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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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는 많은 전투와 병법이 있습니다.
고지전과 시가전이 있고 병법에는 정보전과 심리전도 있습니다.
옛 이스라엘의 적국인 불레셋은 골리앗을 앞세워 심리전을 펼쳤습니다.
1) 골리앗
골리앗을 보십시오,
거인 중의 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체구와 차림은 위용을 과시했으나 전투적이지 않은 “싸움을 돋우는 자”였습니다.
삼상17:16) 그 불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모습을 나타내었더라
소위 쇼윈도 장수였는데,,문제는 이 전술이 이스라엘에게 먹혔다는 것입니다.
삼상17: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불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골리앗과 이스라엘의 놀라고 두려워하는 모습은 오늘도 있습니다.
굳이 누구와 누구를 비견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이 모습은 영적전쟁에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마귀는 세상은 물론 교회와 성도를 향해서 과장하고 과시된 모습으로 참소하곤 합니다.
여기서 대다수가 싸워보기는커녕 으레 겁부터 먹고 백기를 들곤 합니다.
신기하게 이런 심리전은 언제나 잘 먹힙니다.
일본이 우리를 향해서 한 말이 무엇이었나요?
“조센징”,, 실제 조선인이라는 말인데,, 이 말에 비하적이라며 발끈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응수도 있었는데 우리가 그들을 향해 “쪽발이”라고 불렀던 일입니다.
또 반면 스스로 비하했던 말이 있습니다.
“엽전”,,이 역시 발끈하며 사기저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는 노릇입니다.
유감되게 우리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었기 때문에 누가 뭐라 했든 무너졌던 것입니다.
조선의 신분제도를 아시지요? 실제 양반은 얼마 없었지만 나중에 다 만든 양반이라는 사실을,,그러므로 일종의 신분 컴플
렉스가 작용한 듯했습니다.
무의식중에라도 이런 컴플렉스가 못난 자아를 만들고 상대에게 먼저 쪼그라들게 만들고,,
마귀가 공격하는 온갖 참소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절대 삼지창을 들고 붉은 망토를 걸치고 나오질 않습니다.
전쟁인 만큼 위장을 한 후 지식인이나 권세자나 혹은 부자나 연장자를 통해서 머리와 마음을공격합니다.
“바보스럽게” “너는 못해” “너는 할 수 없어” “실패할 거야” “가방끈이 짧아서” “못생겨서”
인신공격은 너무나 쉬운 공격지점입니다.
무의식중에라도 이런 공격을 받으면 입력이 되어 스스로 포기하거나 지는 형국이 됩니다.
그거 아시나요?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지식과 우월함을 은연중 과시하려 하면서 입에 찌르는 침을 달고 삽니다.
그들은 “다 너를 생각해서” 라고 하는데,, 상대는 생각해 달란 적 없었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한쪽은 마귀의 공격수가 되고 다른 쪽은 마귀의 밥이 되어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마귀의 하수인이 된 공격수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없습니다.
가까이 가면 아픈데 누가 가까이 할까요?
되레 신념에 찬 똑똑함 보다는 온유와 겸손의 성품으로 침묵과 격려가 월등히 좋습니다.
입술에 솜을 대고 있어서입니다.
성도는 참소하지도 말고 거짓도 말고 침묵,,
아니면 격려할 줄 알아야 마귀의 하수인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습득해야 합니다.
마11:2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습득하길 축복합니다.
2) 다윗
이런 골리앗 앞에 당돌하고 용맹한 목동다윗이 섰습니다.
그는 투구도 갑옷도 칼도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히 섰습니다.
삼상17:45) ~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군
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의 의분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가리워지는데 있었습니다.
다윗의 안목은 골리앗의 큰 체구와 차림이 아닌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다윗의 기술은 골리앗의 참소와 거짓 보다는 더 훈련되고 준비된 물맷돌이었습니다.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우리는 언제 분노하나요? 무엇을 보나요? 또한 무엇을 발휘하나요?
우린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로써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가려지고 모욕당하는 일에 분노해야 합니다.
또한 언제나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에 소망을 두고 거룩함과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땅위에서 사는 시간 속에 기도와 선한 일에 물맷돌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는 세우고 마귀의 나라는 무너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시각으로 하나님 닮은 귀중한 존재로서 인정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도 “쓸모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닮은 존재이고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로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3) 예수님이 오심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이 무엇이었나요?
첫째,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었고,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둘째,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었으며,
요1서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셋째, 섬기려 오셨습니다.
마20:28)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 밖에 많이 있습니다.
제자를 세우셨고, 그들로 말미암아 몸된 교회를 세우셨으며 믿음의 본을 보이시기도 하셨습니다.
특별히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를 유념하셔야 합니다.
마귀는 장차 심판을 받지만,, 마귀의 일,, 참소하는 일, 거짓말하는 일을 멸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귀의 불법적인 일은 성행하고 있고 거기에 넘어가는 일이 큰일입니다.
왜 그런가요?
골리앗이 싸움을 돋았던 그 심리전에 이스라엘 군대처럼 눌려서 그렇습니다.
예수대장님께서 영적전쟁에서 이미 이겼습니다.
그 승리와 승리의 권세가 우리에게 위임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비난이나 성도에 대한 참소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대통령학에서 말하는 가장 최악의 대통령이 되는 비법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언론과 여론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면 “소신 있다”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통” 이라고 하는 게 언론이고 여론입니다.
특히 여론은 뽑아놓고 곧 후회하길 반복하는데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대통령개인이 어떻게 국민들에게 맞추나요? 국민들이 맞추어야지요.
교회와 성도들도 똑같습니다.
세상과 함께하면 “타락했다” 하고,
거리를 두고 거룩한 길을 가면 “세상 속의 교회” 가 아니라며 타박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 한 분께만 눈 맞추고 입맛 맞추면 훌륭한 신앙이 됩니다.
결론) 구주성탄에 장식도, 모임도, 예배도 생략되거나 축소되었습니다.
비정상적인 때인 만큼 구주성탄의 의미를 잘 살리시길 바랍니다.
다윗과 골리앗은 영적전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훈련된 물맷돌 질로 승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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