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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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곳에서 로봇를 만날 수 있습니다.
초밥 만드는 로봇은 원시 로봇이고 커피바리스터 호텔 써비스맨도 벌써 구관입니다.
인천공항에서는 로봇이 나를 보고는 먼저 피해 갔습니다.
이처럼 인공지능로봇이 여러 분야에서 사람을 대신하여 사람을 섬기는 활약 중 입니다.
1) 인자가 온 것은
우리 개개인이 소중한 존재이지만 누구든 이 세상에 스스로 온 것은 아닙니다.
철학은 이 질문과 답을 찾게 하지만 답은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확실한 답을 줍니다.
나는 왜 세상에 있을까요?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 누구도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이 목적대로 살 때 존재감도 있고 행복도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본래 인자가 아닌 예수께서 인자로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리아의 몸을 통해 아기로 태어나 말구유에 뉘셨고
자라면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받드셨던 삶은 무엇인가요?
섬기는 자로 오신 것입니다.
그 낮은 모습의 최고가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죄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는 대체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경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스스로 비정규직에서 섬기셨다 할 수 있습니다.
산동네 나사렛에서 자라셨고, 학교교육은 없는 목수의 아들로서 목공인,
철저한 비주류셨습니다.
따르던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갈릴리 어부들이었습니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많은 공감대를 지니셨고 심한 통곡의 눈물도 있으셨기에 우리의 중보자인 제사장도 되신 것입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 분은 철저히 종으로 섬기려 오신 분입니다.
왕의 입성에서도 나귀새끼를 타셨고 삶도 청빈하셨습니다.
요8:1) 다 각각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위의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마8:20)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
더라
2) 대속물
많은 사람들은 없다없다 하면서도 그럼에도 지닌 것이 있고,
죽겠다죽겠다 하면서도 막상 죽게 되면 화들짝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직 유일한 생명을 하나님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 백성들을 살리는 죗값으로 대신 지불했습니다.
롬5:7~8)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
을 확증하셨느니라
세상에 이런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을 의롭다 높이시고,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는 신분과 또 살아야 하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미국의 전도자의 일화이니 제법 된 얘기입니다.
성회를 마쳤는데 한 청년이 허겁지겁 들어왔습니다.
“벌써 끝났나요? 여기 오면 답을 얻을 수 있다 해서 왔는데요?”
“안타깝지만 이미 끝났습니다.” 무디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럼, 어디가야 구원을 받나요? 다음집회를 기다려야 하나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이 모든 일을 다 하셨기에 당신이 할 일은 너무 늦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했
답니다.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나 정말 주신 줄 믿습니다.
이 대속의 결과로 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고 모임이 교회입니다.
대속물로 주셨기에 주인이시고 공동체의 머리가 됨은 당연지사입니다.
섬기러 오셨지만 그 섬김을 통해서 섬김의 주인공이 되신 것입니다.
본래 이 분은 누군가요?
왜 탄생 시에 하늘의 천군천사가 등장했고 찬양했으며 별조차 움직였을까요?
왜 귀신들린 사람이 낫고 앉은뱅이가 걷고 소경이 눈을 뜨고 바람과 파도도 잔잔케 하셨나요?
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었나요?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 자니
그러므로 그 이름에 권세가 있고 그 말씀에 권능이 임하며 그 피 값에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신비한 소설 같지만 사실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법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으로 모든 사람을 죄로 가두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 의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는 만인이, 믿음으로, 은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의롭고 두려고 거룩한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좋으신 아버지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보이는 달은 환해도 달 뒷면은 차갑고 어둡듯이 한 하나님께서 두 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속성을 확연히 나타내셨습니다.
죽으심은 죄에 대한 진노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을,
부활하심은 사람을 다신 살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
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 신앙고백은 탄생만이 아닙니다.
탄생은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은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열매 맺어야 합니다.
3) 성탄십계
기독교 문장 대백과 사전에 소개된 십계명입니다.
1,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라.
2,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감사하라.
3,주님께 드릴 최선의 방은 마음에 있음을 기억하라.
4,교회에서 열리는 행사에 기꺼이 참석하라.
5,이웃의 어려움과 필요에 민감히 반응하라.
6,가정과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라.
7,성탄과 관련된 예술을 향유하라.
8,성탄기쁨을 나누기위해 선물을 하라.
9,나를 위해 수고한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라.
10,자녀들에게 성탄절의 메시지를 가르치라.
결론) 주님의 섬김은 자신을 대속물로 주심 입니다.
우리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되어 최상의 삶과 신분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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