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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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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05-05 15:43 조회 59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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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세상기류로 가정들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저출산으로 직계만 있고 방계는 없어지고 동성애로 후손도 그치게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가족개념도 혈족이 아닌 사는 구성원으로 되고 있습니다.

 

1) 가정의 근본

가정의 근본이 무엇인가요?

집도 재물도 아닌 혈육인데 관계로만 이어지면 문제시 회복이 불가능해집니다.

이런 불안의 시작은 어디서 왔나요?

결혼은 깰 수 없고 깨질 수 없는 하나님과의 절대적 언약인데 비해,

깨질 수 있고 여차하면 보상하면 된다는 편의상 계약으로,

더 나아가 좋으면 살고 싫으면 헤어지는 잠깐만남으로 전락한데서 비롯됩니다.

인간 중심의 철학이 이처럼 편의와 당위성으로 만든 결과입니다.

 

그러나 살펴보십시오.

일과 가족, 돈과 가족, 명예와 가족 등,

아무리 좋은 관계라 해도 무엇이든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이탈리아 총리후보자는 최근 부인이 집을 나갔었습니다.

남편이 정치하면 가정은 실종된다는 이유였는데 우리나라도 장관을 세우기가 어렵답니다.

청문회 때 가정이 다 까발려지므로 장관 후보자들은 차관을 선호 한다니

가정보호 차원입니다.

아무리 “소유냐 존재냐” 해도 존재가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가정들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1등으로 맺은 가정들은,, 다릅니다.

임마누엘 가정으로, 구주를 섬기는 가족이 있을 때,

일, 돈, 명예 등의 소유가 없어도 살만하고 살아갑니다.

 

지혜로운 부모가 누구인가요? 많은 유산이 아니고 교육도 아닙니다.

신앙의 대물림을 이뤄준 부모입니다.

지혜로운 자식이 누구인가요?

미남미녀도 아니고 장학생으로 공부한 자식이 아닌 부모신앙을 계승해서 능가하는 자식입니다.

지혜로운 것과 능력 있는 것과는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며칠 전 메이져 신문사 간부와 얘기를 했습니다.

간부는 평기자로 시작해서 신문사에서 늙은 친구입니다.

“요즘 기자들은 선배들이 지도와 간섭하기가 어려워요, 우리들은 그렇게 배웠는데요,

선배들의 간섭이 없으면 좌파로 가는 경향이 생겨요“

격세지감의 볼멘소리지만 미래는 더 진보된 세상이기에 믿음역시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주님도 그러셨지요? “내가 말세에 너희에게서 믿음을 보겠느냐” 예언인데 과연 맞아갑니다.

믿음 없는 시대를 맞이하면 할수록 가정의 해체는 더 심각하고,

사회는 불법과 불의가 관영하여 더 사나워지고 고통을 많이 받게 된 것을 성경이 경고한 만큼

미래를 위해서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2) 한나

엘가나의 부인은 둘이었는데 이러 인한 갈등이 있었고 무자식이었던 한나는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여자의 일생”을 부르기 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야곱의 부인인 라헬이 무자식으로 야곱을 원망했던 일에 비하면 얼마나 다른지요?

한나는 남편에게 문제가 생겼으면 기도했을 것이고 자식을 위해서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잠언서는 이런 여인을 현숙한 여인이라 했습니다.

모세도 이런 어머니 품안에서 자랐기에 믿음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돈과 공부에 환장한 엄마들과는 외모는 비슷해도 본성이 다릅니다.

교양이란 명품을 좋아하고, 본인이 교육받았기에 뭐든 가르치고,

지적질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이 진정한 교양입니다.

잠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청년들은 이런 여인을 사모하며 만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옛 교우 중에 근육이 서서히 풀려가는 병을 앓는,, 형편도 나쁜 청년이 있었습니다.

목사가 되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불량해서 포기하던 참이었습니다.

이 청년에게 어느 날 한 여성이 시골에서 다가와 그와 결혼해 주었습니다.

연애나 중매가 아닌 소문을 듣고 시집와주었는데 시어머니도 모시고 잘 살아주었습니다.

모두가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라 했는데 그랬습니다.

부지런하고 친절하고 신앙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남의 아이를 봐주는 업을 하며 자신의 애는 낳지 않았는데,

자기의 아이에게 아빠의 유전병을 대물리기 싫어서였답니다.

 

한나는 아기를 달라고 기도했고, 낳은 후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다며 기도했고,

마침내 드렸는데 그때의 기도가 그 믿음을 웅변합니다.

삼상1:2) ~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복중에서 품었고 옹아리 했던 아이를, 젖떼기가 무섭게 하나님께 드리면서 이처럼 즐거워할까?

