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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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되었다는 것은 인구비례로 따지면 슈퍼로또가 맞은 확률 보다 더합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인륜 같아도 천륜입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어떨까요? 부부합산의 금목걸이고 하나님의 상급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부가 사는데 가장 큰 힘은 사랑인가요? 신뢰인가요? 정인가요?
1) 신뢰
다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신뢰가 없으면 사랑은 잠깐 취하는 위스키가 됩니다.
깬 후에는 정신을 차리기 때문입니다.
정은 어떤가요? 신뢰가 없으면 사랑도 애증이 되고 정도 후회막급만 됩니다.
망가진 부부들의 공통된 점은 신뢰가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모든 인간관계가 똑같기에 애당초 신뢰에 금가지 않도록 잘 지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밥알 보다 작은 돌 하나로 파경에 이른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책망을 받아 불편해진 새신랑이 퇴근 후 밥숟갈을 뜨다가 그만 돌을 씹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둔 거야, 밥도 제대로 못해!”
인내심 없는 신부가 발끈했습니다.
“남자가 그깟 일로 화를 내요?”
신랑이 이제는 고함을 쳤습니다.
“잘못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웬 말대꾸야!”
입을 삐죽이며 신부가 또 말을 받았습니다.
“남자가 쫀쫀하기는,,”
아내의 말에 신랑은 홧김에 신부의 뺨을 때렸습니다.
이제는 신부가 화를 삭이지 못해 보따리를 쌌습니다.
“우린 완전히 실패한 결혼이야,, 맞고는 못살아”
지금의 시대는 가치관의 변화로 이혼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고, 여성지위도 올라가 이혼이 증가했고, 주변사람들도 참으면
서 살기보다는 헤어진 후 새롭게 살 것을 권하곤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작용해서입니다.
첫째, 사람은 안 바뀌더라 입니다.
그러므로 고쳐서 살기 보다는 새판 짜는 것이 낫다 하는데, 맞습니다, 안 바뀝니다.
둘째, 신중하지 못한 탓입니다.
생선을 사면서도 아가미를 살피고 눈알도 보고 과일 하나를 사도 신중합니다.
하물며 평생의 반려자에 대해선 어떤가요? 신중하지 못하고 끌리는 대로 결정하고자 합니다.
끌렸던 그것은 그가 변화든 내가 변하는 요소입니다.
외모에 끌렸는데 늙거나 싫증납니다.
쿨한 성격에 반했는데 나중에는 실속이 없고 순진해서 좋았는데 답답하답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신중해야겠기에 기도해야 하고 결혼예비훈련을 이루는 것이 좋습니다.
2) 주님과 교회
성경은 부부의 신비를 주님과 교회에 맞추었습니다.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사랑함 같이 남편들이 아내의 머리가 되어 사랑할 것을,
또 교회가 주님께 대하여 순결한 신앙을 지키듯이 아내가 남편들에게 그러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누가 우선이 아닙니다.
피차의 신뢰이며 사랑입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머리가 되고 아내들을 주께 복종하듯,,강요하면 문제가 됩니다.
아내들은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기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남편의 사랑을 강요하
면 문제가 됩니다.
평안하려면 권리보다는 의무를 앞세워야 하고 남을 나 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이 미덕입니다.
엡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중하라
부부토크 프로에서 무려 18세 어린 신랑하고 결혼해서 사는 여배우가 있습니다.
그녀가 사랑 받는 팁을 소개했습니다.
모임에 나가면 신랑친구들은 어리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존댓말을 쓰고 옷을 받아 걸어 주고 하니 집에 와서 신랑이 왕비대우를 해준답니다.
간단한 이치인데 많은 부부들이 이 모습을 바라기만할 뿐 실전에서는 무시합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은 어디서나 진리입니다.
상대적인 것이기에 그 시작은 내가 해야 합니다.
탁구에서 처음 써브를 잘 주어야 그 다음 공이 잘 오겠지요?
부부간에는 공격이 필요 없고 실험도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이든 내 삶이고 내 판단이고 내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잘못하니 행복을 바라지만 부부는 물론 온 가족과 3대의 불행이 됩니다.
인류역사에서 악처들이 있는데 그중 욥의 부인도 있습니다.
욥이 큰 곤경가운데 처했다면 같은 곤경일 텐데,
그녀는 자기 남편을 향해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 부인과 끝까지 살았습니다.
반면 무책임한 남편은 아브라함입니다.
자기 아내를 왕에게 진상 했는데,,이 훌륭한 아내도 역시 아브람과 끝까지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혼하면 위자료가 있을듯해서요? 주변인들에게 창피해서요? 아님 자식들을 생각해서요?
당시의 문화적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신뢰가 있어서입니다.
상대에 대한 신뢰 보다는 하나님께 신뢰를 가졌기에 살았다고 믿습니다.
마19: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그래서 참고 살았더니 욥이 다시 회복되었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 사라는 열국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하나님 짝지워 주셨다는 이 믿음위에 세워야 안전하고 튼튼합니다.
행복한 결혼의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고 이 믿음 속에서 서로를 격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고 그럼에도 당신을 사랑합니다.”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것입니다.
불행한 결혼은 어떨까요? 물질 안에서 남과 비교하며 서로 공격하고 무시하는 일입니다.
현대인들이 행복한 결혼비결을 보이고 만지는 데에 찾는 것은 유감입니다.
믿는 부모들이 먼저 회개해야 할 일로써 옳은 결혼관을 보이거나 세워주지 못한 이유입니다.
결혼은 남자여자가 만나 사는 이상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과 교회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엡5:32) 이 비밀이 크도다
3) 자녀들
부부 합산은 재물만이 아닙니다.
자녀가 있습니다.
외모나 성향만 닮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닮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고 말을 배웁니다.
부모가 사투리를 쓰면 사투리를, 표준어를 쓰면 표준어를 배웁니다.
사춘기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보면서 거짓과 진실을 배웁니다.
청년들은 부모가 살았던 모습을 보고 결혼을 생각합니다.
천국 부모를 둔 자녀들은 부모 같은 대상을 찾고, 지옥 부모를 둔 자식들이 기피합니다.
“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면 변병에 불과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보인 것입니다.
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뒷담을 얼마나 잘하는지? 시침은 어떻게 떼는지? 주님을 어떻게 섬기는지?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입니다.
특히 자식은 부모의 훌륭한 것 보다는 나쁜 것을 기가 막히게 먼저 배웁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가정에 파송된 선교사임을 명심해서 부부 서로에게,
자녀에게 예수님과 천국을 보여야 합니다.
청년이 연애하던 여성을 엄마께 데리고 와서 결혼 승락을 받고자 했는데 엄마가 반대했습니다.
두 번째 여성을 또 데리고 왔지만 역시나 툇자 맞았습니다.
청년은 어떤 여성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엄마를 닳은, 엄마처럼 말도 하는, 엄마처럼 행동하는 여성을 데리고 왔습니다.
엄마는 환영하며 승낙했지만 이제는 아버지가 반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늘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이고 말씀이 진리인데 실천 속에서 어떻게 증명될까?
우리의 신앙은 자꾸만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들려 합니다.
사람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식들도 그렇습니다.
교회 다니는 일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일과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통해서 보고 닮아서입니다.
결론) 우리는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고백합니다.
또 교회의 머리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내 가정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역시 주님이십니다.
그 분의 뜻과 그분이 기뻐하실 일을 이룰 때 나도 행복주인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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