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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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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03-03 17:47 조회 41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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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일입니다.

국민일보를 보니 교계의 한 인사의 말이 실렸습니다.

“교회단체, 하나 되지 못하는 건 3.1운동의 정신의 통합정신을 놓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차라리 “십자가 복음의 신앙에서 3.1운동의 주된 가치인 자기희생과 애국애족을 다시 회복하자” 했다면 더 나을 뻔

했습니다.

3.1운동의 정신이 아무리 좋아도 교회가 붙잡아야 할 가치는 아니기에 칼럼을 써서 벗들과 공유했더니

선배목사는 나에게 아픔과 외침이 있다 했습니다.

물론 이 아픔과 외침이 혹은 타인에 대한 비난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1) 마음의 경영

마음의 경영은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그 사람이 어떠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육신의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을 하고 영의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기에

내 마음을 경영하는 데는 내 인격이 새로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거듭나게 하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거듭남은, 죄인은 완전히 죽고 의인으로 다시 사는 새 탄생입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제 버릇은 죽을 때까지 이루고 그 인격은 달라지질 않습니다.

사망의 법이 지배해서입니다.

그러나 거듭남은 새 성향을 이루어 날마다 변화하곤 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처럼 이루는 것입니다.

종교와 도덕은 사람의 내면을 바꿀 수 없습니다.

바꿀 필요를 깨닫게까지는 할 수 있어도 변화시키는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3.1운동 정신을 본 받자”던 교계의 인사가 비롯 유명 목사라도 종교와 도덕의 군자는 될지언정 어쩌면

복음의 종은 아닐 수 있습니다.

마음의 경영이 시대가치와 정신으로 충만했기 때문인데 이런 일은 참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심겨졌으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만사를 보거나 대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아파하셨던 데를 아파하고, 예수님이 슬퍼하셨던 데를 슬퍼하고,

분노하셨던 데에서 분노하게 됩니다.

마치 일란성쌍둥이가 같이 느끼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사랑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게 주님과의 진정한 동행이고 세상에서 누리는 천국입니다.

 

또 주님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 뜻에 부합하여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워집니다.

잠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5만 번 이상의 기도응답을 받은 죠지뮬러의 비결이 여기에 있고,

하늘 문을 열고 닫은 엘리야의 기도 힘도 여기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인데 우리의 기도처럼“주시옵소서”해서 응답 받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경영부터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가능했으리라 믿습니다.

 

2) 심령의 상태

최근 북한과 미국이 하노이회담을 했습니다.

북한이 주체사상과 핵을 가졌어도 사는 길이 막혔기에 먼저 손을 내민 결과였습니다.

국가는 무력으로만 유지되질 않습니다.

경제가 윤택하면 체제는 유지되는데 북한은 그 반대 길을 걸었던 탓으로,

살지 못한 체 체제유지를 하려니 공포정치가 되고 불행해 진 것입니다.

북한의 정의는 체제유지였습니다.

이처럼 정의에 대한 정의는 국가마다 다른데 후진국은 평등이고, 중진국은 자유이며,

선진국은 질서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다 자기 나름의 정의가 있습니다.

누구는 돈 버는 것, 누구는 잘 믿는 것, 누구는 아프지 않는 것 등,

 

그러나 국가나 개인의 정의가 하나님 의에 미치지 못하기에 경영의 심지가 될 수 없습니다.

잠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도둑질 안 했어도 탐심은 하나님께 죄가 되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시대나 체제나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께 눈높이를 맞추고 의식합니다.

밤낮의 구별이 없고 인적이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적으론 순간마다 죄인이고 믿음으로는 순간마다 의인임을 압니다.

누가 두려운가요? 하나님, 누가 고마운가요? 예수그리스도,

이쯤 되니 겉을 치장하기 보다는 심령을 단장하여 마침내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고 이런 능력으로

세상에서의 등대이고 마중물이고 샘물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속량하시고 교회를 세우신 큰 이유입니다.

이 경건의 능력이 확장되고 확산되는데 성령은 여기에 보증이시고 능력이 되십니다.

 

그런데 교계인사들은 엉뚱한 말과 일들을 하고, 성도는 연약하고, 교회들은 무능해졌습니다.

그 이유가 정체성을 잃고 생명력을 잃었다면,, 그 회복은 무엇인가요?

마른 뼈에 임하셨던 하나님의 생기가 답일 뿐, 인간의 정신이 좋아도 될 수 없습니다.

부흥과 새 힘은 하나님의 주관이기 때문입니다.

“What to do” 하려면 먼저 “What to be” 가 우선입니다.

 

보십시오. 봄기운은 하늘에서 불어 왔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부흥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리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현실을 아픈 마음으로 아뢰고,

부흥을 울며 두 손 들고 기도 하며 사모하는 일뿐입니다.

 

3) 여호와께 맡기라

마음의 경영이 무엇이냐 따라 죽고 살듯이 세상에서는 교회가 생명입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도 많고, 목사도 많고, 성도의 학력도 높아졌는데 왜 교회는 무력하고 세상은 사납고 어두워졌는가?

엘리사처럼 갑절의 영감을 받지 못한 체 재미를 찾을 뿐 거룩을 찾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을 경험한 지식이 절대적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온 몸으로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이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말입니다.

마음의 경영에 대한 비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 합니다.

나의 행사를 맡겼다 면서도 내 방식으로 추구합니다.

콩나물 키우는 데는 물 많이 주고 음지에서 기온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비옥한 밭이라도 땅에서 키우면 어찌되나요?

 

배우는 배역 따라서, 가수는 노래 따라서 운명이 된답니다.

어느 가수는 생애 1집 음반을 찾으러 가는 기쁜 날 레코드회사가 부도난 것을 알았답니다.

그곳에 실린 노래가 인기를 얻을 수 없는 노래인 것을 망한 나중에서야 알았답니다.

부정적인 가사가 전체였답니다.

그 후 2집은 다른 사상으로 가사를 만들었는데 그때부터 과연 운명이 달라져서 1000만장을 넘게 팔리는 탑 가수가

되었답니다.

마음의 경영이 부정적인 것이냐 긍정적인 것이냐가 사활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나 한 사람, 성도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토요일에 고속버스로 대구 가는 사람들이 도착해서 보니 광주랍니다.

난리가 났는데 알고 보니 기사가 변소를 다녀온 후 버스를 잘 못 탄 것 랍니다.

아담 한 사람이 죄인 되었기에 모든 사람이 죄인 되어 사망에 이르렀고

또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순종했기에 모든 사람이 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는 방탄소년을 키운 제작자가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졸업연설을 했는데 그 메시지는

단 하나였는데 자신의 분노가 이런 성과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한류가 세계적 문화로써 자리매김하지 못한 분노가 마음의 경영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마음의 경영을 성도는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여호와께 맡기라” 는 믿음의 권면이고 경험자의 훈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시의 하나님 말씀입니다.

한 장로님이 성지 순례를 다녀와서 갈릴리바다에서의 느낀 소감을 말씀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단회적 사건이지만 그 하나님은 여전하시기에 오병이어 같은 기적은

여전히 있을 수 있는데 성도들의 믿음이 하나님을 제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신앙은 절대적이고 무제한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자기 안에 죄를 보고도, 또 교계와 교회를 보고도,

사회악을 보고도 걱정이나 탄식을 너머 거룩한 아픔과 분노도 있어야 합니다.

 

결론) 마음의 경영은 다릅니다.

세례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리라”하였고, 사도바울은 예수님이었고,

다윗은 시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 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

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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