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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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본격적인 공생애를 사시기 전 광야 삶을 사셨습니다.
이 삶을 사셨던 비결은 성령 충만 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광야 삶을 살았다면 어떨까요?
처음 몇 날은 호기심으로, 그 다음 몇 날은 캠핑장기분으로, 그리고 몇 날은 오기로,
그리고 몇 날은 짜증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1) 광야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빈들을 말하며 도시와는 정반대적 개념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곳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이 많아졌는데
이는 도시가 삭막하다 못해 살벌해서입니다.
현대생활과 도시, 의미적으론 광야로 일컬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공황장애와 불면증이 증가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살기가 보통 어려운 나머지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요?
물가가 비싸고, 인심이 사납고, 교통은 복잡하고,
무엇보다도 일자리가 없으니 이런 광야가 없습니다.
“올 국가공무원9급 공채 경쟁률 39대1” 지난 목요일 기사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산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 살 수 있고,
서울에서 산다면 세계 대도시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있는 능력자가 됩니다.
주님이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신 후 공생애를 성공하신 이치와 같습니다.
이런 광야는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첫째는 매우 곤란하다. 자칫 “고생스럽다”입니다.
광야의 삶은 스스로의 삶이기에 본인이 움직여야 합니다.
원시적인 삶을 연상하면 쉽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다 자급자족해야 하니 몸이 고생하고 그래서 건강이 밑천입니다.
둘째는 매우 열렸다. 특히 하늘의 별빛이 찬란하다 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도 실상은 모든 것이 다 있는 곳입니다.
내 할 만큼의 탓도 되고 덕도 됩니다.
전역한 군종병과 통화가 되었습니다.
밝은 음성이었습니다.
요즘 “무엇 하냐?” 했더니 학원알바 한답니다.
그래서 “참 이상하다 왜 군대에서는 학원알바보다 더 큰일을 하면서도 신나지 않았을까?”
했더니 자기도 그게 이상하답니다.
그러면서 자율과 보상인 듯하다 했습니다.
맞습니다.
이것이 광야의 특성이기에 내 할 바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2) 마귀의 유혹
이 광야에는 마귀의 유혹이 시시각각으로 찾아옵니다.
문제는 마귀는 마귀라며 나타나질 않고 또 그 유혹도 유혹이라고 하질 않습니다.
그러나 존재하며 수시로 옵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마칠 때 쯤,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셔야 하는데 사랑하시는 제자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의 죽음을 만류했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 베드로를 향해서 뭐라고 하셨나요?
“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죽음을 만류하면 인류를 위한 대속이 어떻게 되나요?
마귀는 베드로를 통해서 이렇게 방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 모양으로 옵니다.
그는 변장의 명수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의 유혹은 먹고 사는 떡의 문제를 가장 앞세웁니다.
눅4: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사람들에게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큰가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합니다.
더 좋은 것으로 잘 먹자고,, 먹을 것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부추 킵니다.
문제는 먹는 것이 목적이 될 때 그 덫에 걸리는 것입니다.
덜 먹더라도, 좀 못한 것 먹더라도 사람의 본위를 잃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비결은 자족이었습니다.
빌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
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렇지 못하고 먹기를 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하셨습니다.
눅12:19~20)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
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
느냐 하셨으니
그리고 권위로 유혹합니다.
눅4: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
노라
높아지려는 것, 출세하려는 것, 멋진 일, 성공이라고 유혹합니다.
천하통일이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하게하고,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 가문을 빛내고 등,
그러나 진리가 무엇이냐? 선이 어떤 것이냐? 내 영혼은 어떤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방송사 사장님을 저녁에 만났는데 첫마디가 “하루를 더 살았으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어야 할 텐데,,”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시험하게 합니다.
눅4: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셨고
하나님음 물론 왜곡된 지식과 믿음, 구원, 기도 등을 자기 중심화 시켜서
우리 하나님을 내 하나님만으로, 믿음을 신념화, 구원은 신비적 체험, 기도는 주문이나 부적 화, 교회도 공교회가 아닌 내
교회로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도록 합니다.
이 3가지가 육신의 정욕이요.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신문뉴스에서 떠드는 사건들이 여기에 다 해당됩니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하다가, 출세한다고 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위한다고 하다가,,
남 망하고 자기 망하고 교회도 파탄에 이르게 하고 등,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또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눅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광야가광야가 되는 가장 큰 이유이고 사람이 사는 날 동안 계속 흔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복된 시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이나 유혹을 없이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자주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3) 성령 충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이런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임에도 성령 충만하셨기에 지혜로 이 모든 마귀와 유혹을 분별하셨고 능력으로 이기셨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이런 본을 따라야 합니다.
이 본이 광야세상을 이기는 비결이며 광야를 통과하는 나침반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저마다의 비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탁월한 것은 성경적인 비법이고 주님이 앞서 행하신 그 비법입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기독신앙이고 승리의 길입니다.
성령 충만이 무엇인가요? 능력의 은사를 이루는 삶일까요?
들숨과 날숨에 기도로 주를 의지하는, 항상 기도하여 주를 인정하는 생활입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 설득이기 보다는 나를 부정하고 주를 높이는 모습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온유하고 겸손하며 화평도 하게 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분노도 발휘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면 그 어느 때 보다 강하고 담대합니다.
아가서는 이러한 성도를 준마에 비교했습니다.
아1:9)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평소에는 닭이나 개에게 놀라고 도망치다가도 고삐를 잡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절벽도 뛰어넘고 함성과 폭탄이 터지는
전장을 향해서도 달리기 때문입니다.
이모습이 성령 충만은 성도의 기본적인 덕입니다.
결론)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죄에서 죽고 의에서 사는 40일만 위하는 성령 충만이 아니라 40년 같은 광야 살이를 위해서 성령 충만을 이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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