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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우신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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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5-10-12 08:10 조회 6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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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세계는 편협적이질 않고 넓고도 컸습니다.

유대인 아닌 자들도 제자로 부르셨고, 자신의 몸된 교회도 한 세기나 한 지역만이 아닌 전 세기와 세계적이었습니

다.

요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

함이니

그러므로 이 기도에는 오늘의 나,, 우리가 포함된 줄 믿습니다.

 

1) 우리

우리의 세계관은 어떤가요? 너무 좁고 작습니다.

자기만 위하고 당장만 생각하기에 갈등은 물론 다툼이 계속 됩니다.

 

모 대통령이 죽어서 아직 묻히질 못하고 있습니다.

집 마당은 힘들고, 기독교 납골당을 가려는데 그곳 직원들이 살아있는 부인에게 세례받기를 조건으로 요청했습니

다.

부인은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다시 생각해서 세례를 받겠다고 했으나 이제는 거부 당했습니다.

애당초 그런 마음이 없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그곳에 묻히면 그 납골당의 이미지가 망가지고, 5,18유족들이 와서 데모할 것이라는 염려가 있

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 참 잔인하다,,죽어서도 묻히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했었습니다.

죽음보다 더 큰 면책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에 잠시 기도했었습니다.

유족은 국민과 5,18유족회에 사과하고,,유족회는 그 사과를 받아드리고,,그 역시 가해자지만 피해자인 그들의 동산

에 묻히게 하면 어떨까 해보았습니다.

대 통합이며 훗날의 귀감이 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일본이 피 터지게 전쟁한 적이 있었습니다.

무려 100년도 안된 때였지만 지금은 최고의 동맹입니다.

팔레스탄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이제 휴전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주신 땅이었습니다.

 

성도는 물론 부부친구형제들도 다툽니다.

그러나 곧 화해하여야 지혜자입니다.

잠27:5)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우리의 남과 북처럼,,원수가 되면 결국은 피차가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북은 북대로 남한을 견제하느냐고,,대내외적으로 무기는 발전시키며 문화는 차단을 합니다.

남은 어떤가요?

해방 된지 오래 되었는데,,해방의 주최가 독립군이냐 광복군이냐,,연합군이냐로 논쟁하고 등,

한 동족의 대 한 민 국이 이런 이념으로 양분되었습니다.


2)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주님께서 간절히 빈 기도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

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는 크게 되는 것, 형통하게 되는 것, 멋지게 되는 것을 바라지만 주님은 달랐습니다.

단순히 하나 되는 것이었으니 어떤가요? 그 이유의 실상은 가장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이면 누구든,,언제든,, 온유하고 겸손하며 기쁘고 평안해서 하나가 되는 데는데 반해 마귀가 역

사하는 곳이라면 싸움과 분열로 절대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론 크게 된다고 해서 하나를 거부하고,,형통하게 된다고 해서 하나를 거부하고, 멋지게 된다고 해서 하나를 거부

하는 것은 명분이 아닌 탐심이 작용한 탓입니다.

 

성령이 안 계시는 곳은 어디든, 언제나, 항상 시끄럽고, 마침내 제 잘났다고 하면서 싸움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

다.

가장 치열한 곳이 정치판이 아닌가요?

국회만이 아닌,, 교수들이 모인 회도 그렇고, 목사들이 모인 회도 그렇고, 아이들이 모인 회도 그렇고,, 아파트부녀

회나 노인회도 그렇습니다.

마귀가 부추켜서 그렇습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막22: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역사하는 곳이고,, 주님 믿는 성도들도 다 노출되어 있어서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그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제자들의 연약함과 마귀의 강함을 미리 아시고 강함과 더불어 하나됨을 간절히 빈 줄 믿습니

다.

그리고 지금도 이 기도는 유력하게 효능을 발휘하고 있어 주 믿는 성도들을 강력하게 주님의 원심력으로 하나님께

로 돌아오게 하며 머물게 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우리의 큰 존재감은 어디에 있나요?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할 만큼 주님의 개입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주님을 믿는 일도, 주님 닮는 애씀도,, 환난과 핍밥 중에도 믿음을 지키는 일도,,세상 떠나면서 천사들에게 받

들려 아브라함 품에 들어가는 일도,, 그 처음과 나중이 다 주님의 섭리와 은혜와 동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 정성을 쌓고,, 혼자 득도하는 그 어느 종교인이나 철학인 보다 우리는 인품이나 생활로도 탁

월해야 합니다.

또 설령 탁월해도 자랑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요?

그것이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고 내가 주 안에서 하나됨 향하는 특성입니다.

 

3) 의로우신 아버지여

요17: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

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신약성경에서 오직 여기서만 나타낸 주님의 고백으로 11절의 “거룩하신 아버지” 와 함께 하나님의 특성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그 안에 머무는 성도는 의로우신 하나님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특성을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람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보혜사덕분입니다.

요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지식이 참 힘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점점 설교하는 일이 참 어렵다고 느껴지곤 합니다.

기술적으로가 아닌 하나님말씀을 풀어 인격과 삶으로 고백하며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라면 덜 할 듯합니다.

성경을 풀어 적용하도록 하는 일,,되레 잘못 풀까 두렵고,,성도들에게 잘못된 진리를 전할까,,그래서 크고 많은 성

도들일수록 설교하기가 두렵습니다.

 

결론) 여러분은 어떤가요? 주님을 믿는 년수대로 무엇이 있나요? 무엇이 달라졌나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일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은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일,, 그 안에 머문다는 일,, 세상에서는 없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알고 그 안에 연합되었다면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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