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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올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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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0-03-22 09:24 조회 47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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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란 단어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생의 책임을 크게 말씀했습니다,

약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가르치는 교사도 더 큰 심판이 있다는 경고인데 하물며 선생은 어떨까요?

 

선생을,, 우리말로는 어른이고 부모, 선배, 장남, 선각자, 선봉자, 지도자 등이 포함됩니다.

문득 생각하기를 왜 아담하와가 범죄자가 되었을까했는데,, 이유는 그들에게는 모델이 없어서였다가 답이 됩니다.

농아엄마나 다문화출신 엄마의 자녀는 말을 늦게 배우는 이치입니다.

 

1) 12지파의 넷째

이스라엘 백성은 12 형제가 지파로 구성되었습니다.

야곱이었던 이스라엘의 생애가 파란만장했던 만큼 그의 부인들도,,자식들도,, 그 사연 따라 많고도 달랐습니다.

유다는 야곱의 첫째부인의 소생으로 4째임에도 불구하고 그 12지파의 맏이 역할을 했는데 그의 됨됨이부터가 그랬습니다.

 

아버지야곱의 하명을 따라 첫 번째로 곡식을 사러 애굽에 갔을 때 애굽의 총리로부터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었습니다.

두 번째로 곡식을 사러갔을 때 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아버지야곱이 거절하자 유다가 나서서 아버지를 설득했었

고 마침내 베냐민을 데리고 간 후에는 그가 붙잡히자 자신이 대신 담보가 되기를 청하여서 총리에게 형제들의 진정성을 인

정받았습니다.

창44: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희생을 말하기는 쉬어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내 돈을 주기는커녕 맡아 둔 돈 도로 내주는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유다에게는 형들도 있고 동생들도 있었습니다.

올 때 아버지를 설득했으니 갈 때 애굽의 총리를 설득하는 일은 자신이 못한다 해도 될법합니다.

아니 사람들은 생색나는 일은 앞장서고 책임지는 일은 못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궂은 책임을 끝까지 졌었던 것입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입당테이프를 끊는데 안수집사들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중에 이유를 들어 보니 장로들이 건축헌금 내는 데는 인색했건만 생색나는 데는 서로 끼겠다는 모습을

보고서 그랬답니다.

이런 일 흔한 일 아닌가요?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하자는 데는 핑계대고 빠진 후 먹는 데는 다 참여한 것입니다.

 

2) 유다가 올라가라

그래서 그랬을까요?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여호수아가 죽자 싸울 사람이 없었을 때 하나님은 유다가

올라가라 하셨습니다.

삿1:1~2)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시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

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시니라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땅에 정복할 때까지 저들의 행군은 군사작전 같았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애들, 부녀자, 허다한 잡족 등,, 약 100만 대군이었고 이들은 유목민 가축도 많았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평면적으로 먹고살면서 행군했을 것을,,

떼거지도 그런 떼거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숱한 떼거지들이 행군과 쉼에 절대적인 것이 있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계시중심이었고 둘째는 성막중심이었고 셋째는 순종이었고 넷째는 모세중심이었고 마지막은 유다지파

중심이었습니다.

민2:3) 동방 해 돋는 쪽에 진 칠자는 그 진영별로 유다의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라 유다자손의 지휘관은 암미나

답의 아들 나손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들어가서는 지파별 제비뽑아 분배하였으나 그 전 까지는 유다가 중심이었고 행군 시에는 선

봉이었습니다.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나요? 앞선 기러기가 제일 힘들기에 교대하곤 한답니다.

군대는 첨병이나 수색대나 상륙군이 희생이 많고 도전이나 모험도 첫 발자욱이 어렵습니다.

 

유다지파는 처음광야 생활의 처음 길을 가야하고 100만의 동포들이 따라 옵니다.

물론 그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시지만 책임은 큽니다.

반면 그 책임만큼 따라오는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51: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첫 번째로서 수고와 고생도 따랐지만 대신 첫 번째로의 기쁨과 즐거움도 만끽했을 것입니다.

산모는 해산의 고통이 두렵고 힘들어도 출산 후에는 세상을 얻는 보람과 기쁨이 있는 이치입니다,

 

유다의 수고와 헌신의 희생이 짐작 되나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씨 뿌린 농부만이 추수의 기쁨을 얻는 일과 같습니다.

우리는 부모이기에, 선배이기에, 근로자이기에 사뭇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목회와 설교준비는 해산의 수고인데 반면 그 보람은 감격입니다.

 

3)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유다의 이름은 ‘여호와께 찬송’입니다.

창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로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유다엄마인 야곱의 첫째부인인 레아가 그렇게 지었습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경륜이 있었는데 자연스런 일 같지만 실제는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찬송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며 누구나 할 수 없습니다.

트롯트가 대세라지요? 왜 하필 요즘에? 트롯트는 슬픔과 한이 배어 있는 노래인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맛깔나게 부르고

요즘은 우울해서 분위기가 맞는 시대 덕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죽을 때에 유다를 어떻게 축복했을까요?

너무 길어서 창49:8~ 12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요약하면,,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이 유다에게서부터 다윗 왕이 그리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오셨으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로 말미암아 이 큰 일들을 이루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생긴 대로 산다지만 반대로 사는 대로 생기기도 합니다.

관상이 좋아도 잘살지 못하면 좋은 관상도 일그러지듯이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예언적이어도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면

결국 불신이 됩니다.

이를 로마서는 믿음으로 산다고,,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했습니다.

 

유다는 다른 형제들과 같은 조건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삶은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다르게 살아서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생각이,, 느낌이,,행동이 달라지질 않았겠나요?

그 시작은 하나님을 향한 지식과 마음인데 곧 믿음입니다.

 

성도는 교회는 이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책임,,하나님께는 찬송의 책임,, 이웃들에게는 희생의 책임,

순서상으로는 하나님이 우선이지만 이웃들에게도 동일해야 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다면 균형을 잃어 종교가 되던지 시민운동이 되기 쉽습니다.

 

결론) 성도는 초대교회신앙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박해 속에서는 신조를 지키고 세상 속에서는 빛을 발해야 합니다.

찬송이라던 유다이름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숭고한 희생과 책임을 감당하는 성도와 교회로 최고가 아닌 앞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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