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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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목사와 아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야곱의 12지파에게서 불만 있을 지파가 있다면 어느 지파일 것 같으냐고,,
여러분은 어느 지파 같을까요?
제사와 회막 봉사를 맡은 레위지파라 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한가요?
1) 하나님의 주권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서는 물론 가축에게서도 하나님은 맏이를 택하셨습니다.
이는 저들의 행동이나 믿음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었습니다.
첫 것은 대표성을 띤 것이지만 레위는 실제적인 맏이인 루우벤을 대신한 셋째였습니다.
민3: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여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토기장이가 마음대로 토기를 짓는 이유와 같기 때문입니다.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사장이나 성전봉사자는 하나님에 의한 존귀한 직분자들이고 희생 피로써 거룩해 진 것입니다.
이들이 구할 것은 충성이며,
하나님은 저들의 기업이 되셨기에 타지파로 하여금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이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누구의 모형인가요?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히7:24~25)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시고 모든 제사의 브레인만큼 교회의 머리가 되셨으며 성도들을 레위지파로 부르셨으니 성
도들의 모형도 됩니다.
벧전2:9) ~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
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며칠 전 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짧은 생각을 옮겨보았는데 제목은 ‘하나님 사랑’이라 했습니다.
“누구의 말처럼, 찬찬히 보면 예쁜 것이 있지요, 들꽃이지요.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 있어요, 나를 위한 주의 대속이어요.“
히5: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2) 원망
그런데 그들이 왜 원망이 많을 지파가 됐다고 느껴졌을까요?
다른 지파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아 산업을 키울 수가 있었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란 대체로 뭐든 약하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당사자들은 감사감격으로 제사장과 성전봉사직을 감당했겠지만 후대는 어땠을까요?
당연지사였을 것이고, 아주 나중에는 원망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시대에는 제사장들이 삯꾼들이 되어 기도하는 성전이 강도굴혈이 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염불보다는 젯사밥에만 관심 있는 타락이라 합니다.
이 일을 우리가 반면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업되신 일은 큰 은혜의 일입니다.
불경기를 모르는 직종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중보자적 일을 맡아서입니다.
그러나 위험한 것 하나 있다면 자칫 성취와 보람을 잃을 수 있습니다.
또는 결핍이 없으니 어떨까요?
감사찬양이 입술로 되어 지극히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모습을 갖게 됩니다.
나태와 안일에 빠지고 섬기고 나누는 일에 무지하거나 인색하게 됩니다.
나는 여기서 우리 신앙모습을 보았습니다.
“목사 딸이 왜 시집가기가 어렵다는 말이 돌까요?” 가난해서 일까요?
아님 받는데 익숙한 환경에서 자란 탓일까요?
왜? 개인적으로 헌금 하고 섬기며 나누지 못할까요?
“고르반” 신앙이 된 탓입니다.
고르반이 뭔가요?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거룩하게 구별된 헌물인데,
나중에는 하나님께 드려지면 사람이 임의로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의 금지와 억제로 잘못사용 되어서 “고르반”하면 부모공
경도 면피 받던 위선적 신앙이어서 주님도 책망하셨습니다.
막7: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결핍을 모르는 혹은 두려워하는 신앙은, 위선적으로 흘러 여기에 빠지게 됩니다.
한국 기독신앙만큼 복 사모하는 신앙이 있을까요?
복은 이미 택배로 왔는데 그 택배물을 뜯는 것조차 마다하면서 복을 구하니 어리석습니다.
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폐쇄하고 가난한 국가는 어디인가요?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가요? 이상은 좋았습니다만 배급 주다 못주니 원망불평이 는 것입니다.
그동안 체제유지를 위해서 구호나 선전선동으로 가능했는데,
이제는 말발이 통하지 않으니 공포로 통치합니다.
여기 특징은 노력이나 경쟁이나 성과나 감사나 보람이 없습니다.
자연 섬기고 나눔이 없이 뇌물이나 갈취나 구걸만 일삼는데도 쪽박 차고 있습니다.
신앙도 그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더 복되도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기업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결핍을 두려워하거나 원망 불평하지 말고
믿음의 소망과 사랑의 수고를 인내 속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3)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가 칼럼에도 옮겼지만 목사인 제가 설교를 듣는 곳은 다양합니다.
그중 뭇 성도들의 간증은 진한 감동을 받곤 실천하고자 합니다.
장로집사님과 식사 중에 식당여주인과 말이 되었습니다.
일산출신이라면서 우리 교회를 궁금해 하며 얘기의 단락이 마치면 “이거 거짓말이 아니에요”을 연발하곤 했습니다.
그녀부부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한 후 노후자금을 다 잃었답니다.
그래서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음성까지 와서 식당을 하게 되었답니다.
식당은 처음인데 음식 맛 레시피와 간판이름 까지 하나님이 다 이런 저런 인연과 마음의 생각으로 알려주셨답니다.
그동안 10000원짜리 치킨이 먹고 싶어도 못 사먹고 마음을 달랬답니다.
그러면서 헌금은 빠지지 않고 했는데 특히 “범사감사” 헌금은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드려 주보에 이름을 꼭 올렸답니다.
남편이 나중에 알고는 “어떻게 그런 지경에 헌금을 했느냐” 며 칭찬과 감사를 했답니다.
올해도 세금을 많이 내게 생겼답니다.
그래서 그동안 헌금 낸 기부금확인서를 처음으로 받고 싶은데 교회에 누가 되는지 묻는 거였습니다.
그 귀한 간증을 아내에게 소개했고 그런 연유로 이런 설교가 된 것입니다.
우리 기독신앙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덕도 되고 탓도 됩니다.
그 식당에서 나오면서 2가지를 소개했었습니다.
방송사에 전파선교사로 가입하라 했더니 고맙다며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또 자기네는 목사님과 교우들이 많이 오신다기에,,
인천 어느 식당에는 목사나 교우들이 오면 식사 값의 십일조를 준비한 후 가실 때 기도부탁을 하더라 했더니 자기들도 그
렇게 하겠답니다.
아론의 지파들은 옷부터 다릅니다.
레위지파들은 허드렛일 같아도 중요한 아주 중요한 일들을 합니다.
겉보기에는 백정 같고 청소부 같고 짐꾼 같아도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결론) 주 섬기는 일이 언제나 그렇듯이 남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한 긍지보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전념으로 섬기는 거룩한 족속이고 왕같은 제사장들이고 소유된 나라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살리심을 믿고 곁눈 팔지 말고 누구와도 비교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이게 없으면 행위를 조사하십시오.
성막봉사자들인 레위지파들은 가나안에서는 성막중심의 초장을 받도록 준비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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