흐느껴도 못마땅한 마당에,,?

좋은 것일수록 내가 품고자 하는 심성과, 주변과 나누려는 심성과,

하나님께 드리는 심성의 차이일 것입니다.

예쁜 꽃 꺾어서 자기 방에 놓는 사람에 비하면, 그 꽃을 보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한나는 범사에 하나님을 우선 생각한 여성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여성의 주변인들은 혹 힘들어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여기에 비하면 남편 엘가나는 덤덤한 인물이었습니다.

괴롭고 슬픈 한나에게 선물은 주었어도 그녀를 위해서 기도할 줄 몰랐습니다.

삼상1:1) 한나에게는 갑절로 주니

또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의논했을 때도, 또 드린 후에도 덤덤했었습니다.

그는 이미 앞선 자식들이 있어서 일 듯 합니다.

같은 집에 살아도 부부의 입장차이가 이렇게 다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아이들 보다 어른들이 그리고 부인보다는 남편이 인도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전도하기 어렵지만 남편은 쉽습니다.

신주가 가장이기 때문입니다.

 

3) 사무엘 선지자

엘가나와 한나에게서 난 사무엘선지자는 아주 역대급 훌륭한 선지자였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위대한 스승의 지도와 하나님의 은혜가 이런 인물을 만들어 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 사무엘선지자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자식 교육이었습니다.

아론제사장도, 엘리제사장도, 사무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식농사는 마음대로 안 된다 했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어 보입니다.

나실인이 된 사무엘은 젖 뗀 후 제사장에게 보내졌고 매년 한 번만이 부모를 만나야 했었습니다.

삼2:18~19)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

더라

 

부모가 어린 사무엘을 보았을 때 어땠을까요?

아버지 엘가나가 보는 마음과 엄마인 한나는 달랐을 것이고,

또 어린 사무엘은 부모와 아주 달랐을 것입니다.

어땠을까요? 부모를 만났을 때는,,헤어졌을 때는,, 그리고 그 후에는,

 

그렇다면 어린 사무엘은 작은 세마포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기는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엄마아빠의 사랑을 먹었어

야 했는데 그 품과 그 사랑이 결여 된 것은 아닐까요?

결국 이 탓에 훌륭한 선지자는 되었으나 좋은 아버지는 못된 것은 아닐까요?

 

자식들은 누가 망치나요? 가까운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의 한을 자식에게서 풀려고 하고, 어른들의 신앙을 자식이 감당하도록 합니다.

자식을 엄하게 키운다고요?

싫다는 조기유학을 보내놓고는 “다 너 잘되라고 한다?”

놀지 못하게 사육하면서 “너를 위해서다”

우리 주변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사무엘에 대해서는 한나가 그랬고 엘가나가 동조했었습니다.

 

집사님네가 큰 아들을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시켰습니다.

아버지가 데리고 가서 아무도 없는 그 땅에 놓고 왔던 일을 전설처럼 얘기하고 했는데,

그 아들아이가 수년이 지나도 영어도 모르고 어느 날 연락이 두절되어 찾았더니 kkk단에

납치된 것을 미국의 선배목사님이 건져주었습니다.

조기유학이 좋아도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목사들이 목회에 신경 쓰느냐고 자녀교육을 등한시 했다면 잘못입니다.

아론제사장과 엘리제사장도 이런 경우 일 것입니다.

 

어른들은 스스로 자문해야 합니다.

신앙인가? 교육인가? 신앙이 결여된다면 선진교육도 의미 없습니다.

하나님인가? 자식인가?

하나님을 먼저 위한다면서 자식이 망치는 일은 하나님 뜻에 역행합니다.

자식을 노엽게 하면 언젠가는 복수극이 생깁니다.

자식을 아프게 하면 그 상처는 어떻게 합니까?

자식은 억지로 끌고 가기 보다는 후원해야 하고 주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 애는 어른다워요” 천만에요,

또래에 맞게 키워야지 어른처럼 대하면 낭패를 겪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 잘못해서 파탄이 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순종이 아닌 자기 의를 심어 놓으면 문제가 나옵니다.

사무엘도 말년에 준비되지 않은 두 아들을 사사로 세우고자 했던 것이 그 이유입니다.

사사는 1년에 한 명인데 두 명을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명시하진 않았기에 노욕일 수 있습니다.

 

결론) 본문에서 한나의 기도만 보지 마십시오.

저변을 보시고 후대도 보십시오.

여인의 한이 믿음으로 대를 이어 갔지만 무리하니 결국 후대가 망가지기도 했습니다.

신앙의 시작은 가정부터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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