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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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능력을 본 사람들은 세례요한이 부활한 것이 아닌 가 했습니다.
그만큼 세례요한에게는 희한한 힘이 있었습니다.
뱃심도 아니고 뚝심도 아니고 돈이나 권세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의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영적권위였기에 악한 헤롯조차 세례요한을 죽이기를 망설였던 것입니다.
마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1) 힘
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나이나 서열, 칼과 총의 위협, 직급, 학위, 도덕성, 자본, 기술, 체격이나 체력 등,
어떤 힘이 위대할까요?
그 힘은 리더쉽과도 연계됩니다.
집안에서는 나이나 서열이고 직장에서는 직급이나 계급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 기술주의에서는 기술 등,
분야마다 다릅니다만 그럼에도 시대와 분야를 초월해서 존경 받는 힘은 도덕성입니다.
유비와 공자가 그랬습니다.
북한 주군의 힘은 유별나기로 근대의 세계 1위입니다.
1대는 배급정치로, 2대는 선군정치로, 3대는 공포정치로,
자신들을 태양 같은 존재로 우상화시켰다지만 인민들의 마음은 아직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힘은 무엇인가요?
영성이었기에 잡으러 온 무리들에게 “내니라” 하셨을 때 그들은 물러가 엎드려졌고,
빌라도조차 “그에게 아무런 죄를 찾을 수 없노라” 한 도덕성이며,
리더쉽은 온유와 겸손이었습니다.
주 닮은 성도에게 힘과 리더쉽은 이런 주님이 발원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저급한 힘은 무엇인가요?
총과 칼 같은 폭력입니다.
당장은 가장 강력한 듯해도 가장 저급해서 파괴를 이루고 복수를 잉태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와 교회는 어떤 힘을 키워야 하며 리더쉽을 발휘해야 할까요?
2) 세례요한
세례요한 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서 큰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주변 이들로부터 선지자라는 확실한 신뢰와 신임이었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살면서도 이룩한 청빈한 영성과 왕에게도 담대한 도덕성이었습니다.
마14: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이 모습에서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목사들은 정권에 빌붙고 돈 있는 부자들에게 유독 더 친절하고,
교회는 “자유와 사랑” 이라는 미명으로 불의도 적당히 덮는 비굴함이 있어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안팎으로 존중을 받지 못하고 되레 세상의 염려와 책망을 받고 약잡힘을 당해 반기독교 정책이 대거 나오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강하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습니다만 힘 잃은 교회는 밥이 되기 쉽습니다.
이 문제 해결방식도 이제는 세상재판에 치중하고, 몰려가 시위하고 등,
맛 잃은 소금이 거리에 버려지니 사람들에게 밟히는 형국이 된 것입니다.
목사나 성도의 힘은 숫자나 재정력이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생명력 있는 영성이고 거룩이며 도덕성입니다.
그 모습을 사도행전 성도들에게서 본 받을 수 있습니다.
초기 성도들이었기에 모든 면에서 열악했으나 그들의 족적은 후대의 거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믿는 믿음의 바탕에 성령을 충만히 받아 거룩했습니다.
세상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라는 일컬음을 받았으니 알만 합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라는 칭찬이고 예수님답다는 존경이었습니다.
이들의 힘은 파괴력이 큰 나머지 제국인 로마와 유대교가 위기의식을 느꼈고 둘이 연대하여 교회를 죽이고자 싸움을 걸었
지만 결국 성도와 교회는 이 힘으로 이겨냈던 것입니다.
이때에 비하면 어떤가요?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른 기독교요, 교회요, 성도요, 목사가 되었습니다.
새로워지길 바란다면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삭이 물을 소원해서 새 우물을 파기보단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봉해진 그 우물을 다시 팠던 것처럼 기본인 원상태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게 부흥입니다.
무엇이 효과적이고 현대적이냐가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하시고 부흥은 하나님이 임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 기도 외에는
한 유튜브를 보니 “그 때를 아십니까? ”의 영상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시절의 성탄절 모습인데 그 때의 교회는 천막을 쳤고,
교회가 나누어 주는 구제품은 몰약과 황금과 침향 같은 보물인 시대였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보다는 “기쁘다 구제품 오셨네” 시대라지만 뜨거운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해 가진 것은 많아도 기도를 잃었기에 힘을 잃고 못한 세대를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그럼에도 습관을 따라서 기도하셨고 제자들을 세우실 때도 밤새워 기도하셨으며,
강론이 끝난 후에도 산으로 혼자 가셨습니다.
귀신들린 자를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가지 않는 도다” 하며 가르키셨으니,
기도를 생각만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부탁만 해서도 안 됩니다.
기도는 나의 즐거움이고 나의 고백이고 나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 나의 소원만이 아닌 기도의 원리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과 손 마주치는 사건이 일어나므로 영성
회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기도하는 자격과 힘을 주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 힘을 더 주십니다.
주님께도 천사들이 도왔기 때문입니다.
눅22: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우리의 힘의 근원은 하나님 앞에서 옵니다.
사냥꾼 셋이 사냥 중에 탄 냄새와 연기를 보고 직감적으로 산불인줄 알고 도망했습니다.
달리기를 잘하는 사냥꾼은 골짜기로 달렸는데 불길에 잡혔고
나무를 잘 타는 사냥꾼은 높은 나무위로 올랐는데 역시 나무도 살랐습니다.
딱히 잘하는 게 없던 사냥꾼은 동굴을 발견하고 그리로 숨었습니다.
신기하게 그 동굴은 어디서 들어오는지 공기도 신선했고 매캐한 연기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힘을 키우려고 온갖 방법을 따릅니다.
그러나 세상과 죄와 마귀를 이길 힘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기도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하늘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올 초 교회성장연구소에서는 전국 50개 교회에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성도들은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교회다움, 목사다움, 성도다움’ 을 꼽았습니다.
사실 이 말에도 모순이 있습니다.
“다움”자체가 진짜가 아님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엄마에게서 엄마다움이 필요한가요? 엄마 노릇하는 여성에게는 필요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성, 예배, 전도회복’ 이었고,
“교회에서 제공 받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에는
‘성경을 더 깊이 알 수 있도록 도와 달라’ 였으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더 알게 도와 달라’는 것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또 있습니다.
교회가 “도와 달라”,,?
나부터 부뚜막의 소금을 넣지 않고 있는 실정을 간과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고 열심을 내지 않는데 교회가,, 목사가 어떻게 도와줄까요?
어느 날 딸아이가 그랬습니다.
“아빠, 이슬람교도들이 참 대단해요, 저들은 어느 곳에서든지 하루 5번씩 메카를 향해서 절을 하면서 기도하고 음식도 가
려먹어요, 아무도 없어도 그러잖아요, 그런데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너무 쉽게 믿어요, 거저먹으려 해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이들의 신앙이 이슬람교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면 우리의 안일한 신앙은 교회의 쇠약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요?
저들은 벌을 무서워하는 신앙이라지만 우리는 벌은 없이 상을 받는 신앙이기에 자원하는 신앙인만큼 훨씬 자원함이 있어
야 합니다.
군 교회를 보니 최근 들어 예배용사들의 숫자가 점점 줄고 있습니다.
성도된 지도자들이 상위기관에서의 반기독교적인 정책이나 권고를 내리면 막아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임명권자나 정권에 충성하니, 하급부대에서는 물을 먹는 폐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론) 주님으로부터 온 세례요한의 힘을 사모하고 회복합시다.
거룩하여 담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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