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음 속 바다 가운데서
페이지 정보
본문
살다보면 깊음 속 바다 가운데서 허우적거릴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어때야 되나요?
찬송가는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상황은 당황스럽고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일이 훈련되지 않아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도 훈련이 필요한 만큼 어려서부터가 좋습니다.
1) 요나/ 고통 속에서
요나는 이유가 무엇이든 고통 속에서 기도했습니다.
2절)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
서 부르짖어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큰 형님 같은 장로님부인이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부인권사가 위암수술을 했는데 폐암으로 전의되었고 항암1차 수술 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3개월째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치료가 힘들자 병원은 호스피스병동을 권하고 있는데 그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이 말씀을 붙잡게 되어 소개했습니
다.
요나의 기도는 믿음과 구원의 확신에 찬 완료형의 기도입니다.
4절)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하였나이다.
6절)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니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9절)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요나는 마침내 구원 받았고 다시 쓰임을 받았는데 이 회개기도가 주효했습니다.
성도의 고통은 하나님 뜻에 반할 경우 하나님의 진노이고 성도불신앙의 뜻을 꺾는데서 대체로 옵니다.
이때의 회개기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고 하나님의 뜻으로 돌이키므로 복이 됩니다.
하나님과 나를 가깝게 하여 화평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설득이나 이해를 구하는 일이 능사가 아닙니다.
회개이고 그 첫 번째가 중심의 회개기도입니다.
참된 회개는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보며 근신하게 합니다.
고통과 환난은 쓴 약 같아서 회개를 이루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 나를 옳게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과 환난이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온 우주보다 넓지만 회개한 자의 잘못을 기억할 만한 여지는 없다”
-에머슨-
이런 기도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1장을 보면 그 환난의 고통원인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책임의식입니다.
회개란 여기서 부터의 시작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욘1: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욘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
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사람은 모두가 스스로는 의인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결 같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르고 자신도 모릅니다.
그러나 빛 앞에 서면 보입니다.
성도의 환난은 빛의 거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며 회개와 회개기도는 하나님 손을 맞잡은 빗질입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2) 야곱/ 두려운 미래
라반 삼촌 집을 떠나온 야곱에게는 두려운 미래가 약봅 강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향이 가까울수록 지난날 형에서를 속여 축복을 가로챈 일 때문에 형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창32: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겪어보았나요?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불안과 초조가 엄습한 상태입니다.
한숨과 불면은 기본이요, 짜증과 우울은 옵션입니다.
야곱은 우선 자구책을 세웠습니다.
생각의 총동원, 방법의 최고책을 세워 형에게 사절단을 보냈고
여차하면 튈 수 있도록 떼도 나누어 놨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자 남았고 결국 그 두려운 한계성 앞에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야곱이 비록 ‘빼앗는 자’ ‘발꿈치 잡은 자’ ‘속이는 자’ 이었어도 방법이나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향이 어디서 온 것인가요? 부모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이제는 자기화 되는 것입니다.
모든 예수 믿는 부모들이 바라는 바가 한결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선생으로, 어른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야곱이 이 약봅 강에서 기도한 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라는 새 이름 ‘이스라엘’로 개명해 주셨습니다.
미래는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창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 맞추고 피차 우니라
이 놀라운 미래, 차가운 기도가 아니라 뜨거운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창32:25~26)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
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
하겠나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인간의 잔꾀나 술수로 혹은 사람을 의지함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도만이 그 두려운 강을 건널 수 있고 산을 넘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만이 불안이 사라지고 안심이 찾아듭니다.
이는 기도할 때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오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나라는 존재의 기반에서 온 불신앙입니다.
반면 담대함은 하나님께 기반을 둔 믿음이기에 마음의 변화는 물론 환경과 사람도 달라집니다.
장군장로님의 간증을 기억하시나요?
대령 때 4성 사령관에게서 술 안 먹는다고 찍혀 곤란을 겪던 중,
사령관 명패의 용 문양을 본 후 영적 전쟁으로 인지하고 기도하였더니 그 해 창군이래로 유일무의한 방식이 도입되어 장군
승진 할 수 있었다는,,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3) 욥/ 풀 수 없는 문제
욥이 당면했던 모든 불행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재산의 손실, 10자녀의 죽음, 자신의 병듦, 가까운 이들의 외면,
그 가운데서 10자녀를 잃고 어찌 살았을까 자문해봅니다.
훗날 신학은 이런 욥을 ‘의인의 고난’으로 정의하며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이라 했지만,
만약 나의 일이라면 죽는 것이 나을 일입니다.
그런데 죽어지지도 못했습니다.
욥의 절정이 무엇인가요?
큰 재산가요, 자타가 공인한 의인의 인격과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인정하신, 마귀가 시샘한 의로운 신앙이 아닙니다.
그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요?
욥은 소유나 건강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티끌과 재 가운데 앉아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고난에 관여하지 않는 불공평한 분으로 오해하고 불만과 불평했었음을,
하나님을 잘못알고 무지한 말을 하고 무죄, 결백, 의를 주장했었음과, 교만했었음을 회개한 일입니다.
회개할 내용이 많은데도 회개치 않는 죄인들과,
회개할 내용이 없음에도 죄인이라고 회개한 욥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이런 욥을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욥의 기도를 보면 온통 쏟는 것, 버리는 것투성입니다.
욥은 더 나아가 거두어 드리는 기도까지 했습니다.
자기의 무지에서 나온 불평, 한숨, 절망, 한탄, 의심 등을 하나하나 모아들여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풀 수 없는 문제의 답이었습니다.
결론) 우리는 요나가 되고 야곱이 되고 욥이 되기를 반복하곤 합니다.
무슨 힘으로 살까요?
기도 외에는 비결이 없습니다.
아시나요? 기도라는 헬라어 ‘데오마이’ 는 “해도 해도 모자라다 ”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세상사는 동안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고 “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