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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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과 희망은 비슷해도 의미가 다릅니다.
사전에선 소망을 “어떤 일을 바람, 또는 그 바라는 것. 의지(will) 라고 했고,
희망은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 이랍니다.
차이가 무엇인가요? 희망이 다분히 이상적이라면 소망은,, 의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 ~ 이스라엘은 아직 소망이 있나니” 했으니,, 자신들의 할 바를 의미합니다.
1) 혼돈의 시대
본문의 이스라엘시대는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포로 된 후 고국으로 귀환했으나 기쁨과 설레임만 있을 뿐 무엇 하나 안정적이질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비 이스라엘족속들과 섞여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고 있었습니다.
스9: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부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합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들 부족들은 가나안 정복당시 애당초 제거되어야 할 대상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명령을 불순종했고 이제는 더불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시각에서는 영적 간음이고, 민족적으로는 순수혈통을 깨는 비 거룩한 일이며, 문화적으론 혼잡한 문화를 낳는 일입
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했고 거룩성을 지켰지만 국가를 늘리고 지키기 위해 주변국의 여성들을 정략적으로 맞이함으로써 나중에는
혼합된 신앙과 문화가 되어 망했던 것입니다.
지금 그런 일이 재현된 것입니다.
문제는 지도자들부터 썩은 것이 화근이 됩니다.
스9:1) ~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가정으로 말하면 부모들이 바람 핀 것이니 자녀들이 무엇을 본 받을까요?
교회로 말하면 지도자들이 이단이나 우상숭배 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우선은 하나님이 거부하셔서 떠나시고 거룩을 따르는 무리들도 떠날 것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상황을 주의 하셨습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
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지도자를 닮고 지도자만큼 큽니다.
정치도 사회도 신앙도 모든 분야가 마찬 가지입니다.
똥 뭍은 개가 겨 뭍은 개를 나무랄 수는 있지만 설득력이 없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 지도자
그런데 남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에 의해 남겨진 무리인데 그들은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근본이 달랐던 지도자들입니다.
스9: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문제와 현상을 우려했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또 이 소식을 들은 에스라는 어땠나요? “그럴 수 있지”가 아니라 “그럴 수 없다”는 단호한
자세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습니다.
스9: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스9:3) ~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그리고 해결의 방법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스9: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
를 향하여 손을 들고
자신의 일로써 먹고 사는 일이 망가져 슬프고 억장이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체가, 민족이, 교회와 신앙이 무너진 것이 답답하고 하나님을 반역한 것이 괴로웠던 것입니다.
이런 지도자가 있어야 밝은 미래가 옵니다.
성도의 가정교육 목표가 어디에 있나요?
“지지 말아라” “최고가 되어라”가 아닌 “축복의 통로가 되어라” “불의에 항거 하라”를 교육해야 합니다.
교회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미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인성과 영성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꿈나무교육이고 꿈 너머 꿈의 희망교육입니다.
지난주간의 여행은 연길을 거쳐 러시아를 들어갔었습니다.
그 지역은 만주나 상해에서의 항일투쟁이나 독립운동의 시발점이었기에 많은 항일투사들의 유적과 역사가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다른 동지들과 손가락 절단하면서 결단한 단지 동맹지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정신이나 재산 헌납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사상에서 온 것입니다.
그 사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부모나 스승이나 선교사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서 받았을까요? 성경적 교육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남겨진 무리, 소수의 정신 있는 지도자들, 성도들 통해서 새롭게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다수나 대세에 따를 것이 아니라 진리에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진실이고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왜 순교하셨고 왜 신앙영웅이 되셨나요?
당시 총회나 노회가 동방요배를 국민의례라며 가결하고 목사와 교회가 따를 것을 강요했지만 주 목사님은 우상숭배로 간
주하고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목사님도 편한 것 알고 노모와 처자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간음할 수 없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한 후 영문 밖에서 죽음을 자초한 것입니다.
신앙에 의를 위한 손해나 고난이 없다면 위선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다면 그 신앙은 종교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진짜 신앙일수록 내 기쁨 보다 모두의 기쁨을 구하고 그것 때문에 진작에 본인은 울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외침입니다.
고전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소망은 거룩한 지도자에게서부터 있었고 또 다른 소망은 회개였습니다.
3) 회개
거룩한 지도자인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한 말을 보십시오.
스10:2~3) 엘람 자손 중 여히헬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
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우려하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고자 했고 순결을 안정보다 귀하게 여
긴 것입니다.
이들의 하나님은 우리처럼 “주”였지만,
그 하나님은 “언약”을 세울 만큼의 살아계신 분명한 하나님이었습니다.
현대 신앙과 얼마나 다른가요? 현대는 죄를 품고 하나님께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함께 산 아내와 그 자녀를 되돌려 보내는 일은 이혼하고 가정을 파탄 내는 일입니다.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스10:44)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라 그 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개혁과 회개를 “별나게 믿는다.” 했을 것이고,
“무슨 하나님이 그러냐? ” 했을 것입니다.
또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이제껏은 수용하고 다음번부터는 단호 하자.” 는 의견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신앙개혁을 단계적으로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었습니다.
스10:12)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
루 이틀에 할일이 아니오니
일종의 저항인데 그럼에도 이 회개는 신속하고 확실했었습니다.
결론) 죄인일수록 공통된 일이 있습니다.
죄짓는 일은 신속하고 회개하는 일에는 온갖 구실과 명분을 앞세워 미룹니다.
반대로 의인일수록 죄지는 일은 더디고 회개는 신속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열매만이 아닌 그 과정도 회개를 증명합니다.
주님은 회개하고 믿을 것을 주문하셨지 믿음이 회개라고 가르치신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무엇인가요? 어디에 기인했나요?
살 소망은 여기에 있어 교회와 시대의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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