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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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입니다.
나 혼자 “올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잘 살았네” 했더니
퇴근 후 쉬고 있던 딸아이는 “아멘” 으로 화답했습니다.
아멘이 무엇인가요? “진실로 그러하다” 아닌가요? 즉 “나도 동감” 이라는 뜻입니다.
송년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는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일 줄 믿습니다.
1) 역사의 패턴
인류의 역사는 개인역사의 총합입니다.
이 역사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는데 빛과 어둠이고 형통한 날과 곤란한 날의 반복입니다.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전7:14)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
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누구나 울고 웃는데 문제는 우는 날이 많다는데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생에게 고난이 없고 형통함만 있다면 어떨까요?
가시밭길이 없이 꽃길만 있고, 밤이 없이 낮만 있고,
비바람 없이 햇볕 쨍쨍만 있다면 어떨까요? 어떨 것 같나요?
자만하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셨고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고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원하는 지팡이만 아니라 막대기도 번갈아 사용하
시면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고백을 앞서 했었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당장은 막대기가 아프고 서운해도 지나고 보니 그 역시 은혜의 손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지팡이 사용이 쉬울 듯합니다.
매번 사용하지 않는 구원의 도구이기에,,
그러나 인도용 막대기는 항시 사용이기에 주님도 피곤하실 것입니다.
순서를 보십시오,
왜 지팡이가 먼저 나오는지를,
나의 죄는,, 타락은 물론 뼛속 깊은 데까지 박혀있는 죄성은,,
끊임없는 반역과 이탈을 만들어 주님으로 하여금 날마다 막대기를 사용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고난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씀이 실감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은 크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천국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시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2) 은혜의 보석 상자
하나님이 지니신 은혜의 상자에는 온갖 보석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 보석 상자는 예수님이고,, 그 안에 감춰져 있는 것이 아주 신비이며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위엄이 함축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내가 빚어졌고,, 구원 받았고,, 인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다” 가 이 고백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사람이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로다”가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소원은 어떤가요? 다른 이의 소원은 어떨까요? 차이가 없습니다.
늙거나 병들었는데도 죽고 싶지 않고,, 그래서 그 소원대로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정치인들은 다 최고가 되고 싶을 텐데,, 과연 최고가 몇 명이어야 최고 인가요?
다 부자되고 싶은데,,다 부자이면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나요?
개인이 소원을 가지고 노력하는 일은 꿈이 있어 아름답고,
그런 사회는 그 경쟁을 통해서 발전하지만 최종의 결정은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 따라 결정짓습니다.
여기에 누가 하나님께 힐문하겠으며 반박하겠나요? 오직 하나님다움의 결정일 뿐입니다.
전9:11) 내가 다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은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열심히 해도 안 된 때가 있고 그러나 반대적인 때도 있어요.
작은 세상인 어느 조직을 보세요.
갑자기 세상이 달라지면서 비주류가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쥐구멍에도 볕들 날 온다.”가 맞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류에서 볼 때는 선착자가 될 줄 알았는데,,승리할 줄 알았는데,,
재물을 얻을 줄 알았는데,,그렇지 못했으니 원망과 불평이 큰 것입니다.
그 답이 무엇인가요? 시기와 기회로써 하나님 절대적 주권과 경륜인 것입니다.
하나님보석상자의 감추어진 보석중의 보석인 것입니다.
여기에 나도,,우리도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 중심으로 돌지만 착각하기를 지구중심으로 “해가 떴다 해가 졌다” 하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중심의 세계가 자기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하여 자기 마음에 맞으면 은혜이고 감사하며,
그렇지 않고 공평하거나 경륜대로 움직일 텐데도 불순종하는 일이 허다 합니다.
이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중심이어야 합니다.
그 신앙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신앙이고,
그 신앙이 머리가 아닌 손과 발이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3) 아멘
이 신앙을 “아멘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는 안 되어도 성경이 그렇다고 하니 “아멘” 합니다.
그리고 체험이나 현상에 따라 울고 웃기 보다는 말씀과 성령님께 맞추어 사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완성했었습니다.
자기나 백성들이 디자인한 성막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해준 디자인 따라 완성했습니다.
그 완성 후 하나님의 임자가 충만히 머물렀는데 곧 “성령충만” 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내가 내 삶을 디자인 하려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힘을 더 얹으려고 합니다.
욕심도 있고 탐심도 많습니다.
쉬도록 창조하셨건만 쉼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고 나눔도 없습니다.
마치 화약을 짊어지고 불로 뛰어드는 형국입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여전히 죄된 성향과 지고는 못사는 기질 때문입니다.
거듭남으로 성향이 바뀌어야 했습니다.
그 성향에 맞춰 기질이 움직여야 하는데 아직 죄인된 탓에 여전히 과거의 그대로입니다.
성경에 보면 같은 하나님인데 두 가지 패턴으로 말씀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부르짖어라” 크고 기이한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가만히 있어라” 너희는 여호와가 하나님인줄 알리라
이 차이를 아시나요? 여기서의 착오가 신앙과 삶의 착오를 일으킨다면 믿겠나요?
“부르짖어라”는 만사에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현재에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라”는 미래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경륜을 믿어라 입니다.
장군장로님과 최근 식사를 했었습니다.
그 분의 간증이 귀해 세계기독실업인 대회에서 주강사로 쓰임 받고 유럽교회에도 초청 받았었습니다.
1월부터는 전 방송사지사에서 그 지역의 교회들에게 간증하도록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는 중위부터 대령까지 all A을 받았는데 이런 일이 드문 케이스랍니다.
자신이 보직을 신청해서 간적은 2번인데 초임 때 전방수색 소대장이었고,
대령 때 참모총장 부관마친 후 최전방 연대장으로 갔었답니다.
수색소대장시절에는 전임과 후임이 지뢰사건으로 죽었는데 비해 자신만 살았고,
연대장 시절에는 수류탄 들고 자살소동 사건이 있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답니다.
그리고 대령시절 2명의 불량상급자로 하여금 괴롭힘을 당했지만 타협하지 않고 기도만 했더니 하나님께서 멋지게 복수해
주시더랍니다.
결론) 맞습니다.
오늘의 나는 욕심이 아닌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내일의 나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올해가 미흡했으면 내년에는 “아멘” 으로 올해가 “아멘” 이었다면,,
내년에는 아멘과 찬송까지 할 수 있도록 삶의 디자인을 하나님께 드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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