서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미친놈이라 했지만 저는 원래 “하나님

의 돈이니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뿐이라” 답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절약과 저축을 시키셨고 제 작은 것에 축복을

더 하셨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얼마 전 부모님 도움이나 대출 없이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 서울에 아파트를 샀

습니다.

비웃던 친구들도 “하나님 진짜 있기는 있는가 보다”하며 축하해주었습니다.

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저는 장가갑니다. 자수성가 아닌 예수성가 이루겠습니다.

 

목사님은 이 편지를 다 읽고 기특한 마음을 칭찬하려는데 갑자기 부부가 울기 시작했답니다.

알고 보니 편지는 10년 전에 쓴 것인데 그대로 이루어져서 그 집에서 심방예배를 드리니 감격스러운 것이었답니다.

 

1) 선한 목자

인생을 경영하는데 잘 만나야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부모, 멘토, 반려자, 자식 형제 등, 특히 인생전반의 목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신데 다른 말로 “좋은 목자”입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악한 목자 곧 나쁜 목자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도둑 같아서 도둑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양을 위하기보단 양에 관한 모든 것을 탈취하는 자들이고 마침내 생명도 죽이는 자들 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자기 양이 없고 사랑도 없는 존재들입니다.

양의 탈을 쓰고 온 이리 같은 자들입니다.

요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

을 물어 가고 헤치느니라

유감스럽게 부모 중에, 자식 중에, 형제 중에, 친구 중에, 목사와 교우 간에, 교우 간에, 제자와 스승 간에, 동업자간에도 많

습니다.

오죽하면 "믿을 놈이 없다" 고 할까요?  대다수의 많은 불행이 잘못된 만남에서 온 것입니다.

 

남포동이란 배우는 10년째 모텔생활 하고 있었는데 큰 사기를 당한 후 할 수 없는 이혼도 하고., 쓸쓸히 지내고 있었습니

다.

그런데 옛 친구 몇 명이 그를 격려하곤 했습니다.

좋은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알 것은 사람은 목자가 못되고 선한 목자는 더더욱 될 수 없습니다.

지혜와 능력이 한계적 존재라서 그렇고 사랑역시 없어서 그렇습니다.

요10: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이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그러나 선한 목자는 분명해서 자기 양이며, 그 양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사랑합니다.

요10:15) ~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러므로 상천하지에 선한 목자는 한 분밖에 없습니다.

 

2) 만남

이 분과의 만남은 우연이나 행운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륜이고 섭리인 것입니다.

요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이런 만남은 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반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선택하신 것이고 부르신 것입니다.

엡1:4~6)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

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주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이미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주님이 오심이 어떤가요? 이름으로도 아신 바 된 자기 백성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왜 오셨느냐는 백성된 양들의 속죄를 위함이었고 자의적이었습니다.

요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

시느니라

 

양과 선한 목자와 만남,, 사람과 상황과 신앙 따라 각기 다릅니다.

사도바울은 극적인 만남을 이루었습니다.

일행이 있었지만 그들은 주의 음성을 듣지 못했고 오직 뇌성이 친 듯한 빛과 소리를 보고 들었어도 사도바울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네팔지진으로 많은 힌두교인과 불교인들이 개종을 했습니다.

지진 때 와서 섬기는 사랑을 본 후였습니다.

 

만남의 모양은 달라도 분명이 있어야 하며 그 인생의 변곡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남의 상황을 연출하시기도 하는데 곧 나사로의 죽음이었습니다.

주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하심을 듣고도 고의로 지체하셨다가 장례가 마친 후에야 나사로의 무덤을 찾으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하심을 들은 후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요?

요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과연 그랬을까요? 그랬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하는 자들도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사건과 문제와 결핍을 통해서 자신을 선한 목자로 계시하시면서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곤 하는 것입니다.

마치 햇볕에 굳어지는 속성의 진흙이 있고 녹아지는 속성인 버터가 판명되듯이,

여러분 생애에서 선한 목자와 만남을 증언할 수 있나요?

객관적인 사실은 무엇인가요? 주관적인 사실은 무엇인가요?

객관적인 사실은 성경이고 주관적인 사실은 주님에 대한 고백과 경험들입니다.

앞선 하나님께 편지 썼던 성도처럼 그와 같은 감격이 있으면 새롭습니다.

 

3) 다른 양

선한 목자는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찾고 계십니다.

선한목자의 소망이고 애씀이고 슬픔이기도 합니다.

요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함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선한 목자는 한 분외는 없습니다.

양들은 모르고 세상도 몰라도 선한목자 자신은 압니다.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기에,

요10:18) ~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좋은 떡이나 약이나 옷이 왔는데,, 곧 없어진다면 어떨까요?

집안에 없는 애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좋은 집으로 이주하는데 만약 탕자가 있다면 어떨까요?

선뜻 이사 갈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기다릴 것입니다.

여기에 형제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고 기다리는 것만이 아닌 밖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 모습이 효도이고 충성이고 형제애고 인정인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던 탕자의 비유가 이런 것입니다.

유대교는 이런 선한 목자의 아버지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집나간 동생인 기독교가 되돌아오자 심히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현대에도 이런 몹쓸 일은 재현되곤 합니다.

 

우리 신앙의 목적이나 기도의 목적이 자신의 안정과 번영만을 위한다면 어린아이다움입니다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아버지요,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애통을 헤아리는 목적과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언제나 이런 탕자는 있고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들은 많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런 심정으로 대언했습니다.

사1: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

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

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결론) 선한 목자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분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인도되었으니 이제는 그분의 관심사에 충족할만한 좋은 양으로 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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