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여기서 그리고 지금 > 설교말씀

여기서 그리고 지금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06-02 13:56 조회 483회 댓글 0건

본문

기독신앙을 한마디로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그리고 지금”(here and now)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어땠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 는 의미 없고,

지금의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그 사람이고 행하는 일이 그 신앙인 줄 믿습니다.

 

1) 다윗

다윗을 보면 놀랍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목전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분으로 인지하고 산다는 것이,

평생을 그처럼 산다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가 실수하고 실패한 적은 언제인가요?

환난 중에는 긴장하며 하나님을 바라며 구원을 기도했었으나

안정되었을 때는 부하아내와 동침을 했었습니다.

이 교훈이 우리에게 거울이 됩니다.

고전10:12) 누구든지 선줄로 생각한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본문처럼 환난 중에는 차라리 좋습니다.

심신은 재위에 앉아도 영혼은 살기 때문입니다.

6절)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

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성도의 환난은 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주목하며 항상 깨어 기도하도록 훈련시키심인 줄 믿어야 합니다.

성도들조차도 환난에 대해서는 그 고난만 보고, 환난의 이유를 찾아 무슨 죄로 말미암는 벌로 여기는데 성경적이질 않습니

다.

“사람의 코는 변화가 심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됐으면 “그 사람만 코봐라,, 코에 복이 있다”고 하다가 그가 망하면 다른 말을 합니다.

“그 사람 코봐라,, 그 코에 무슨 복이 들겠니?” 해서 입니다.

 

주님께 제자들이 소경된 자를 보고 이는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했을 때

주님은 이유를 논하시기보다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려하심이라” 하셨습니다.

내가 환난을 당하거든 고난과 고통 앞에서 죄를 뉘우치면서 울며 자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환난당한 자를 비판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환난은 신앙유무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떠나서 모두에게 임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다윗처럼 온갖 환난을 자주당한 자도 드물 것입니다.

죄보다는 사울왕의 시기였는데 다윗은 이 환난을 통해서 강하고 담대한 큰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 중에 고난과 고통 속에서 좌절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장차 내게 주실 복을 소망하여야 합니

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보십시오.

1절부터 2절은 위기 중에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고백이었습니다.

3절)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환난 중의 신앙이었고 믿음이었는데 낙심하고 원망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의 모습을 보십시오.

30절)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31절)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앞선1, 3절의 신앙고백에 대한 성취요, 찬양인 것입니다.

 

2) 여기서 그리고 지금

내일에 찬양하기 원하나요? 여기서 믿음으로 살아야 하며,

훗날천국 입성을 원하나요? 지금 땅에서 많은 환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성도들이 과거적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때에는 “불 받았었다” 그때에는 “전도를 많이 했었다”

아님 미래만 향하고 있습니다.

“자식 키우고 나서 헌신 하겠다” 아님 “돈 번 다음에 선교 하겠다”

아닙니다, 지금 그래야 합니다.

과거에 머물렀다면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인데 어디서 잃었는지 찾아야 합니다.

또 미래를 위한 꿈꾸는 일은 좋습니다만 꿈만 꾼다면 어떨까요?

꿈꾸는 것은 공짜지만 현실에서 땀과 노력이 없다면 그저 원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꿈이 많은 사람은 꿈을 이룰 가능성이 희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군 선교팀장은 권사님인데 지금껏 “여기서 그리고 지금”이라서 존경스럽습니다.

처음 구원받은 후 “교회화장실청소라도 하겠다.” 며 서원기도하고 노방전도를 나갔답니다.

아파트 1동에서부터 100동을 집마다 방문하고, 그 다음날은 반대로 하고, 길거리 전도, 학원 전도 지금은 군 전도팀을 꾸

렸는데, 30년 넘게 이 사역만 하고 있습니다.

그의 간증을 보면 복음을 들었던 초기에 누군가의 전도 간증을 듣고는 “나도 저렇게 간증할 수 있다면,,”하는 소원을 품게

되었는데 지금은 그 보다 더 한 방송신문에 소개됩니다.

35~36절)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그리고 지금”은 아주 중요합니다.

22절)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라

미래는 지금으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였기에,

“그러므로”의 결과로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가 되었습니다.

심은 대로, 뿌린 대로, 믿음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혹 선을 행했지만 혹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하셨으니 꼭 거두며 악도 그럴 것입니다.

24~27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여기에 예외가 있습니다.

곤고한 자는 곤고함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주신다니,,하나님의 공의 덕입니다.

 

박조준목사님,,미국친구목사 얘기입니다.

미국목사가 토요일에 주일준비를 하는데 아주 강한 성령의 충격이 왔답니다.

“아무개에게 전도하라 좋지 않을 영향이 생긴다.”

놀라서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골프장에 갔더랍니다.

그 분주한 시간에 1시간 넘는 골프장을 찾아가서 친구를 만나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동안 예수 믿기를 거절했던 친구가 목

사친구의 간절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에서 전도를 받고 필드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답니다.

이제 목사님은 주차장으로, 친구는 스윙을 하려던 참에 이 친구가 어지럽다하더니 그냥 죽었답니다.

피차간의 “여기서 그리고 지금”의 아름다운 결실을 본 것입니다.

대다수는“여기서 그리고 지금”을 소홀히 합니다.

“여기서 그리고 지금” 노력하지 않고 잘되길 바라고,

“여기서 그리고 지금” 하나님목전에서 벗어난 삶을 살면서 나중에는 천국에는 가고자 한다며 무엇인가요?스스로를 속이

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늘 강조합니다만 하나님이 만나를 내려주셨지만 입안과 손에 쥐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병아리부리를 만드셨지만 스스로 알에서 깨어 나오도록 하셨지 누군가 대신 깨주도록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3) 나중에

마귀는 ‘나중’을 즐겨 사용합니다.

기도하라는 성령의 음성에 마귀는 “피곤한데 나중으로” 미루게 합니다.

쉬어라는 몸의 징조에 마귀는 “우선 돈 벌고 나중으로” 기약하게 합니다.

신령한 것일수록 좋은 것일수록 ‘나중’을 부추킵니다.

그런데 그 나중은 내 시간이 아니기에 결국은 없습니다.

흔히 “나중에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 고 합니다.

맞습니다.

신앙도 나중타령을 하면 기독신앙은 못되고 후회만 옵니다.

하나님은 화목한 길을 만드셨고 보여주셨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길로 나감은 내 믿음이어야지 남의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으로 하나님의 의를 계시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순종은 내 몫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주셨지만 그 권세를 누리는 일은 나인 것입니다.

27절)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이 모든 시작은 “여기서 그리고 지금”입니다.

 

결론) 주님은 나면서 앉은뱅이 된 환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하셨습니다.

그가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연못에 물이 동하는 기적이 일어났거나 예수님이 자기 앞에서 말씀하셨어도 상관없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기적도 부흥도 “여기서 그리고 지금” 나로써 시작되는 능력의 출발선이기에 성도는 언제나 이 시점에서 살아야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