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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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계를 보니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는 신념아닌 신념이 과반을 넘었습니다.
이쯤 되면 열심히 일하는 풍토는 실종되고 행운만 바라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로또가 사상최고치로 팔리고 있답니다.
이상현상인데 어떤 처방이 없습니다.
1) 사회적 닻
닻은 믿는 구석입니다.
사회가 믿는 구석이 변하긴 해도 신념자체가 없는 것은 요동치는 배와 같습니다.
사법부도 믿질 않습니다.
사법부의 판결에 공정성이 없다고, 유전무죄무전유죄가 아직도 여전하다고 여기니,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으니 이쯤 되면 정의는 없어진 것입니다.
정치인은 말은 어떤가요? 더 믿질 못하고 있습니다.
내로남불이고 뉴스역시 가짜뉴스 투성입니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세기 전 만하더라고 도덕군자의 말은 믿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 군자도 없고,
수십 년 전에는 선생님 말씀이나 성도의 말은 믿었는데 이젠 그렇지도 못합니다.
믿을 것이 없으니 힘을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 열심히 공부하나요? 왜 열심히 일하나요? 왜 열심히 사나요?
못나서가 되어버린 풍토이기에 자괴와 원망이 많습니다.
마치 열심히 아껴 쓰고 저축하면 몫 돈을 만들 수 있었는데 그 확신이 없으니,
갈 곳 없는 돈이 투자처를 찾아 방황하다 결국 유흥비에 탕진되는 이치입니다.
정치가 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철학은 빈곤으로 이상을 심어주지 못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회에서 무엇을 보나요? 지금 무엇을 생각하나요?
보거나 생각은커녕 현실은,, 찌듦만 있음을 실감합니다.
옛 부모들은 가난하면서도 자식공부만큼은 시켰습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였는데 자식에게서 비젼과 이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자식들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없어졌습니다.
성취된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신기루처럼 여겨져 닭 쫒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습니다.
취업은 안 되고, 경제는 최저이고, 희망은 부재이고, 신념은 실종되고, 또 일하기도 싫고,
소속된 직장 없이 쉬다가 마음 내킬 때만 일하는 노마드노동자가 증가한 것이 우연일까요?
그래서 그런지 알바도 직업으로 인정해 달라는 외침도 나왔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는 노마드노동자의 성지가 되어 약 1000만이 살고
IT 나 스타트업 창업자와 프리랜서가 많은 것을 볼 때 세계가 그런 가 봅니다.
2) 교회의 닻
무엇보다 교회에는 닻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교회의 닻은 누구인가요? 무엇인가요? 표어나 구호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흔히 교회의 닻은 예수그리스도이며, 성경이고, 믿음이고,
성령이라면서 다른 무엇을 의지하며 붙드는 교회가 참 많습니다.
한 예로 듭시다.
우리 신앙이 교회 안에서의 신앙인가요?
교회 밖에서의 신앙인가요? 교회 밖에서의 하나님나라를 구현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달라 안이 됩니다.
교회 안은 자기중심적이고 종교적이고 의전적이라면 교회 밖은 타인중심이고 생활중심입니다.
그 이유를 아시나요?
내 눈으로 보고 느낌으로 결정을 해서인데 자기 중심입니다.
주의 뜻이나 말씀이나 성령이 주시는 감동을 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주의 뜻이나 말씀이나 성령의 감동은 불편할 뿐입니다.
내 본성과 세상이치와 대치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밖이어야 합니다.
한 개그우먼은 자기 집에서 14년 동안 일하던 분이 나가면서
“ 당신 때문에 하나님 안 믿고 교회 안 다녔다” 고 하더랍니다.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
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신 하나님과 말씀을 믿을 때 진정한 닻이 되어 내 영혼은 튼튼하고, 소망이 완전하고,
그러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도 소망의 항구가 됩니다.
여기에 사회적 신임은 물론 마침내 사회적 닻의 역할도 하게 됩니다.
사회구원과 개인구원의 차이가 글자차이가 아닙니다.
사회구원은 이룰 수 없습니다.
더욱이 사회구원을 이룬 후 개인의 구원을 이룬다? 가당치 않습니다.
정말 망상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이 모이면 가족의 구원, 또 가족의 구원이 모이면
사회의 구원이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이루리라”
성경만 들고 교회만 다니질 말고 분명히 “성경대로 믿으라”입니다.
그리하면 성경의 영향이 나타난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과 그 말씀에 확실성을 두었습니다.
히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
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이 믿음에 대한 버젼은 다른데 있질 않습니다.
킹 제임스, 영어, 개정개역, NIV, 현대어 버젼이 아니라 생활버젼이어야 합니다.
3) 영혼의 닻
믿는 성도들에게는 시대와 지역과 혈통을 초월해서 언제나 하나님과 말씀이 등불이고,
힘이고, 놀라운 소망이고 영혼의 닻입니다.
히6:17~18)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
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 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보증을 아시나요? 하나님스스로가 보증이 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보다 큰 자가 없으셨고,
둘째는 하나님스스로가 거짓말을 못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시나요? 이 두 가지의 확실성을 가지시나요? 믿을수록 영혼의 닻이 됩니다.
이 닻을 내리고 앞서가신 예수님을 부지런히 따라가야 합니다.
오래 참음으로서 후대의 기업이 되고 본받음이 되도록,,
히6: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
려는 것이니라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지 100년이 되었습니다.
이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은 누군가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독립을 염원했던 우리의 선배들이었고,
더 분명한 것은 기필코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민족적 신념과 확신 속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후로 미국 하와이에서, 중국 충칭만주상해에서, 서울에서, 일본 도쿄에서조차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은 들불처럼 일어났
고 마침내 일본의 패망도 있었기에 독립을 이룬 것입니다.
이런 독립의 소망은 민족의 닻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주독립국가가 된지 오래고 번영도 이루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소망할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혜입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지식 같지만 실상은 가장 요청되는 이 지식에서,,
점점 멀어지고 잊고 있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정착 못하는 배 표류하는 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믿음은 들불처럼 피어나야 합니다.
만세운동가들이 대한독립에 닻을 내린 것처럼,
믿음으로 영혼의 닻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그를 두렵고 또 사랑해야 합니다.
주의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합니다.
형편이나 기분이나 생각이 아닌 그 이상으로 궐기해야합니다.
우리 속의, 내 안의 하나님을 증명해야 합니다.
약속되고 기록되신 하나님을 표현해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님과 동일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성향은 튼튼하고 견고해서 세상과 질고를 이깁니다.
시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히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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