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악자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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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면 개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요? 역시 개부터 보일 것입니다.
가야바제사장의 눈에는 이상하게 행악자가 보였습니다.
성결한 예수님을 행악자로 칭하며 빌라도에게 넘겼기 때문입니다.
요18:4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하였겠나이
다.
1) 행악자
원어성경에서는 행악자를 “상습적으로 악한 일을 행하는 자” 라고 했으니 이들은 예수님이 행악자라는 증거가 있었
나 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행악자라고 하신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여러분은 누구로부터 행악자라고 들어보셨나요? 아님 비슷한 모욕이나 비하는?
주님은 아무런 이유나 증거 없이 이런 치욕을 받으며 고발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이 되는 빌라도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요18:38)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그런데도 빌라도로부터 석방과 유대인들의 사과는 없이 되레 더 반작용했습니다.
여기에는 큰 섭리가 작용한 덕입니다.
나를 위한, 아무 흠과 아무 죄도 없으신 어린 양의 죽음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성으로 치룬 재판,,
그것도 단심으로 치른,,법과는 전혀 다른 여론과 정치적 재판으로 주님은 죽으셔야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로마황제에게 상소해서 법이 보장된 절차를 따랐는데 주님은 재판과정이 생략되고 무시되었으니 부당
한 재판이고 불의의 판결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재판을 용납하셨을까요?
아니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죄패를 “자칭 유대인의 왕” 으로 쓰자며 빌라도에게 압력을 행세했지만 빌라도
가 응하지 않게 하셨을까요?
요19:20~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
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간단합니다.
유대인들의 모함이고 빌라도의 재판이지만 사람들의 뜻이 이루어지는 정치나 인류사가 아니고 아들을 통해 나 같
은 죄인을 찾아 대신 희생제물 되게 하신 위대한 구속이요, 사랑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
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위는 이사야 선지자로 하여금 예언하신대로 주님이 불법으로 죽으심에 대한 섭리였습니다.
즉 주님은 더욱 주님으로 빛나게 하시며 악인은 더욱 악인으로 쇠하게 하시는 섭리였습니다.
그리고 “자칭” 자를 쓰지 못하게 하심도 결국 세상은,,권세 있는 총독이나 군중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의미
있게 선포하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빌라도는 주님 앞에서 자신이 놓을 권세와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가 있다고큰 소리했으나 주님은
간단하게 선언하셨습니다.
요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욱 크다 하시니라
2) 참 신앙
그러므로 신앙은 무엇을 믿느냐 어떻게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상천하지의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대상이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침묵하면서도 행동하므로 결코 가볍지 않고 깊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신앙은 고난과 죽음은 두려워하며 오직 하늘과 땅의 꿀과 젖만 찾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이치인데 어떻게 땅과 하늘에서 천국생활하기를 바랄까요?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모범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통치 약속인 줄 믿습니다.
요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주님이 지극히 낮아지셨기에 (말구유 탄생, 고난과 죽으심) 그러므로 지극히 높아지셨습니다. (부활,,승천,,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재림,,그리고 심판의 왕 되심)
그러므로 믿음의 선진들이 고난 속에서 두려움 보다 소망의 인내를 갖고 살았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향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던 이유를 보십시오.
히11:10)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 성을 바랐음이라
애굽의 모든 학술을 다 배운,, 장성한 모세는 어떤가요?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현대의 우리에게도 주어진 상급이 있습니다.
히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 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
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런데 다수가 이런 약속과 보장,, 이 언약의 말씀과 주님이 가신 좁은 길을 제치고,, 시대적 느낌과 다수의 모습을
진리인 냥 따르고 있으니 유감입니다.
스스로 자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좁은 길로 따르는가? 시대적 느낌과 다수의 넓은 길을 따르는가?
여기에 시금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자인가 봉사자인가? 은혜를 사모하는 자인가?
예배라면 찬양을 하는가? 즐거운 노래를 하는가?
하나님께 드리는 자인가? 받기를 갈망하는 자인가?
우리는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다면서 내 기분인가? 주님의 말씀에 의존한 순종인가?
결정적인 시금석이 됩니다.
3) 핫한 교회
친구목사 아들이 부목사로 모교회로 부임했는데 핫한 교회에서도 불렀으나 이곳으로 부임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핫한 교회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세교회랍니다.
또 궁금해졌습니다,.어떻게 그 교회만 사람들이 많이 찾을까?
성령이 크게 역사하셔서 회개와 치유가 나타나는 교회일까?
아님 통속적 문화가 활발한 교회일까?
경건의 능력과 모양이 비슷해도 사도행전에서의 핫한 교회는 주님이 강하게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영광을 드리는 송영은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경배합니다” 라고 단순히 말하
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이유로 찬양하며 경배하는지를,,그 이유를 삶과 함께하는 경건한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송영(Doxology) 은,,영광과 말씀의 두 조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에 관한 말,,참된 찬양을 표현하는 행동이나 헌신이 동반됩니다.
요즘은 찬양과 즐거운 노래를 혼동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유감입니다.
찬양은 단순히 고조되는 것이나 기분이 들뜨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좀 더 확실히 한다면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신앙’ 인 전통주의신앙은 삼가고,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전통신앙이 있어
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핫함 보다 거룩함을 목숨으로 여겨야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고, 주님도 기도하시기를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
소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행악자가 아닌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구원 받은 성도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의 왕, 찬양의 왕,, 송영의 왕이어야 하고 예배도 달라야 합니다.
지인을 전도하려 열심이었던 분의 최근 일입니다.
아내가 병으로 별세한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여동생도 별세했는데 1년 안에 치른 큰일
들이었습니다.
자식도 없어 지금은 홀로 산답니다.
지인이 좀 어떠냐고 물었을 때 어떤 대답이 있었을까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련다” 어떤가요? 욥 같지 않나요?
결론) 참 신앙은 이처럼 핫 합니다.
진정한 찬양과 송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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