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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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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9-07-07 14:22 조회 45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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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사금을 찾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고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다른 보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금이나 보석보다 더 좋은 보물을 주셨습니다.

 

1) 지혜로운 입술

지혜로운 입술인데 큰 입술, 튀어나온 입술, 예쁜 입술이 아니라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가 무엇인가요?

성탄절 때 일입니다.

한 군밤장사가 교회당 앞에서 군밤을 팔았습니다.

“공주 밤”이나“ 맛난 밤”으로 팔지 않고

“고요한 밤 5000원, 거룩한 밤 7000원, 주 나신 밤 10000원” 아주 많이 팔았다니,,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있어야 자신도 남도 살립니다.

그렇지 못하면 죽습니다.

혀에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열매를 먹으리라

 

그렇다면 이 지혜는 어디서 얻나요?

파는 데를 보셨나요? 캐는 데를 아시나요?

지혜는 하나님경외함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학자들이었으나 지혜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하지 않았나요?

난로를 가까이 하면 더운 몸이 되듯이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랐더니 지혜자가 되어

이 지혜로 세상을 이겼고 또 다른 제자들을 배출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지식의 시대이고 보니 지혜가 외면당합니다.

그 탓에 유식해도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으니 비극이고 불행 아닌가요?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을 살펴보십시오.

살겠다는 말이 나오는가? 칭찬과 격려가 있는가? 축복과 감사가 있는가?

지혜가 없으면 지식은 무용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지식은 실제는 옛사람들 지혜의 산물입니다.

 

2) 지혜로운 말

지혜의 입술은 지혜로운 말을 합니다.

 

* 믿음의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믿음이 있으면 실상이 나오고 증거가 생깁니다.

큰 믿음이면 큰 실상이, 작으면 작게,, 확실합니다.

 

이발소 사장이 어느 손님얘기를 했습니다.

이발하러 와서는 죽겠다고 하소연 하더랍니다.

믿음이 있으면 죽는 소리 안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고,

낙심과 두려움 중에서도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읖조리게 됩니다.

 

다윗은 어땠나요? 골리앗 앞에서 기죽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말은 마음과 생각에서 나오고 마침내 행동으로 맺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나요? 보이는 현실이나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성령님을 보혜사로, 성경

을 언약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식언치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죽지 않으셨고, 성령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성경은 일점일획이라도 다 이루

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쳐야 합니다.

“성경대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의 12스파이가 가나안을 탐지하고 보고했었습니다.

12명은 사실을 말했었습니다.

과연 젖과 굴이 흐르지만 아낙자손들은 거인이고 우리들은 메뚜기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죽이셨고

오직 진실을 말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의 두 기둥으로 삼으셨습니다.

 

*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일은 쉽습니다.

그것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되레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사실적인 말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복이 임하질 않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권세자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와 국민이 삽니다.

축복은 믿음의 행위이고 긍정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있습니다.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공부를 못했기에 선생님이 그의 부모에게 학교를 보내지 말고 구두 방에 보내 기술을 배우도록 권유 했었습니다.

물론 친구들에게는 왕따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난 너를 믿는다.”며 수학을 가르쳤고 축복했었습니다.

한국아버지 같으면 어땠을까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냐? 누구를 닮아서 돌 머리냐?

너 때문에 창피하다.“ 했을 것입니다.

격려가 용기를 주었고,, 신뢰가 신뢰를 낳는 법입니다.

막말, 저주의 말, 삼가 해야 합니다.

말만큼 자기 얼굴에 행하는 행위도 없음을 믿고 가려서 해야 합니다.

 

*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행복한 부부일수록 상대방에게 감사가 넘칩니다.

부인은 남편에게 “나 같은 부인 만나서 고생이다” 하고,

남편은 부인에게 “나를 사람 만들어 줘서 고맙다” 면 어떨까요?

 

감사에는 당연함이 없고 감격, 감동만 있습니다.

반면 당연함에는 마귀가 틈새 공략을 해서 원망불평만 충만해 집니다.

 

장인 장례장에서 일해준 상조회 직원들이 너무 친절했었답니다.

다른 장례를 치르는데 그 직원을 찾았지만 신청이 안 된답니다.

그런데 그 직원들이 마침 우연찮게 나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달라도 너무 다른 써비스였기에 실망했답니다.

이유인즉 장인 장례에서는 고맙다는 인사와 수고해 달라는 부탁과 또 드리겠다는 약속으로 팁을 먼저 주었지만,,

나중 장례에는 팁이 먼저 없었습니다.

상주가 달라진 탓인데,, 무엇이든지 상대적입니다.

이용식목사의 말로는 식당에서 온 목사나 교회에서는 직원들에게 팁 주는 일을 모르고

되레 깎거나 누룽지라도 더 집어가려고 한답니다.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곱다”

잠13:2)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니라

 

친절은 여러 가지모양이고 온유와 겸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어떨까요?

말부터 변화하고 말의 열매로 증명합니다.

 

지혜로운 입술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 두려워 말라” 하셨고

승천하시면서는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습니다.

 

성도는 “죽겠다” “환장하겠다.” “미치겠다.” “ 못살겠다.” 하면 안 됩니다.

불행에 대한 푸념이고 고난에 대한 아우성이지만 결국 불신의 고백이 되기 때문입니다.

찬송가563장/ 예수 사랑하심을,,

“세상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국가게 하소서”

감사하면 행복합니다.

 

결론) 행복보다 지혜를 찾으십시오.

옛 페르샤의 한 왕은 부자였기에 똑 같은 음식을 먹지도, 똑같은 옷을 입지도 않았답니다.

불행을 느낀 왕은 신뢰하는 시종을 보내어 행복자를 찾아 속옷을 구해오라 했습니다.

시종은 행복자를 찾아 나섰지만,, 행복할 듯해도 행복하지 않다고 다 거부당했습니다.

그러나 언덕에서 하프를 켜는 목동을 만났는데 행복해 보였습니다.

물어보니 과연 “행복하다” 했습니다.

시종은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무엇이 “뭐가 불편한가?” 물었지만 목동은 어제까지 신발이 없어서 불편했었는데 저녁에 시

장에서 발 없는 사람이 구걸하는 것을 보고는 그 불편과 아쉬움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시종은 과연 행복자구나 싶어 속옷을 청했는데 목동이 옷을 제키는데 맨살이더랍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행복자는 있어도 행복자의 속옷은 없다”

행복을 찾는 게 지혜가 아니라 만드는 것이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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