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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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여전한 것이 있습니다.
설을 쇠고 있습니다.
얼마 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 놓고 또 같은 인사를 하니 중복이 됩니다.
나이는 어떤가요?
만 나이를 세고 있으니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역행하는 셈이고 주소도 새주소가 아닌 옛주소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어떤가요? 옛사람을 따르는 구습이 있고,
신앙에는 유교불교의 요소는 물론 한국적샤머니즘도 있습니다.
1) 이제는
이제는 이런 모습에서 혁신과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초기기독교시절 평안도 신천에서는 시장이 주일에는 쉬었답니다.
성도들이 장을 보지 않고 예배에 전념했기 때문인데,
거룩한 일치가 문화를 바꾸고 새 전통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성도가 1000만이면 무엇이든 혁신과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질이 떨어지니 세상을 어거하는 것이 아니라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곳에는 피곤합니다.
소갈 데 말갈 데를 다 다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끊어내지 못한 체 끌려 다녀서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생명, 새 성향, 새 윤리, 새 문화를 만드는 선각자인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
도다
여러분스스로를 검증해 보십시오.
*거룩한 것을 갈망하나요?
그 최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는 것도 유익하지만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주와 함께 사는 영생이 있어서입니다.
*언어가 바뀌었나요?
언어는 그 출신을 증명합니다.
나이를, 인격을 웅변해 줍니다.
그래서 애들 언어가 있고 노인 언어가 있습니다.
잘 안 바뀌는 것이 언어지만 새 생명과 새 성향을 가지면 제일먼저 바뀌는 것이 언어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긍정의 언어를 낳고 행동은 친절해 집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나요?
유물론적 사상일수록 신적존재 무시와 사람을 학대하고 학살합니다.
심판도 없고 사람가치를 하찮게 여겨서입니다.
근대에서 인류의 큰 해악을 끼친 사람 둘이 있답니다.
무신과 왜곡된 신지식이 그렇게 만들었는데,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로 전쟁을 일으켰고 성의 문제를 노골화시킨 트로이드 랍니다.
이들의 원조가 잘못된 신학자 칼 바르트였고 이 영향으로 진화설을 주창한 챨스다윈이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사람에 대한 무한가치를 봅니다.
기계적이고 기능적인 탁월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닮은 형상이요.
주님이 대속하신,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보아서입니다.
*교회에 대한 믿음이 있나요?
교회는 세상에 있어도 사람이나 세상기관이 아닙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주의 몸입니다.
여기에 신비함이 있습니다.
애기 집이 있는 여인의 몸과 같아서입니다.
이런 교회를 허는 자와 세우는 자가 있는데 새 성향은 세우고자 합니다.
이 땅위의 교회가 완전하지 못하고 목사를 비롯한 성도들일지라도 꼭 필요한 기관입니다.
의사가 실수하고 병원이 치료중심이나 환자중심이 못되어도 꼭 필요한 것처럼
세상의 교회는 불완전해도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하나님이 붙드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교회의 지체가 됩니다.
최근에 ‘가나안’ 성도가 많은 것은 교회의 겉만 보아서 일 듯 합니다.
이들은 뿌리 없는 나무가 되고 학적부 없는 학생과도 같습니다.
* 복음의 능력을 믿습니다.
고후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지금의 세상과 사람상태는 죄의 결과입니다.
세상은 망가졌고 사람들은 피폐해졌습니다.
그러한 세상이 세상을 치료할 수 없고 그 사람들이 자신과 이웃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철학과 과학은 그럴 수 있다고 주문을 걸고 있습니다.
불과 수십 년만의 세상은 어떻게 되었나요?
전쟁의 소문은 더 심화되고 사람들은 자기나라에서 못살고 이주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가출산율이 한자리수로 떨어졌고 더 떨어질 것입니다.
이는 현재가 고통스럽고 미래가 불안해서입니다.
인본주의적 철학과 상업주의적 과학의 결말입니다.
그러면서 복음은 약화되고 교회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이기에 복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참 교회와 참 신앙을 통해 하나님 뜻을 이루시며 이를 깨닫고 돌아오는 길이 부흥인 것입니다.
2) 새것이 되었습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절대적 선언입니다.
최근 청와대 대변인이 “자신들에게는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고 했습니다.
좋은 말이지만 절대적으로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전수조사를 하지도 않았고 팩트도 없었지만 정치수사학이기에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새것이 되었도다”는 성경과 십자가 사건이라는 팩트가 있고,
무수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선언과 다른 절대적 선언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었고 마침내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믿고 누구든지 나의 사건으로 받아드리고 그렇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해 사달이 납니다.
이상과 삶의 괴리인데 이를 일치시켜주는 과정이 ‘갈라파고스시기’입니다.
챨스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짧은 기간 동안 머물었지만 관념의 전환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는 ‘결핍’의 때로 어둠의 때요, 고난의 때입니다.
절대고독과 절대무능과 절대죽음을 인지하며 절대하나님을 뵙는 은혜의 때입니다.
죽는 것 같아도 살아서 성도는 이과정을 통해서 새로워집니다.
주의 대속이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되고,
주의 사건이 내 사건이 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는, 내가 깨져야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결핍을 통과하면 마침내 고난은 주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요1서2:17)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고백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새것이 된 것을 믿으십시오.
벧전2:9~10)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둔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결론) “줘도 못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죽 못났으면 그럴까요? 하나님이 온전히 새롭게 하셨습니다.
회칠함이 아닌 속까지 새로움을 누려야 진정한 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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