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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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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03-24 15:40 조회 42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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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 있던 세월호추모관이 최근 철수되었습니다.

그 철수식에는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각오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잊지 않으려고 기념관을 짓고, 기념비를 세우고, 기념일, 기념품, 기념사진도 찍고, 성도들은 기념교회도 세웁니

다.

 

1) 기념교회

모 장로님이 부인 권사님을 여의었습니다.

부인 권사님은 암으로 별세하셨지만 제 3자 입장에서 본다면 병원만 잘 선택했어도 능히 살릴 수 있었던 만큼 애석한 경우

였습니다.

통화 중에 극동방송사에 고인의 명의로 헌금을 드리면 어떨까 타진했더니,,

현금이 당장은 없다며 집이 정리되면 네팔에 고인의 기념교회를 세울 계획이랍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기념교회도 세웠답니다.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성지달력을 보면 야고보순교기념교회, 베드로 기념교회, 예수수태기념교회 등,

기념교회가 많았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아무개목사 감독기념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기념교회라도 다릅니다.

주님과 주님에 관련된 기념은 후대의 신앙유익을 위해서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적이고 복음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를 기념하는 교회는 어떨까요?

교회가 사람을 기념하는 일은 자칫 우상이 되어 옳지 않게 여겨집니다.

교회나 성도가 기념할 대상은 “너희는 나를 기념하라” 하심처럼 주님과

주의 대속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되레 기념교회라기 보다는 감사교회라면 더 나을성싶습니다.

주님도 “나를 기념하라” 하시기 전에 떡을 떼며 감사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개목사 감독취임감사교회, 아무개권사 천국입성감사교회 등 어떤가요?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감사는 당연할지언정 기념할 일은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망각의 존재이기에 잘 잊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한 말은 역설적으로 “잘 잊는 존재입니다.”라는 정체확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잊어야 삽니다.

속담에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하여 잊을 것은 기억하고,

기억할 것은 잊는 모순을 지적했지만 결국은 어떤가요?

돌에 새긴 원수도 잊곤 합니다.

잊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래야 새 역사든 반복된 역사든 또 역사를 구현할 수가 있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만 한다면 어떨까요? 사랑하는 이를 기억한다면 어떨까요?

우울증에 걸리고 미워하는 사람을 잊지 못한다면 증오심만 타오를 것입니다.

잊는 것,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이런 한계와 부족을 아셨기에 주님은 “너희는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것입니다.

기념은 적극적인 기억을 의미합니다.

 

2) 나를 기념하라

“너희” 가 누구인가요?

당대의 제자들이고, 복음을 듣고 믿는 후대의 모든 성도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주님은 잊혀 질 것을 아셨기에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증표까지 주셔서 기억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기념하라” 가 아닙니다.

만약 이렇게 되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까요?

눅22: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이런 불상사가 생기기 쉽상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지금 심각하시고 진중하십니다.

고난과 죽음을 맞이하시는데 제자들은 “누가 크냐”의 위계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유언하시면서 자식들에게 “사랑한다, 나를 기억해 주겠니?”하시는데 자식들은 유산에만 관심이 있어 다투는 일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식들이 자신들만 생각해서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생각하여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한다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반대로 자

신들을 생각한 신앙이 되고 보니 자기들을 기념하는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교지에다 선교를 위해서 교회당을 세운다? 훌륭한 일일입니다.

그러나 특정인을 기념해서 세운다면 개인의 기념관이 될 소지가 많은 만큼

주께서 머리가 되시는 교회는 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합당한 일 같아도 비복음의 일이 됩니다.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기념교회가 아니라면 헌금내서 그곳에 교회당을 세울까요?

그러나 진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라면 이름은 빠져도 교회당은 세워야 맞습니다.

 

성도의 진짜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믿고 예수님이 증거 되는 곳에는 이름이 없어야 참 성도답고 참 신앙

답습니다.

고인의 이름은 사람에게서는 잊혀지고 하나님은 천국에서 기억하시고 불러주실 것으로 믿고 살 때가 더 아름답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셨습니다.

가슴에는 흉배보석으로 품으셨고 어깨에는 견장처럼 다셨습니다.

잊지 않으시는 주님의 보장인 것입니다.

보석은 어떤가요? 애지중지 합니다.

성도는 주님의 보물이기에 빼앗기지도 않고 잊지도 않으십니다.

히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

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

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사는 날 동안 주님만 기념하면 됩니다.

누가 나를 기념해줄 것인가?

주님의 교회를 세운다면서 누구를 기념할 것인가는 삼가야 됩니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서 조차 주님도 기념 못하고 점차로 잊고 합니다.

신앙의 치매를 고쳐야 합니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내가 기념하고 싶은 것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서 주님을 기념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생전의 주님의 발을 향유로 씻기므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한 것이고, 높인 것이고, 영광되게 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그녀를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3) 성찬식

주님이 세우신 기념예식은 성찬식이었습니다.

약소하게 나누셨던 떡과 포도주의 의미로 십자가죽음의 가치를 두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이 기념예식에 주님은 제외하고 오직 먹고 마시는 일에 치중했었습니다.

현대교회는 어떤가요? 자칫하면 포도주가 어떤 맛이냐? 주전자는 어떠냐?

떡은 크냐 작으냐? 떼어주느냐 떼어먹느냐?

예식보다는 그 가치를 되새겨여야 합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고전11:26~27)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 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 까지 전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 이

니라

 

지난 목사후보 심화교육 때 이 성례식에 대해서 강의했었는데,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지 못하도록 집례자가 먼저 믿음에 있을 것을 주문했었습니다.

 

주님을 기념하는 일, 단순한 기억이상으로 마음에 두는 일입니다.,

성찬식이 당연이고 그 진가는 “그가 오실 때 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를 유념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부끄러워한다면 어떨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식을 위해서는 부끄러운 일도 마다하곤 하며 먹고사는 일에는 얼굴이 두껍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에는 왜 부끄러워하나요? 진솔히 묻고 반성해야 합니다.

 

결론) 주님을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몸에 주의 흔적이 있노라 했습니다.

창 자국 못 자국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기념으로 죽기에 이르도록 복음전파에 힘썼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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